역지사지, 당연하지만 어려운
우리 회사의 기획자는 Product Owner라고 불리운다. 나는 이 명칭이 "주인의식" 같은 단어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맡은 일을 완수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고, 기꺼이 희생하라는 뜻으로. PO라고 불리우는 이상, 기획은 업무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더 나아가, 기획안의 구체적인 사항은 개발이나 디자인 직군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채우는 PO도 드물지 않다. 뭐 그건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으로 하고.
PO는 제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용 가치, 그리고 이게 왜 팔만한 제품인가를 증명하고, 그것을 현실화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과정에 개입하거나 직접 수행한다. 제품을 완성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기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의 가짓 수는 "기획"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기에, PO의 이력서는 상당히 잡다하고 긴 사연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나도 내 이력서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이걸 누가 읽고 싶을까.
요즘 우리 회사는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회사는 신규 채용을 허락했고, PO 포지션 채용 공고를 게시하자마자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다.
앞서 말했듯, 내가 읽어야 하는 이력서들은 온갖 복합한 경험담으로 빼곡하다. 무지막지한 활자의 쓰나미 안에서 우리 회사의 주력 사업에 직접 관련있는 기술, 경험을 담은 문구를 찾아야 한다.
요즘 주로 찾는 단어는 대충 이런 것들이다.
LLM, Model
Prompt engineering
데이터 전처리, 문서 처리
Agent
대화형 AI, 챗봇
관리자 도구, 어드민, 백오피스
Testcase, 그 밖에 검증 과정에 사용되는 여러 개념어들
...
협력사(혹은 외주업체)에 일을 시켜만 놓고 스스로 PO라 칭하는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한 목적이다. Hands-on 경험이 충분치 않으면, 사용하는 어휘들도 구체성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리드급 후보자를 고를 때는 이런 단어들을 추가로 찾는다.
피드백
1 on 1
성과 관리, 품질 관리
프로세스 개선
팀 빌딩
...
이런 표현들에서는 개인 차원을 넘어 - 최소한 - 팀 단위의 공동체, 더 나아가 회사 전체로 관점을 확장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함께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과, 동료에 대한 케어가 습관화되어 있는지 알기 위해서다.
바로 떠오르는 단어들만 대충 나열했지만, 이 바닥에서 구직하려는 분이라면 대충 어떤 계열의 단어가 더 있을지 스스로 더 파생시켜 볼 수 있으리라. 이런 표현들이 적혀있지 않은 이력서는 조용히 아카이빙 된다. 그나마 요즘 나는 좋은 후보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절실함으로, 빽빽한 글자 더미 안에 숨어있는 하나의 단어까지 찾아내려 애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PO 채용자들은 그럴 에너지도 시간도 없을 가능성이 높으니, 단어의 선택과 집중에 정성을 쏟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특히 20년 넘는 구력을 가진 선배님들조차 엄청난 양의 경력을 필터 없이 나열만 하고 계신 경우를 숱하게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는 단어가 보이는 서류를 제출하셨던 후보자들의 인터뷰 성적이 더 좋은 것에는 예외가 거의 없다.
이 글은 어쩌면, 여전히 구직 시장의 일원인 나 스스로에게 주지시키기 위한 독백인지도.
1. 지원하는 조직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어휘를 풍부하게, 쓰임에 맞게 담기
- 경험 없이 말만 채운다고 능사가 아닌 이유
2. 그 외의 경험치는 핵심만 간결하고 깔끔하게 담기
- 소화하기 적정한 정보량 = UX 101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