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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급썰렁이 Aug 18. 2024

나의 일생 14

그 친구는 5대 독자였다... 그 긴 이야기의 끝마무리.

북천이었다. 경주의 젖줄이라고 하는 그 북천이었다. 그 시절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경주시 전역의 국민학교 학생들에게는 적어도 한번쯤은 소소한 추억거리를 바지 호주머니 속에 쥐어주던 그 강이고 그 시내였다. 나중에서야 듣게 된 얘기인데... 그날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던 그 친구는 북천으로 갔단다. 집에서 신나게 텔레비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있던 나 대신, 가끔 함께 놀던 쌍둥이 형제들과 함께 북천으로 놀러갔다고 한다. 그리고 북천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운동화를 가지런히 벗더니 곧바로 물로 들어가더란다. 쌍둥이형제가 미처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물로 들어간 그 친구... 몇 발짝 들어가더니 이내 허릿춤도 훌쩍 넘을 정도로 물은 깊어졌단다. 어느덧 그 친구 머리 위까지 물에 잠기고 어푸어푸 두어번에 그 친구가 사라졌단다. 당황한 쌍둥이 형제 둘 모두 너무 겁이 나서 물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로 발만 동동 거리고 있던 그 때에... 하늘이 그 친구에게 건넸던 마지막 손길이었을까. 평소 인적이 그렇게 많지 않은 그 북천 강가를 지나가던 한 청년이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하고 쏜살같이 달려왔단다. 지체할 틈 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어간 그 청년이 그 친구를 향해 손을 뻗기가 무섭게 그 친구의 머리가 물 속으로 쑤욱 들어가 버리고 말았단다. 그러고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단다. 그 청년이 연신 물 속을 이리저리 휘저어 봤지만그 친구는 아예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단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그 청년을 통해서였는지 아니면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 집에다 연락을 어찌어찌한건지 그 소식은 오래지 않아 우리 동네 동O주택에 전달되었던 것이다. 경찰차가 오고 소방차도 오고 엄블런스도 왔던 것 같다. 거기서 동네 사람들 모두가 이를 어째 이를 어째 하필이면 5대 독자가 저리 되어서 어째 하며 한참 동안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8살 어린 나이에 그 짧디짧은 생애를 마감한 것이었다. 그 시신을 찾느라 군인아저씨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을 동원되었다고도 했다. 잠수부까지 투입되었지만 단 1미터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칠흑같은 시야에 너무도 위험해서 철수했다고 했다. 그러고는 3일이 지났다. 그 사이 내린 비로 불어난 하천에 수색작업은 난항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했다. 사흘 동안이나 속절없이 물 속을 뒤지고 다니다 보니 수색하는 아저씨들도 자꾸만 지쳐가고 다들 시신도 못 찾는 거 아니냐며 우울한 기색이 역력했던 모양이다. 제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5대 독자의 죽음을 직면하기도 버거운 친구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속은 쌔까맣게 타들어가다 못해 시퍼렇게 멍이 들고 있었나 보다. 애초 실종되었던 그 운동화 한 쌍 자리로부터 수킬로미터나 한참 하류인 지점에서 그 친구가 드디어 발견이 되었다. 그것도 급류에 하염없이 떠내려 가다가 하류의 어느 돌다리 기둥에 걸려서 멈춰진 모양이었다. 그것이 그 친구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멈춤이었다.

 

흔치 않은 자녀의 죽음이라서 그랬는지 여느 장례처럼 병원이나 장례식장이 아닌 친구의 집에서 장례가 치뤄졌다. 아무리 친구가 죽었더라도 그 어린 국민학교 1학년 학생들이 단체로 조문을 갈 수는 없었을테고.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그 친구를 위해 1분간 묵념을 하자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학교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 동네에 살고 있던 그 친구의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에서였나 그 친구의 장례식에 가서 절을 하고 왔다. 거기서 담임선생님이 조문 오신 것도 봤다. 이 세상을 하직한 나의 가까운 사람 중 가장 첫번째가 그 5대 독자 친구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 친구의 아버지, 어머니는 다른 곳으로 이사가셨다고 했다. 단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이 끝끝내 견뎌내기가 힘들었나 보다. 그 뒤로 나는 그리고 우리 동네는 다시금 단조롭게 특별할 것 없는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2년인가 3년이 지난 어느 날 집 근처에서 길을 가다가 그 친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나가시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친구 어머니의 등에는 어린 아기가 업혀 있었다. 그날 저녁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얘기... 5대 독자를 잃은 슬픔도 잠시... 가문의 대가 끊길까봐 노심초사 하시던 집안 어르신들의 권유에 못 이겨 그 친구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로이 아이를 가지고자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끝에 어렵사리 또다시 아이를 낳게 되었단다. 그것도 그 친구와 같은 아들을. 그렇게 또 어느 대대로 손 귀한 집에 두번째 5대 독자가 태어나고 그 가문의 대는 끊기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너무도 일찍 하늘로 갔지만, 그 친구의 아버지 어머니 마음 속 깊이 묻혀 영원히 살아가게 되었다. 얼굴도 언뜻 흐릿흐릿 희미한 그 친구가 40년 만에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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