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輪紀行] ep. 02 구례에서 하동
봄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봄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겨우내 기다린 3월이 왔다. 늘 그래왔듯 3월 초는 본격적인 봄을 선언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이 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반가운 손님이 오면 문지방이 아닌 대문 앞까지도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겨야 하는 법. 나는 봄을 가장 빨리 맞이할 수 있는 곳을 향해 오토바이에 채찍질을 더한다. 봄이 쉬이 오지 않는다면 내가 봄을 만나러 가면 되니까.
19번 국도는 강원도 홍천에서 시작하여 경상남도 남해군까지 국토의 정중앙을 가른다. 진안고원을 지나 요천이 흐르는 너른 들을 따라가면 전라북도 남원시에 닿는다. 강물의 흐름에 맞추어 속도를 높이는 만큼 땅의 울림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오토바이 핸들을 잡은 두 손에 봄의 생명력이 깃드는 듯하다. 공기는 아직 서늘하지만 제법 따사로운 햇살 덕분에 추위가 한 줌의 먼지처럼 사라진다.
첫 번째 목적지는 전라남도 구례군 산수유 군락지이다. 요천과 헤어진 19번 국도는 이곳 산수유 군락지를 지나 구례읍 즈음에서 섬진강과 만난다. 작고 노란 꽃들이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일렁인다. 마을 곳곳을 노랗게 물들인 산수유꽃을 보고 있으니 봄의 전령사가 된 기분이다. 이 광경을 담아 여기저기로 전송하기 바쁘다.
다시 구례읍에서 하동까지 섬진강을 곁에 두고 약 40km를 남쪽으로 달린다. 햇볕에 부서지는 섬진강 윤슬이 봄의 온기를 전해준다. 강물은 반짝이고, 푸른 산들은 생명의 기운으로 넘실댄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 길을 달리노라면,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봄의 감흥에 젖어든다.
언젠가 거창을 지나며 황강이 섬진강에 비견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소 무안해진다. 특별히 요란 떠는 법 없이 도도하게 흐르는 섬진강은 그 자태만으로도 압도적이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풍경은 왜 시인 묵객들의 시상을 자극했는지 짐작케 한다.
길을 달려 하동포구 근처 신방마을에 다다랐다. 재첩과 벚굴을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강을 따라 난 도로에는 재첩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잠시 멈추어 봄볕에 달궈진 뱃전을 바라보고는 익숙한 식당으로 들어선다. 재첩회무침은 새콤하다. 갓 데쳐낸 채소 반찬 몇 가지와 재첩에 흰쌀밥을 넣고 함께 비벼 먹는다. 혀끝에서 봄이 입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나는 해마다 이 맛, 이 계절을 기억하고 섬진강을 찾는다. 봄기운에 취해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밥에 함께 달려온 맑은 재첩국 한 수저가 그만이다.
봄을 찾아 떠난 이 길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바람, 햇살, 꽃내음, 그리고 봄. 모든 것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이 순간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오토바이 위에서 나는 올 한 해를 또 잘 살아낼 것을 다짐한다. 봄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봄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오토바이에 올라 봄과 이른 만남을 만끽한다. 바람을 맞으며, 햇살을 즐기며, 꽃내음에 취하며, 그리고 또 내년을 다시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