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생 13
그 친구는 5대 독자였다... (3)
그 친구와 나는 조용한 성격만큼 조용하게 놀았다. 뭐 그 시절 장난감도 없었지만 설령 있다 해도 어머니는 절대 안 사주셨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형편에 장난감이 웬말인가. 그래서 주로 흙에서 많이 놀았는데, 흙에서 놀려해도 이것저것 돈이 제법 들었다. 구슬치기 하려면 왕구슬, 쇠구슬을 비롯하여 웬만한 구슬 세트는 가지고 있어야 친구들이 편이라도 먹어줬으니. 그나마 돈 안 드는 비석치기, 오징어짬뽕 뭐 이런 거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 놀만한 아이템도 부족했을 지경이다. 이쯤에서 주위도 환기시킬 겸 그 당시 가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한반도를 세게 강타했던 장난감 광고노래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장난감은 마치 로또와도 같아서 전국의 국민학교 학생들이 모두 다 알고 있지만 텔레비가 아닌 실물을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진 않은 듯하다. 천문학적인 가격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그리고 내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은 그 장난감을 구입해서 갖고 노는 대신 그 원한을 달래고자 광고노래를 개사해서 아침마다 불러댔다. [원곡; 아침에 일어나서 예쁘게 옷을 입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미끄럼 타고 그네도 타고, 엄마 아빠랑 동물원에 가고, 우는 동생 돌봐주고, 우리들도 바쁘게 살아요. 플레O 모빌은 내 친구. 내 친구 플레O 모빌. 아~ 아빠, 영 플레O 모빌 좋아요. 영 플레O 모빌, 영 플레O 모빌!] [나의 국민학교 버전의 개사곡; 아침에 일어나서 팬티만 입고 학교에 가서 공부는 안 하고 미끄럼 부수고 그네도 부수고 엄마 아빠랑 교도소에 가고 우는 동생 꼬O잡아 댕기고 우리들도 바쁘게 살아요 플레O모빌은 내 친구 내 친구 플레O모빌 아아아아 아빠 영플레O모빌 싫어요 영플레O모빌 영플레O모빌] 그 친구와는 그 시절 도대체 둘이서 그 동네에서 뭘 하고 놀았는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하여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그 친구와 나 말고 또다른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어느 초여름의 일이었던 거 같다. 아마도 토요일이었던 거 같다. 아니 여름방학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들도 모두 집에 있었다. 지금처럼 매우 화창하고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그런 찬란한 날씨였다. 더워서 그랬는지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복도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또다시 우리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벌건 대낮에 또 불이라도 난 걸까... 뭔일인가 알아보러 현관 밖으로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뭔일이 나도 크게 난 것 같단다. 동네 사람들이 어디론가 다 몰려가고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들과 함께 이내 집을 나섰다. 동O주택으로부터 어른 걸음으로 약 10~15분쯤 거리에는 "북천" 이라는 적당한 크기의 하천이 있었다. 경주시 한쪽편을 길게 관통하는 이 북천은 울산 태화강으로부터 흘러와서 포항 형산강으로 흘러가는 소위 "경주의 젖줄" 과도 같은 강이었다. 앝은 곳은 어린아이 발목 정도 깊이에 그치지만, 깊은 곳은 어른 가슴팍은 족히 넘을 정도로 깊은 그런 개천이었다. 당시 놀거리가 없던 아이들은 거기에서 송사리, 피라미, 개구리, 올챙이, 손바닥만한 붕어를 잡기도 하고 놀았다. 그 때 어떤 친구들이 용감하게 식용개구리 큰 녀석 한 마리를 잡아서 뒷다리를 구워먹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겁이 많아서 그리고 징그러워서 못 먹고 구경만 했지만... 내가 저번에 얘기했던 불을 냈던 바로 그 "작은 시냇가" 가 여기 북천이었다.
북천에 도착했다. 이미 우리 동네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다 거기에 와 있는 듯 어마어마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냇가 한편에는 자그마한 어린애 사이즈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은 웅성웅성 대고 있었고 가지런히 놓인 운동화 앞에서 어떤 아저씨 아주머니 두 분이서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을 하고 계셨다. 너무도 심하게 울부짖느라 그 행색을 알아채기가 무척 어렵기는 했지만... 아뿔싸, 내가 아는 분들 같았다. 아... 내 친구 아버지 어머니였다. 퇴근길에 인사드린 그 아버지, 슈퍼 가시더 그 어머니셨다. 도대체 저 두 분이 왜? 친구 어머니는 통곡을 하시다가 까무려치시더니만 잠시 뒤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강으로 뛰어들려고 하셨다. 옆에 다른 아줌마들이 필사적으로 말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친구 아버지는 이제 더이상 슬퍼할 힘도 없으신지 물끄러미 그 운동화만 바라보고 계셨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멀리서 봐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 친구의 운동화였다. 나와 어제까지만 해도 흙장난하며 조용히 웃던 그 친구의 운동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