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특급썰렁이 Aug 19. 2024

나의 일생 18

나의 옆 짝꿍은... (4) 그 실체는.

신체검사 날이 다가왔다. 2학년 1학기 신체검사였다. 미리 예고도 없이 찾아온 신체검사라서 적잖이 당황했다. 초봄 추운 날씨라 내복을 입고 학교에 갔는데, 큰누나가 몇 년전까지 입던 그 꽃무늬 분홍색 내복이었다. 하필이면 왜 여자내복 입은 날 신체검사람 ㅠㅠ 그 당시에는 여고 여중 앞에서 출몰하는 바바리맨들 말고는 변태도 괴짜도 없는 참 살만한 세상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어디 도망갈 수도 없고 신체검사를 피할 길은 전혀 없었다. 위아래 속옷 한벌씩 빼고는 모두 다 벗고 줄을 서라. 담임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우리는 잽싸게 윗통과 아랫통을 다 벗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일제히 줄을 나란히 서기 시작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윗도리 셔츠를 벗고 그 찬란한 꽃무늬 내복을 드러냈다. 옷 벗느라 정신없던 친구들 중 몇몇이 나의 내복에 질겁을 하고 몇 마디 놀리기 시작하려던 찰나 담임선생님의 엄중하고 예리한 눈빛이 절대적인 침묵을 유도하고 있었다. 어디 감히 신성한 신체검사 시간에 웃고 떠드는거야. 굳이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으셨지만, 이미 선생님의 매서운 두 눈과 한껏 일그러진 표정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화구와도 같았다. 오죽하면 선생님 별명이 마귀할멈이었을까. 국민학교 2학년 어린이들의 그 고사리 같은 손바닥을 그 악랄한 30센치 플라스틱자를 가지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찰싹찰싹 때려대시던 그 악명높은 저질 성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마귀할멈 선생님의 안색이 더 짙푸르게 변하기 전에 우리는 나는 학급 친구들은 신체검사 줄에 합류하여야만 했다.

    

나를 포함해서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혹시나 그 사이를 못 참고 교실 밖으로 도망친 아이는 없나 연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큰일이 났다. 도대체 감히 겁도 없이 선생님의 명령에 거역하는 아이가 한 명 발생한 것이었다. 모두 다 교실 맨 앞에 자리한 체중계 앞에 줄을 서서 선생님의 신체검사 개시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던 그 때에, 용감하게도 아직 책상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 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뭐지. 야 진짜 큰일인데. 쟤 때문에 우리 학급 전부 다 벌 받는 거 아냐. 그 시절에는 학급 친구들 중 어느 한 명이 사고라도 치는 날에는 그 반 학생들 전부가 모조리 야단맞는 일이 빈번했다. 친구가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하고 있는데도 말리지 않고 방관 방치했다는 죄랄까. 연대책임. 연좌제. 뭐 이런건가. 암튼 한 친구가 실수로 창문을 깨도, 어느 남학생이 여학생 치마를 과도하게 아이스께끼 해서 여학생이 울음을 터뜨려도, 수업시간에 옆사람이랑 쪽지 주고받다가 선생님한테 걸려도 "단체기합"이었다. 군대도 아니고 고작 국민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렇게 많이 맞고 많이 얼차려 당하던 그런 시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심지어 가정통신문 알림장에 "선생님, 제발 우리 아들 사람될 때까지 많이많이 때려주세요." 라고 답장 편지 써서 아들에게 쥐어주던 어머니도 있던 시절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쨌든 우리를 소름끼칠 정도의 공포로 몰아넣은 당사자는 다름 아닌 "그 여학생"... 바로 내 짝꿍이었다. 쟤가 왜 저러지. 평소 말은 잘 안 해도 선생님 말씀은 곧잘 듣던 그 여학생이 오늘 왜 저러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일제히 그 여학생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우리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오늘도 필시 저 마귀할멈이 분노의 마그마를 한껏 분출할 것이 틀림없었다. 마치 불 뿜는 티라노사우르스 공룡처럼.

하지만 나의 그리고 우리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웬걸 선생님이 말없이 그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평소 분신처럼 손에 딱 붙어있던 30센치 플라스틱자도 없이. 어 이번엔 플라스틱자 대신에 손으로 직접 때리려나. 헐 그게 더 아플텐데. 상황이 끔찍하게 전개되는 모양새였다. 나도 겁이 났다. 쟤만 맞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단체기합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선생님은 그 여학생 앞에 멈춰섰다. 괜찮아. 괜찮으니깐 너도 신체검사 받자. 의외의 자상하고 상냥한 선생님의 말투에 소름이 끼쳤다. 저러고 때리면 더 아플텐데. 그러자  여학생 나의 짝꿍이 그제서야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누가 쳐다볼새라 벽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리고서는 천천히 윗옷을 벗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그걸 지켜보시더니 가만히 친구 앞쪽으로 자리를 옮겨서면서 자못 그 친구를 가려주는 듯한 포즈를 취하셨다. 그러고는 이내 윗옷을 벗은 그 친구의 윗몸이 드러났다. 엉, 저 흉터는 뭐지.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누가 떠들었어. 그럼 그렇지 역시나 선생님이 잔뜩 화난 억양으로 소리를 지르셨다.  그 뒤로는 모두 다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꾹 다물었고, 신체검사가 끝날 때까지 쥐죽은 듯 조용하게 유지됐다. 그 와중에 얼핏 바라본 그 짝꿍의 가슴에는 목 바로 아래부터 거의 배꼽에 이르는 제법 기다란 흉터가 선명했다. 길쭉한 고무호스 같은 자국이랄까 가슴 정중앙을 관통하는 그것은 수술 자국 같아 보였다. 신체검사가 다 끝나고 나서야 담임선생님은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셨다. 사실 너희들한테 얘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OOO이는(이 여학생의 이름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서 성도 이름도 알 길이 없다.) 작년에 심장판막증 수술이라는 큰 수술을 받아서 그래. 너희들하고 다르다고 놀리거나 하면 가만 안 둔다.

아, 그랬구나. 그 때 내 머릿속을 꽝 하고 스쳐지나가는 사건이 있었다. 작년 그러니깐 1984년 1학년 때에 전 학교적인 큰 이슈가 있었다. 심장판막증에 걸린 학우가 있는데, 이 수술을 하려면 수술비도 많이 들고 엄청 힘들고 아주 위험한 수술이라고. 그래서 2500여명의 전교생들이 십시일반 이웃돕기 성금을 모아서 이 학우를 살려내야 한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교내 방송에 선생님들의 반강제적인 닥달에 차곡차곡 한푼 두푼 모아뒀던 저금통도 깨고 난리도 아니었었던 것을. 막상 성금 모금은 온 동네가 다 알 만큼 떠들썩하게 진행되고 꽤 많은 돈이 모여서 그 학우에게 전달되었다고 교장 선생님의 운동장 훈화말씀에서도 여러번 듣긴 했는데... 정작 당사자인 그 학우가 수술은 제대로 받았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쾌유를 한건지 아님 성금만 받고 다른 학교로 전학이라도 갔는지 그 후일담은 전혀 알지 못했었었다. 그런데 그 학우가 바로 나의 짝꿍이었다니. 특별히 잘못 한 것도 없는데 괜시리 그 짝꿍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그 짧은 수명이 다 꺼져버리지 않고 그 큰 수술 뒤에도 무사히 살아있어줘서 고마웠던 건지도 모른다. 40년 전만 해도 심장병 걸리면 다 죽는다고 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는 그 친구가 더이상 미워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뭐 또 갑자기 확 친절하게 대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남모를 사연이 그것도 아무나 겪을 수 없는 큰 이슈를 지나온 그 친구가 내심 대견했던 것 같다. 그 친구 얼굴을 볼 때마다 그 선명한 가슴팍의 수술자국이 겹쳐져 보이는 듯해서 가끔 울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다음번 짝꿍이 새로이 바뀔 때까지 그 친구 곁에 그저 있어줄 수 있었다. 그 친구가 8살 어린 나이에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처럼 40년이 지난 지금도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기를 기도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