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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아니 가면

일단 해보고...

by 제이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 초 접었다.

이후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첫애가 중학교 입학을 앞둔 90년대 초, 내나이 39살 겨울, 새로운 공부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내 형편,

계절마다 병치례하는 허술한 건강, 이제 막 배운 서툰 운전,

무엇보다 특수학교 초등부에 다니는 정신지체 장애인 아들이 있다.

물론 통학버스가 있으나 하교 시 집 근처 8차선 건너편에 애를 내려준다.

혼자 길을 건너기도 위험하고 집에 도착해도 그 당시의 키로 여는 현관문을 잘 열지 못했다.

교회에서, 길 가다가, 옷에 오줌을 지려 당황할 때도 있었다.

그 애 케어를 어쩌려고?

그리고 딸.

교과목 과외수업은 차치하더라도 이런저런 악기를 레슨 받고 있으니 최소한의 라이딩을 해줘야 한다.


내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명분도 있고 하나님의 싸인도 받은 듯하여

'시험을 봐야겠다' 생각하다가도, 이런저런 현실을 생각하면 '이건 불가능해, 무리야...'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든 생각.

일단 시작해 보자.

시험에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럼 그만두지 뭐.

다니다 골골 아플 수 있다.

아들 문제가 힘들 수 있다.

엄마가 늦게 귀가한다든지 너무 일찍 나가는 경우가 생기면 누가 그 애를 돌볼까?

아들이 아파 결석한다면?

그리고 그리고...

그러나

일단 시도하자.

하다가 안되면 그때 그만두지 뭐.


어쨌든,

나는 39살의 나이로, 훨씬 어린 젊은 애들과 학교를 잘 마쳤다.

졸업하기 전 일자리도 생겼다.

차로 왕복 한 시간 거리의 엄마학교.

입학 즈음에는 익숙지 않은 운전으로 밤이 되면 발이 저리고 온몸이 피곤했으나 졸업 즈음에는 이력이 났고 점점 건강해졌다.

가끔씩 아들이 일찍 하교하는 날, 아들을 돌보기 위해 엄마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부랴부랴 집으로 갔다가 다시 학교로 간다.

이쯤이야.

아들이 학교 쉬는 날이면 엄마 학교에 같이 가서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기다리게 했다.

마침 같은 학교 다니는 아들 친구 엄마가 필요시 등하교를 도와주셨다.

아파트 옆 미술 학원에 아들이 다니게 되었다.

아들은 하교 시 집 대신 미술 학원으로 가서 엄마가 올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엄마 때문 시작한 미술 레슨으로 아들은 개인 전시회까지 하게 되고 나름 작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쩌면 하나님은

아들을 이렇게 만들기 위하여 나를 떼어 학교에 보낸 거 같기도 하다...

섭리!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였는데 무사히 졸업을 했다.


49살 때 또 다른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도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였는데 감사하게도 국립대 교육대학원에 합격하여 잘 마쳤다.

이때도 20살 이상 어린 젊은이들과 수업을 잘 마칠 수 있었고 이곳에서

소년원 봉사라는 문이 열렸다.


상황을 보면 안 될 것 같은 때,

그러나 해보고 싶을 때

일단 해보자.

아니면 말고 밑져야 본전이다.

뭐든지 해보고 안되면 포기해도 안 늦다.

안되면 안 되는 것이고, 되면 좋다.

한 번 시도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포기한 게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유명한 말, "자네 해보기는 했어?"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간 만 못하다'가 아니라

'가다가 아니 가면 간만큼 이익이다'


꿈을 꾸고 자면 꿈으로 남지만

꿈을 꾸고 시간을 투자하면 현실이 된다.

25년도가 시작되었다.

어떤 꿈이 남아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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