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학생은 그렇게 교실에 남았다. 나를 비롯한 다른 모든 학급 친구들은 제각기 의아한 눈빛으로 그 여학생을 쳐다보면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날은 마침 공놀이 시간이어서 축구공, 농구공, 배구공을 저마다 가지고 축구, 발야구, 농구, 배구, 피구... 그야말로 공으로 할 수 있는 놀이란 놀이는 죄다 하면서 속옷까지 위아래로 전부 땀에 흠뻑 젖을만큼 미치도록 놀고 또 놀았다. 체육시간을 다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여전히 그 여학생은 교실에 혼자 남아서 우두커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놀이를 하던 학급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차마 그걸 그 짝꿍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 짝꿍의 표정은 이미 어두울대로 어두워져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 주의 체육시간은 보다 더 신나게 놀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지나갔다. 여전히 그 짝꿍이 왜 나처럼 다른 학급 친구들처럼 체육시간에 함께 하지 않으려 했는지 모두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교실 안에서 남들 모르게 창 밖을 계속 보고 있었던 거 같은데... 쟤는 왜 그러지. 그냥 쫌 이상하긴 했지만, 솔직히 그다지 관심이 가질 않았다. 내가 알게 뭐야. 나만 잘 놀았으면 됬지. 지가 같이 놀고 싶으면, 체육시간에 나오면 그만이지. 뭐 한다고 교실 지키고 앉아있어. 재미도 없이. 뭐 그런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렇게 그 주도, 그 다음주도, 그 다다음주도, 그 다다다음주도 체육시간만 되면 그 짝꿍은 교실 지키는 당번 아닌 당번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렇게 교실에 남아서 남들 볼세라 창틀쪽에 바싹 붙어서 운동장을 바라보는 것을 몇 번 본 거 같다.
체육선생님조차도 그런 그 짝꿍에 대해서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다른 애들 같았으면 무슨 꿍꿍이냐면서 2주 연속으로 교실에 남는 건 도저히 용납하시지 않던 체육선생님인데. 유달리 그 여학생한테만큼은 그런 얘기를 일절 하지 않으셨다. 선생님도 포기하신건가. 하긴 쟤도 나처럼 딱 보면 운동신경 없어 보이긴 하니 말이었다. 그래서 나도 학급 친구들도 어느새 그 여학생은 그 내 짝꿍은 "체육시간에 교실 지키는 아이" 로 낙인 아닌 낙인이 찍혀버린 거 같았다. 안타깝게도 담임선생님이 이번주에 선생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고 학교를 한동안 나오지 못하셨다. 선생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보다 훨씬은 더 슬픈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래서 최소 1주일 동안은 다른 선생님이 대신 조회와 종례시간에 들어오셨는데, 원래 예정되어 있던 짝꿍 바꾸기가 그 덕분에 나중으로 미뤄졌다. 담임선생님 돌아오시면 그 때 바꾸라는 얘기였다. 짝꿍 바꾸는 것 또한 담임선생님의 고유 권한이라서 1주일 정도 잠깐 땜빵으로 오신 선생님이 굳이 바꾸시기가 귀찮으셨나 보다. 나는 괜시리 기분이 나빠지고 마음이 불편했다. 학급 친구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 짝꿍과 적어도 1주일 이상은 더 짝으로 남아있어야 할텐데... 아, 왜왜왜 하필 선생님 아버지는 이 때 돌아가셔서 나를 힘들게 하시지. 어린 마음에 돌아가셨다는 그 선생님 아버지한테도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도 나는 그 짝꿍이 정말정말 싫었나 보다. 나는 그랬다. 내 마음은 그랬다. 더 좋은 짝꿍으로 어서 바뀌었으면 했다.
그 해 신체검사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