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식당과의 이별
추억의 의식을 치르는 식당.
그 실연의 추억
오래간만에 저녁으로 스테이크를 내놓았다.
이런저런 색깔 야채도 접시 한편에 담고 수프도 곁들였다.
수저 아래 빨간 냅킨을 깔아 멋을 내었다.
아들이 식탁에 앉으면서 "엄마, F 데이"
'F 데이'
한때 우리 식구가 즐겨가던 추억의 레스토랑.
아들은 간만의 폼 나는 식사에 예전 그 레스토랑이 생각난 모양이다.
우리 가족은 특별한 날이나 기쁜 일이 생기면 으레 패밀리 레스토랑을 갔다.
그래서 식당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꽤 있다.
맛있는 음식도 좋지만 오래간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겁다.
적당한 음악과 소음, 맛있는 음식.
무엇보다 집에서는 주부가 계속 치다꺼리를 해야 하나 그곳에서는 모든 이가 모임에 열중할 수 있다.
집에서는 얼른 식사를 하고 일부는 각자 방으로 간다든지 TV 앞으로 옮길 수도 있다.
식당에서는 그 자리에 머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오래간만에 팀스피릿을 쌓는다.
식당에서의 가족 외식은 그래서 추억의 의식을 치르는 것.
'F 데이' 레스토랑.
그 식당 안에 들어가는 순간 즐겁다.
각종 캐릭터 장식들을 한 웨이터리스들이 꿇어앉아 정중히 주문을 받는다.
특별한 날을 맞는 고객에게는 바니걸들이 요란하게 찰찰 이를 흔들며 축하해 주었다.
애들이 청소년이었을 때부터 다니던 그 식당.
대학진학으로 집을 떠났던 딸애가 처음으로 집에 왔을 때 환영파티를 한 곳.
딸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처음으로 턱을 냈던 곳.
사위가 처음으로 처갓집 외식에 동참한 곳.
남편이 평소 집에서는 안 하는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곳.
네 명의 가족이 대학 간 딸의 부재로 세 명이 되다가 사위가 합류하고 곧 두 명의 손주가 태어나 일곱 명이 되었다.
조용한 외식이 두 꼬마로 난리 법석을 떨게 되었지만
그곳에서의 리튜얼은 계속되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말들 중 하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시간이 쌓여 생긴 情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바이바이...
언젠가부터 좀 이상하기는 했다.
서비스가 예전 같지 않았다.
따끈하지 않게 나오는 음식.
빈약한 소스, 겉이 마른 빵...
그러다 어느 날
닫힌 식당 문에 붙어있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앞에 요란하게 걸려있던 간판도 없다.
식당이 없어졌다...
이 집에 오면 디저트로 주문하던 초콜릿케이크가 정말 맛있었는데...
우리 가족의 추억의 한 페이지가 넘겨졌다.
지금은 삼성빌딩으로 아예 개축한 그곳.
가끔씩 그 근처를 지나간다.
가슴이 아려온다...
A 뷔페 레스토랑
그 식당엔 칸막이된 단체석이 몇 있다.
손주들이 좀 자라고 딸네 네 식구가 오면 그곳을 들렸다.
식당 입구에 커다란 봉제 원숭이가
매달려 있어 아이들은 '원숭이 식당'이라 불렀다.
뷔페식당이라 애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도 있어 너무 좋아했다.
칸막이된 좌석에서 어른들은 이런저런 그 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애들은 자기 먹고 싶은 것들을 가져다 즐긴다.
그곳에 다녀오는 깊은 밤, 차 안에서 손녀는 평을 했다. "오늘도 좋은 밤"
그날도 일곱 식구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생애 언제까지 이런 모임이 가능할까?
딸애, 사위, 두 손주, 남편, 나, 그리고 장애인 아들 - 이 중 누구 하나라도 없으면 지금처럼 행복할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 명씩 이런저런 일로 떠나게 되겠지.
딸애가 없으면 아예 사위가 처가에 올 일이 없겠지.
내가 없으면 이 모임이 이루어질까?
이 중 한 명이라도 없으면 이렇게 즐거울 수 없겠지.
오늘이 귀하구나.
이 순간이 귀하구나.
우리들의 마지막 모임의 시간을 누가 알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두가 지금 이 순간 여기 있다는 것.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울 이 순간 이 사람들.
예전 친정가면, 엄마가 좋아하셔서 즐겨가던
스무가지 음식이 나오던 '샤랑도횟집'
부모님이 소천하시고 친정집도 팔린 후 나는 친정이 없어지고 고향 갈 일도 없는 고아가 되었다.
그 횟집은 꿈속의 식당.
그렇게 그날 나는 우리 모임의 멤버가 떠나는 걸 두려워했다.
변수는 딴 곳에 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그 식당이 문을 닫았다.
우리 가족 만의 비밀 아지트인 별실이 사라졌다.
축제의 장소가 없ㆍ어ㆍ졌ㆍ다.
그날이 마·지 ·막이었다.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그 장소가
때로는 우리를 버리고 없어진다.
우리는 사랑하던 사람에게만 실연을 당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던 식당에게도 실연을 당한다.
뜻밖의 슬픈 이별이나
추억은 그래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