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벗기우신 예수님
<옷 벗겨지시는 예수님>
대전 가톨릭 사회복지회관
*쪽팔리다: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다'라는
말의 속어.
삼사십 년 전, 어느 연이은 폭설과 한파로 사방이 꽁꽁 언 어느 겨울날.
아직 걷지 못하는 세 살 아들을 두툼한 포대기로 둘러 업고 네 살 딸의 손을 잡고 병원 가는 길.
빙판길이 된 넓은 사거리를 조심조심 건너다 순간 나는 꽈당...
일순,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손잡아 일으켜 줄 때까지 나는 그냥 가만히 누워 있었다.
쪽팔렸다!
아픈 것보다 창피했다.
어릴 적 별명이 순둥이, 영국 신사였던 다운 신드롬 아들.
사춘기도 겪지 않았는데 서른 후반이 되면서, 늦게 온 사춘기인지 이른 갱년기인지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
어릴 때에는 만나는 동네분들에게 인사도 곧잘했는데, 이젠 길에서 누구를 만나도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복지관이나 태권도 도장에서 자주 만나는 그나마 얼굴 아는 여자아이들이 자기를 아는 체하지 않으면 아주 심기가 불편하시다.
지능은 어린이인데 감성은 청년의 그것.
속리산.
이삼십 년간, 가끔씩 우리 가족이 일박 이일로 가는 곳.
딸아이가 출가하면서 인원이 세명으로 줄었지만.
예전에는 아슬아슬한 말티고개를 지나야 갈 수 있었다.
정원 같은 숲길을 마저 지나면 나오는 산속 법주사 동네.
우리에게는 '속리산 루틴'이 있다.
오후 늦게 도착하여 항상 가는 호텔에 짐을 풀고
줄지어 있는 산채 식당가에서 맛난 식사를 한다.
노인 부부가 운영하는 오래된 한 노래방에 간다.
아들에게 노래방 이용은 가사로 한글 공부, 노래번호 찾다 보면 숫자 공부, 한 시간 온몸을 흔드는 체육 공부, 음정 박자를 무시하나 음악 공부시간.
노래방이 끝나면 속리산의 한산한 밤거리의 한 슈퍼 앞 평상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는다.
호텔로 돌아와 오래간만에 함께 느긋하게 가족 티브이 감상으로 하루를 마무리.
다음날 조반 후, 왕복 두어 시간의 속리산 산보 같은 등반.
아이가 어릴 때는 그곳 관광상품 가게에서 이런저런 장난감을 사주고 입산을 유인했다. 만보 달성.
산 초입의 우거진 숲을 지난다.
법주사를 끼고 선녀탕을 지나 좌측 문장대 길과 나뉘는 곳의 휴게소.
그 우측 돌다리를 건너면 우리의 목적지.
바위 사이에 흐르는 물속에 발 담그고 놀다가 하산.
이게 이 삼십 년간의 우리 집 루틴이었다.
어쩌다 보니 속리산은 오랜만이었다.
식사 후 단골 노래방을 찾았는데 없어졌다.
토속품과 산채나물 파는 가게들도 대부분 없어졌거나 카페로 바뀌었다.
예전 이곳은 해가 지면 거리가 어둑해져서
속세에서 벗어난 俗離 다웠는데 이제는 여기저기 카페들이 들어서 있으니 덜 속리 답구나.
어떻게 한 노래방에 들어섰는데 아들은 별 흥겨워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온몸을 흔들며 노래하니 자연히 다이어트 운동이 되었는데.
엄마가 나섰다.
찰찰이로 흥을 돋운다.
드디어 아들이 부른 만화 주제가가 100점!
다음날 아침.
식사 후 속리산 등반 시작.
그런데 아들이 가기 싫단다.
지금까지의 루틴을 깨겠단다.
어르고 달래고 협박하여 예의 그 목적지까지 근근이 도착했다.
하산하는 길.
아들 기분이 좋지 않다.
거진 다 내려온 지점에 있는 화장실.
아들은 볼일 없다길래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나 혼자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왔다.
그날따라 남편은 새로 생긴 숲길로 혼자 내려오고 있었다.
화장실 밖에는 쉬는 사람들과 동료를 기다리는 여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그곳을 떠나려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괴성!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그 괴성이 나오는 쪽을 일제히 바라본다.
다시 한번 고함소리!
벌게진 아들의 얼굴로 사람들의 눈길이 쏠렸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나는 어쩔 줄 몰라 아직 씩씩대는 아들 손을 붙잡고 총총 그곳을 떠났다.
등 뒤에 꽂히는 그들의 눈길들.
쪽팔렸다.
눈물이 핑 돈다.
부아가 난다.
어쩌라고.
이젠 속리산도 끝이구나.
사실, 이런 일이 오늘 처음 아니다.
복지괸에서도, 예술의 전당 음악회 인터미션 때에도, 딸네와 여행한 그랜드캐년에서도...
그런데
제일 힘든 사람은 아들 본인.
자기도 지 마음 어떻게 못 하는데 난들 어떻게 하라고...
쪽팔린다고 죽지는 않지.
사람들에게 창피하나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 애에게 어떤 도움이 되지도 못하지.
그냥 그들은 아이를 엄마를 측은히 볼 뿐이다. 쯧쯧.
하나님께 불평.
나
"하나님, 우리 애를 만드시고 보시기 심히 좋았노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쪽팔려요.
힘들어요."
하나님
"애야, 너 만 그런 게 아니란다.
사람마다 힘든 것들이 있단다.
그런데 '쪽팔린다'라는 속어 말고 '
고난'이라고 하면 훨씬 고상하지 않나?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
(로마서 5장 3-4절)'라고 약속했지?
고난을 통한 확실한 믿음이 불로
연단한 금보다 더 귀한 걸 알게 될 거야.
언젠가 이게 나의 특별한 선물인 걸
알게 될걸.
그런데 너 말대로 쪽팔리는 것.
그중 하나가 사람들 앞에 옷을 홀랑 벌거벗기는 게 아니냐?
그런데 내 아들이 그런 일 당했거든.
사람들이 침도 그에게 뱉었단다.
사실 그 애는 너희 잘못 대신 그렇게 된 건데.
내 아들이 그런 '쪽팔림'을 당했기에 네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 걸.
그리고 너는 그런 수모까지는 아니잖니?"
맛.
맛에는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이 있단다.
'쪽팔리는 쓴맛'도 인생의 한 맛이 되어
맛있는 내 삶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