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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은 같지요

옹이 진 나무가...

by 제이

살아 볼수록 느끼는 건 인생의 합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을 총량의 법칙으로 매기는 사람도 있다.
효도 총량의 법칙.

늙으신 부모 십 년 병구완에 효자 되기 어렵다.
지랄 총량의 법칙.

어려서 애 먹이던 자식이 나이 드니 모범생이 되더라.
행복 총량의 법칙.

인생은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불행 총량의 법칙. 걱정 총량의 법칙...
아침에 세 개 가진 자는 저녁에 네 개 가지고(朝三暮四)
아침에 네 개 가진 자는 저녁에 세 개 가진단다. (朝四暮三)
합은 모두가 일곱 개.
먼저냐, 나중이냐 순서의 문제요
이쪽으로 기울어졌냐 저쪽으로 기울어졌냐
각도의 문제이나 물이 흐르면 평평해진다.

사회적으로 낮다고 생각되는 어떤 이도 어떤 일도, 지나 보니 무언가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누구도 어떤 일도 업신여길 수 없는 노릇이고, 눈 여겨 진작 그 숨겨진 보물을 알았더라면 지난 세월 훨씬 풍요로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을 거라는 때늦은 후회도 생기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성적 좋은 애가 지존이다. 대한민국 고가 아파트 위치는 학군 좋은 곳, 학원 좋은 곳과 일치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책은 행복은 성적 순이라는 현실을 나타낸다.

S대 출신의 칠순 넘은 지인 A.
예전 S대에 합격한 순간,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 좋은 직장, 좋은 급여, 좋은 대우, 좋은 지위.
그러나 퇴직과 함께 학벌의 유효기간은 거기까지다. 막상 그런 직장에서 졸업하는 순간, S 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그의 학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외모 그의 옷차림 그의 걸음걸이를 본다. 동네 늙은 할아버지.
퇴직 후 실존의 세계에서는, 머리가 아닌 손이 말한다. 품성이 말한다. 생존에 필요한 무언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밥 짓기를, 세탁기 작동법을, 집수리법을, 층간 소음으로 신경을 긁는 윗 집과의 소통법을...
그런 것은 학교 성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
부하직원들이 있었고 비서가 있었다. 명령을 내리고 방향을 제시하기만 하면 되었다.
머리만 필요했다. 구태어 남을 고려할 절실함도, 잘 보이기 위한 굽실함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모든 계급장이 떨어지고,
여전히 잘할 것 같으나 누구 하나 나를 불러주지 않은 나이 든 노인이 된 지금, 성적이 필요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어설프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서툴다. 힘든다.

지인 B 씨
평생 형제들의 걱정거리였던 그분.
최소한의 공부만 했고 변변치 못한 이런저런 직장을 전전. 결혼생활도 윈만치 않았다.
그런데 변변한 것 하나 가진 것 없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젊을 때부터 세상풍파에 흔들리며 연마된 그의 품성은 나이가 드니 제 가치를 드러내었다.
팔순이 다 된 이 나이까지 혼자 생활하면서도, 아니 혼자 생활하다 보니 몸단장도 깨끗. 요리, 집안살림도 척척, 불편함이 없다.
평생 남들과 부대껴 살다 보니 매너까지 좋아서 동네 과수댁들의 흠모의 대상까지 되었다.
화려한 말년이다. 누가 누구를 걱정할까?

잦은 이사 때마다 존경하는 분들이 있다. 익스프레스 이삿짐 담당 아저씨들.
아찔아찔한 높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무거운 가구들을 척척 사다리차에 올리고 내리시는 분들. 그분들 없이 내가 직접 그 일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난 평생 이사 한 번 못 할 거야.
집이 오래되니 이곳저곳이 고장 나고 무너진다. 욕조가 금이 가고 문은 빡빡해지고 유리창은 들뜬다. 그때마다 달인들이 오셔서 속이 시원하게 고쳐주신다.
지워도 막무가내로 들어붙은 옷의 얼룩을
뚝딱 지워 새 옷으로 만드시는 세탁소 아저씨.
동네 중국집 아저씨의 솜씨는 또 어떤가? 뚝딱 요리 한 접시.

도로포장 지게차들의 묘기를 보셨는가?
얼마 전 우리 아파트 단지가 대대적으로 바닥 전면 재포장 공사를 했다. 바닥을 포장하는 날. 각종 다른 용도의 지게차 대여섯 대가 와서 바닥 포장 공사를 했다.
쇼가 따로 없었다. '타타타' 표면을 긁어내는 차, 이리저리 스텝을 밟으며 적당하게 아스팔트재료를 붓는 차, 그것을 우아하게 앞발을 들어 고르는 차, 뒷 쪽으로 다지는 차, 앞 뒤로 우아하게 회전하며 그위를 누비며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차등. 몇 시간 만에 멋진 바닥 완성.

무용이라는 게 무대에서 무용수만 하는 게 아니었다. 도로포장 지게차팀들의 일사불란한 묘기의 공사도 멋진 무용이었다. 물론 그들은 무용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성적이 좋지 않으면 힘들게 몸을 써야 하니 공부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머리 좋은 사람들 덕분에 차가 디자인되고 만들어진다.
그러나 솜씨 좋은 사람들 덕분에 차가 고쳐지고 유지되고 계속 굴러간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과학이 발전하지만, 솜씨 좋은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에게 사회가 유지된다.
그러니 합은 같다.
모두 소중하다.

언어전달도 미숙. 숫자도 캄캄한
다운증후군 우리 아들.
이 미친듯한 속도의 세상
무한대의 지식습득 가능의 세상에서
느릿느릿, 알듯 말듯
쉬엄쉬엄 살아도 괜찮다는 그 애의 역할도 소중하다.
아들은 언감생심인 영어단어도 달달,
어려운 수학문제도 척척 푸는 중학생들이 어느 날 연주회에 왔다.
음악회 내내 꿈적거리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주의도 받더니 중간 쉬는 시간에 우르르 몰려 나가 버렀다.
정신지체인인 아들은 즐겁게 음악감상.
이것은 달란트 총량의 법칙.

곧고 미끈한 나무가
아씨네 방 장롱으로
절간의 우람한 기둥으로 간택되지만
정작 산을 지키는 건
이도 저도 간택되지 못한
옹이 진 나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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