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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급썰렁이 Aug 19. 2024

나의 일생 15

나의 옆 짝꿍은... (1)

2학년이었던 거 같다. 국민학교 2학년...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는 주로 1주일이나 2주일 만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옆짝을 바꿔주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시피 그 당시에는 매년 03월 01일을 기준으로 해서, 전 해의 03월 01일생으로부터 그 다음해의 02월 29일생까지만 한국나이로 딱 8살이 되던 해에 국민학교 입학이 가능했다. 특히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해서 학급 번호가 부여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보통 앞 번호의 아이들 특별히 10번 미만의 한 자리 숫자대의  아이들이 남녀 할 것 없이 키도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작고 몸집도 왜소했다. 그 다음해의 01월 01일~02월 29일생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친구들은 같은 반 친구들이 말뚝박기나 공차기, 발야구 등등을 하며 주로 몸을 쓰면서 놀 때 키도 작고 팔다리도 짧다는 이유로 대부분 소외되곤 했다. 그러니 쉬는 시간에도 밖에 나가 놀지 못하고 대개 교실에 머무르다 보니, 잘 할 수 있는 거라곤 조용히 책 읽고 공부하는 게 전부였다.

  

그 날도 옆짝이 바뀌는 날이었다. 지난번에는 첫째 줄과 셋째 줄, 둘째 줄과 넷째 줄 이렇게 홀짝을 바꾸셨는데 오늘은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첫째 줄과 둘째 줄, 셋째 줄과 넷째 줄 이렇게 세로 줄까리 바꾸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웬걸 선생님은 느닷없이 맨 뒷줄과 그 앞 줄 그리고 그 앞앞줄과 그 앞앞앞줄 이런 식으로 가로 방향으로 바꾸시는 게 아닌가. ㅠㅠ 잘만 바뀌었으면 평상시 눈여겨 보던 예쁜 여학생인 권주O과 짝이 될 뻔 했는데... 무척이나 아쉬웠다. 앞으로 최소 2주간은 새로운 아이와 옆짝을 해야만 한다. 하긴 어떤 남자 아이는 또다른 남학생과도 짝이 맞았으니, 그나마 여학생 짝이라면 다행이 아닐까. 어쨌든 이렇게 뒷줄에서 올라온 옆짝은 과연 누가될 지 궁금했다. 어 저 친구는 키 작고 뚱뚱한데다가 말수도 거의 없고 느릿느릿 천천히 움직이는 바로 그 아이인데. 당시 초대박 유행이던 고무줄놀이도 전혀 하지 않아서 같은 여학생들끼리도 좀처럼 어울려 놀지 못하던 그런 여자 아이였다. 굳이 외모 비하를 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으나, 국민학교 시절에는 외모로도 무진장 놀려대고 무시하던 그런 디스 문화가 있었기에 나 또한 그 무리에 끼곤 했음을 양심선언한다. 솔까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친구들과의 신나는 뒷담화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않은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잘생기고 예쁘고 공부 잘하고 반듯하고 모범적이고 심지어 잘 사는 친구들은 부러워서 질투하고, 그와 정반대로... 못생기고 안 예쁘고 공부 못하고 흐트러지고 불량하고 게다가 못 사는 친구들은 무시하고 경멸하는 그런 풍조가 이상하게도 그 어린 국민학교에 독버섯처럼 곳곳에 스물스물 배어 있었다. 이상하기도 하지. 그래서 남들보다 유독 잘난 친구도, 특별히 못난 친구도 살아남기가 힘든 사회구조였다. 오죽하면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간다" 라는 말이 생겼을까. 그리고 "모두가 예 라고 대답할 때, 아니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용기" 라는 말이 있었을까. 어쨌든 그 여학생. 나의 새로운 옆 짝꿍이 된 여학생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평범하기 그지 없는 아니 평범보다는 약간 찐따에 가까운 외모의 아이였다. 그래서 나도 솔직히 내심 실망스런 마음이 들었다. 생김새는 그렇다치고 이왕이면 좀 싹싹하고 친절한 아이가 내 짝이면 좋을텐데... 짝꿍 선정 이후 내 얼굴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실망스러운 그 표정을 보았는지 못 봤는지 그 여학생의 안색도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 때에는 1인 1책상이 아니라, 길고 좁다란 녹색 페인트칠된 낡고 울퉁불퉁한 책상 하나를 두 명이서 나눠 쓰는 형태였다. 책상 전체 면적이 워낙에 좁은 편이다 보니, 옆짝과의 친밀도에 따라서 보통 그 중간 경계선의 위치가 정해진다. 그리고는 정해진 경계선은 그 책상 위에서만큼은 대통령이 와도 건너올 수 없는 38선 아니 휴전선과도 같은 절대 영역이 된다. 어디 감히 선을 넘어와! 그 여학생과 나의 경계선도 눈깜짝할새에 칼같이 정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여학생에게 절대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짝꿍 결정되고 나서 무심코 내 오른팔꿈치가 그 여학생쪽으로 살짝 치우쳤는데, 그 여학생이 질겁을 하면서 확 뿌리치는 게 아닌가. 내가 그렇게도 싫은가... 그럼, 나도 너 싫어. 뭐 나는 좋은 줄 아냐.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흥칫빠.

         

오늘도 친구들이랑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어김없이 친구들과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른바 리뷰하면서... 새로 바뀐 짝꿍에 대한 자랑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 걔 맨날 볼 때는 꾀죄죄하니 잘 씻고 다니지도 않는 거 같던데, 오늘 짝꿍 되서 보니깐 필통이 새로 산 건지 3단 분리되더라. 신기하지? 내 짝은 앉은키도 나보다 크고 수업기간에 발표도 잘 하던데. 너는 좋겠다. 저번에 그렇게도 그 친구랑 짝꿍되고 싶어하더니 소원성취했네 ㅋㅋㅋ 그렇게 친구들은 신이 났다. 그런데 나는. 나는 괜히 심통이 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그렇지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야. 하필이면 그런 애랑 짝꿍이 되서 말이지. 아 앞으로 어떻게 지내지. 친구들한테 이런 내 속마음을 차마 털어놓지도 못하고 나는 울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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