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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Oct 31. 2024

삑사리의 은혜

강한 용사 여호와

삑사리:노래 또는 말하는 중 목소리의 옥타브가 자신도 모르게 순식간에 올라가버리는 현상.
음 이탈.

2013년경, 사랑의 교회 헌금 시간에  부른 한 전도사님의 헌금 송이 희대의 레전드가 되었다.

그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찍으며 그가  부른 '강한 용사 여호와'를 열광하며 찬양케했다.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까지.

폭발적인 음성이라? 미성이라?
아니다.
그분의 '쪽팔리는 삑사리' 로.

십 여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목회자가 된 레전드의 그 '삑사리 찬양자'의 근황이 전해졌다.


"샬롬!
세월이 화살같이 빠른 것 같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일도 시간이 흐르니 별 것 아니네요.
세월이 흐르니 육체의 아름다움도, 능력, 재능,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짧은 한 순간 뿐임을 느낍니다.

스스로 노래를 잘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인정을 받기도 했고요.
그러나 당시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학 공부를 하고 있었지요.
수년 동안 노래를 하지 않았고 매주 주일 찬양 연습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당연히 예전처럼 노래 부르는 것이 쉽지 않았고요. 그럼에도 찬양 목사님께서 가끔 헌금 특송을 시키곤 하셨지요.

'강한 용사 여호와 '도 목사님께서 그날 신청하신 곡이었습니다.
고음이 나오는 곡이었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저는 저 자신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내가 노래를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날으려는 날개를 모두 잘라 내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저는 여전히 저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음이 높으면 낮추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낮추지 않았습니다.
연습 때에는 결코 쉽지 않은 곡이었지만 실수는 연습 때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본방?에서는 결코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런 작품을 탄생시키고 말았습니다.

음 이탈이 나는 순간 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기분이었습니다.
더는 표현할 수가 없네요.
수 년이 지나서야 저의 영상을 웃으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날, 삑사리사건의 현장.

처음에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했습니다.
분위기는 진지했고 어느 누구도 웃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마이크 전원을 끄면서 나는 이 참사가 마치 마이크 고장인듯 한번 흘낏 노려보았습니다.
강단에서 내려와 자리로 돌아가는데, 회중들이 작은 소리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어요.
그 소리는 점점 커져 우레 같은  박수로 변했습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 박수 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노래를 사랑한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른 적도 없었습니다.
단지 저는 잘난 척을 하고 싶었고,
환호를 받고 싶었고, 우월감을 느끼며, 그것이 노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었고 노래 부를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수가 꿈이 아니라 환상이 꿈이었던 것이지요.
생각이 이렇게 정리가 되자 가수의 꿈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더 이상 노래나 음악은 의미가 없습니다.
저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저가 이런 생각을 할 즈음 진정으로
'강한 용사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의미 있는 삶이 어떤 삶인지,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의 삑사리는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니라 고마운 존재가 되었어요.
저의 삑사리는 하나님 없이 살려 했던 나의 지난 삶의 요약입니다.
이제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허망한 마음을 뒤로하고 참된 것과 영원한 것을 따르려고 합니다. 응원해 주십시오."

나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강한 용사 삑사리'영상을 보게되었다.
너무 웃겼다.
그분의 최근 영상도 뜨길래 내쳐
보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오버랩되는 나의 지난 시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의  인생 삑사리,  '강한 용사 여호와'.

넉넉치 못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근면과 성실이 인간 최선의 덕목이라고 여겼던 우리 부부.
그래서 얻은 그럴듯한 학력이 그 결과요 그것이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했다.
그랬던 우리에게 나타난 인생 최대의 삑사리 - 지적장애인 아들의 출생.
내 열심이 이룬 순탄한 행복을 노래하던 우리가 단상에서 삑사리를 내고  허급지급 내려오던 그날.
우리는 두 손으로 벌개진 얼굴을 감쌌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망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애로 인해 진정한 행복을 주시는 '강한 용사 여호와'를 만났다.
이 애로 인해 우리는 의미 있는 삶, 하나님 없는 삶의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이 애는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니라 고마운 존재이다.

40여 년 전, 아들을 낳은 날.
아기가 다운증후군이란다.
지능은 아예 기대할 수 없단다.
빈 입원실로 남편과 들어가 울음으로 마친 주기도문.

지금은 들린다.
그때, 믿음의 선배들이 치는 박수소리가.
조심스럽게 시작된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져 우레가 된다.

지금은 보인다.
웃고 계신 하나님.
입을 막고 웃으시던 그날 그 교회 담임목사님처럼.


https://youtu.be/P7bE1YOWoww?si=5JS2Fi5x8-Pdw1Ww




































​​















유튜브에서 본 한 영상.



보면서 웃고 그리고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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