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학생 짝꿍과의 다소 불편한 공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작은 키에 비해서 또래 여학생들보다는 약간 더 몸집이 있는 그 여학생은 표정도 하루웬종일 어두운 편이고 생전 웃거나 신나하는 적이 없는 거 같았다. 뭐랄까 무언가에 항상 화가 나 있는 양 심통맞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올 때에도 그 여학생은 느림보 거북이처럼 저벅저벅 걸어다니곤 했다. 여덟아홉살 그 또래의 국민학교 학생들을 상상해 보라. 고 또래에는 뭐가 그리 바쁜지 틈만 나면 뛰어다니다가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책상에 부딪혀 무릎팍에 멍이 들고 하던 시절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여학생만큼은 유독 별다르게 뛰지 않는 거 같았다. 몸이 무거우니까 안 뛰어다니고 또 안 뛰어다니니까 몸이 무거워지고...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나야 못 먹고 자라놔서 키만 멀대같이 클 뿐 몸통은 삐짝 골았으니, 나나 다른 친구들하고 신이 나게 죽어라 뛰어다니며 놀면 되지 하는 마음에... 그 옆짝은 일절 쳐다보지도 않고 쉬는시간 종이칠세라 부리나케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곤 하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내 친구들도 남학생 아이들도 여학생 아이들도 그 여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와 그다지 다른 거 같지 않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과의 육체적인 놀이 즉 몸 쓰는 놀이에는 그 여학생이 애시당초 끼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마땅찮은 장난감 하나 제대로 없어서, 학교에서조차 쉬는시간 그 짧은 10분 동안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좋은 자리 선점을 위해 일제히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던 시절이었다. 경주시에서도 학교 운동장이 가장 넓기로 소문이 나서, 인근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육상부 형님 누나들이 연습하러 올 정도로 인기가 많은 국민학교였다. 그 광활하고 드넓은 운동장이라 할지라도 2500명 가까운 전교생들이 거의 대부분 나와서 구석구석 공간만 생기면 제기차기, 말뚝박기, 오징어짬뽕, 진놀이[전봇대 혹은 철봉기둥을 중심으로 술래를 정해서 하던 놀이], 얼음쨍,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비석치기, 구슬치기 등등 88올림픽이 따로 없을만큼 모두가 나가서 놀던 그 때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학생은 요지부동 운동장으로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 시절 체육시간은 국민학교 학생들에게는 축제 그 자체였다. 쉬는시간 10분은 무언가 놀이를 채 시작하기도 전에 아니 운동장 자리 맡기가 무섭게 수업종이 울릴까 초조해하며 감질맛 나던 아주 짧디짧은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체육시간은 선생님과 합의만 잘 되면 우리들 맘껏 공식적으로 뛰고 놀 수 있는 놀이판이었다. 그야말로 잘 놀 수 있는 판만 잘 깔아준다면 50분 수업시간이 단 5초로 느껴질만큼 짜릿하고 흥분되는 시간이었으니깐. 오죽하면 극단적으로 정적이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운동신경 제로의 나조차도 체육시간은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그만큼 체육시간은 1주일 중에서도 유일하게 매일매일 기다려지는 수업시간 중의 하나였다. 오매불망 아이들의 로망인 그 체육시간에 체육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체육하기 싫은 사람은 교실에 남아서, 물건 지키면 되겠네.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있나. 누가 체육이 하기 싫겠어. 나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이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일제히 나타났다. 그러게. 당연히 전부 체육하러 가야지. 교실에 남을 사람 없으니 물건 지킬 필요 없이 교실문 잠그면 되지. 나도 친구들도 그런 혼잣말을 맘속으로 하고 있던 그 때였다. 느닷없이 내 짝꿍이 손을 들었다. 평상시 선생님이 질문하셔도 목소리가 잘 안 들려서 짜증이 나던 그 옆짝이 말이다. 얘 왜 이래? 체육도 하기 싫은가...선생님, 저 체육 안 하고 교실에 남아서 반 지킬래요. 그 여학생의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