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보이는 봄날의 젊음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십여 년 후 마흔이 되어 새로운 공부를 하고 일을 시작하였다.
일은 재미있고 나름 보람되었다.
어연 50세가 되고 이라크 전쟁터 같다는 갱년기가 찾아왔다.
이런저런 사정과 건강으로 일단 부분 일을 쉬기로 했다.
나중에 다시 다른 부분으로 복귀를 했지만.
그동안 내가 재미있게 했던 일들 중 하나의 후임자는 우연히도 딸 또래의 나이.
후임자인 젊은이의 청순함, 생기발랄...
에고 저런 자리에 내가 있었구나.
등에 식은땀이 났다.
그래도 소년원 봉사는 계속했다.
나이 들면서 여자는 중성화가 된다.
여자가 거진 없는 소년원.
일주일에 두어 번 그곳에 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늙은 여자는 별 여성스럽지 않더라도 그곳에서는 엄마의 느낌으로 검정고시, 성경 공부, 상담을 계속했다.
2주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동안의 빈자리를 마침 방학이라 집에 내려온 대학생 딸에게 맡겼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소년원에 갔더니 애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그 누나는 이제 안 와요?"
애들은 늙은 엄마보다 젊은 누나가 좋단다.
언젠가부터 사방에서 보이는 나처럼 늙은이가 되어가는 이들...
얼굴의 자글자글한 주름.
여기저기 검버섯이 생기고
피부 가려움증이 생긴다.
잇몸이 내려앉으며 이빨 사이가 벌어지며 임플란트 해야 할 치아가 늘어난다.
의치 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
눈꺼풀이 날로 밑으로 쳐지니 시야가 좁아진다.
침침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는 저기가 오늘은 여기가 아프다.
이런저런 평생 먹어야 할 약들이 늘어난다.
나이도 있고 쉬면서 건강이나 챙기자며 일을 그만두었는데 변수가 생겼다.
칠순 넘은 시누님이 췌장 말기 암으로 진단을 받으셨는데
이 도시 대학병원으로 모셔오게 되었다.
암 환자시라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한다.
차로 왕복 한 시간 거리의 병원에 간병차 내가 출근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짜 쇠락의 색깔을 시누님을 간병하며 보게 되었다.
말기 암 환자들이 입원한 병실.
그곳은 죽음의 어두운 회색빛이었다.
곧 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느릿느릿한 움직임들. 절망감.
시누님에게 입원 한 달 동안 각종 검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퇴원 명령.
하루 한차례의 항암치료만 하면서 병실을 차지하기엔 병실이 모자란단다.
시누님을 병원 근처의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매일 대학병원으로 항암치료차 모시고 다녔다.
요양병원!
거기에는 말기 암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끝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수많은 노인들로 가득 찼다.
내 한 몸 내가 건사하지 못하는 이들.
화장실까지도 걸어가지 못하고 내 용변처리도 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動物이 아니라 누군가가 옮겨주어야 할 植物이 되신 분들.
부모 슬하에서 귀여움을 듬뿍 받으며 자라던 어린 시절의 집이 있었을 것이다.
결혼하여 자녀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었을 젊은 시절의 집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을 다 키워 내보내고 부부들이 살던 좀 전의 집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좁은 침대 한 공간에서 살아는 있으나 죽은 자 같이 꼼짝없이 누워있다.
이곳으로 들어오면 다시는 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마음은 원해도 꼼짝할 수 없는 쇠약한 이 몸.
누군가가 24시간 도와주어야 그래도 숨을 쉴 수 있는 지금.
요양병원 병실은 회색을 지나 검은색이었다.
그런데 그 검은 공간에 발광체가 떠다녔다.
젊은 간호인들.
그렇다. 그들은 밝음이고 빛이었다.
병상의 어르신들.
그들은 세수를 해도 안 해도 별 차이가 없다.
눈알이 휑해진 그들은 여자도 남자도 비슷해졌다.
그런 어르신들 사이로 산뜻한 화장을 하고 (그녀들은 화장을 굳이 안 해도 산뜻하다) 향긋한 냄새를 발하며(그녀들을 향수를 굳이 뿌리지 않아도 향긋하다) 다니는 그녀들.
누군가 낑낑대며 부축해야 휠체어라도 탈 수 있는 환자들 사이로 그녀들은 꽃잎처럼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종일 누워있느라 파뿌리처럼 메마르고 성긴 머리카락이 쑥대밭이 된 노인들의 머리카락.
그러나 젊은 그녀들의 머리카락은 풍성했고 반짝거렸다.
젊은 그들이 있기에 노인들이 도움을 받으니 참 감사하지.
만일 세상에 늙은이들만 있으면 어찌 될까...
그러나 젊은이들아,
쪼그라져 송장처럼 누워 있는 이 늙은이들.
이분들도 너네처럼 빛나는 봄날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게 이해는 가나 공감은 안 되지?
게츠름하고 쪼그라진 눈의 저 할머니가 먼 예전 어느 날, 한 청년이 목숨 걸고 구애했던 호수같이 맑은 눈이었다는 게 믿기 어렵지?
그들에게도 정열과 낭만과 폭풍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
마치 지금의 너네들처럼.
너네들도 언젠가는 도달할 저 지점.
영화 '은교'에서
'너희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늙는다는 것
이제껏 입어본 적이 없는 납으로 만든 옷을 입는 것.
다시 20년 세월이 흘러갔다.
지난 코로나 시기.
칠순을 훌쩍 넘긴 남편과 식당에 갔다.
종이에 출입자, 이름, 주소들을 적으란다.
남편은 대표로 본인 것만 적었다.
옆에 선 종업원이 각자 다 적어라고 참견한다.
남편이 짜증스럽게 말한다.
"그럼 각자 다 적어라고 표시했어야지?"
젊은 종업원이 긴장을 한다.
`에고 늙은이... '하는 것 같다.
다른 가게에서.
역시 코로나 입장 등록을 해란다.
남편은 적는 종이 곁에 있는 전자결제 펜을 무심히 집어 적으려니 적히지 않는다.
곁에 선 종업원이 "어르신 그 옆에 있는 볼펜으로 적어셔야지요."
불쾌하다. 그럼 볼펜을 바로 옆에 두던가.
바보 취급을 받았다. 어르신이라...
한때 공대를 나왔고 반짝반짝했던 그 청년도 늙으니...
어르신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장애인이 되어간다.
바보가 되어간다.
"어르신 그러시면 안 되고요"
"어르신 저가 도와드릴까요?"
"어르신 어르신..."
허기야 국가검진 신체검사 결과도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기관에 문의하니 일단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은 다 그 판정을 받는단다.
나이로 인해 자동적으로 지적장애인 등극.
코로나로 오랜만에 나이 든 지인들을 만났다.
한때, 영향력 있고 스마트하셨던 그분들.
조금씩 느려졌고 어눌해졌고 헤매시고 몸들이 나빠졌다.
세월의 무게에다 코로나까지 합세하니.
한때 활짝 폈던 꽃들이 점점 쭈그러지고 말라가더니
어느 날 툭~ 땅에 떨어지기 직전.
젊은이들은 공부하느라고 직장 다니느라고 애 키우느라 바쁘다, 힘든다.
가끔은 무료하고 힘든 청춘의 때.
지나고서 보이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시기.
밝은 곳에서는 밝은 게 심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어두운 터널 안에서 밝은 바깥을 보면 바깥세상이 눈부시다.
어쩌다 어르신이 되어보니
빛나는 봄날의 청춘이 보인다.
세상 여느 것처럼
모든 청춘도 언젠가는 시들고 삭아내린다.
피어나는 새로운 젊음들이 그때야 보인다.
우리는 왜 지나서야 세월의 아름다움을 보게 될까?
작심하고 누리자 오늘의 나의 청춘을.
왜냐하면
오늘이 나의 남은 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이기에.
싹은 싹대로 꽃은 꽃대로 낙엽은 낙엽대로 아름답다.
꼬부랑 할머니면 어때?
아직 나는 살아있고 내 옷을 내가 벗고 입을 수 있고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고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늘 아침에는 러닝머신에서 반시간 뛰기도 했다네...
Bravo my life!
시인 롱펠로의 詩
'노년도 청춘 못지않은 기회이니
청춘과 조금 다른 옷을 입었을 뿐
저녁노을이 히미 하게 사라지면
낮에 없던 별들이 하늘을 채우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별들이 보이는
노년이라는 밤의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