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사람은 위기를 기회로 삼지만, 무능한 사람은 기회가 와도 지나쳐버린다. 그러고는 고통 속에 산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나 단체로 확장하면 심각성은 더하다. 무능한 리더 아래에서는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된다. 뉴스를 보니, 내년도 교육 예산이 삭감되었다고 한다. 가장 큰 예산 삭감은 교사 인건비로 추측한다. 출생률 저하로 인해 교사 수를 줄여나가겠다고 한다. 산술적으로 보면 당연한 조치다. 출생률이 낮아지면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문제가 생긴다. 바로 학급당 학생 수. 교사 수를 줄인다는 것은 학급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고, 학급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 학급 당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학생 수가 줄어드는 지금의 위기를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지난해 퇴직을 하고 올해에 기간제 교사로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다음 주에 종업식을 하기 때문에 이번주에 학급편성을 하기로 했는데, 다음 주로 미루었다. 전입생이 한 명만 더 오면 한 학급을 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기대하면서 학급편성을 늦추었다. 올해 3월 초에 우리 2학년은 5개 학급, 120명으로 출발했다. 한 학급당 평균 24명. 특수학급 학생이 있는 반은 24명보다 적다. 학생 지도의 어려움을 감안한 '특혜'다. 우리 반은 25명으로 시작했다. 1년 동안 전출입 학생이 있더니, 현재 2학년 전체 재적이 110명이 되었다. 인근에 신도시가 생겼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학생이 줄었으니 학급 수를 줄이라는 것이다. 교육부 과밀학급 기준이 28명이라서 110명으로는 5개 학급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
교육부 지침대로 110명을 4개 학급으로 편성하면, 한 학급에 27명 내지 28명이 된다. 게다가 특수아동이 있는 반의 학생 수를 줄여주면 어느 학급은 29명이 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학급 수를 줄여야 한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학교 밖의 사람들은 '예전엔 50명 60명 학생도 한 교실에서 공부했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할 수도 있다. 한 반에 60명이 공부할 시절에는 일제식 수업이 가능했다. 지금은 교단도 학생도 '선진화'되어서 그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30명 안팎의 학생들과 개별화 교육, 토론식 수업, 기초학력신장교육 등 교육 선진화를 하기에는 힘든 조건이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 학년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우리 학교 다른 학년도 1개 학급씩 줄어든다고 한다. 사정은 2학년과 비슷하다. 학급 수가 줄면 교과전담교사 수도 줄어든다. 2024년 2월에 7~8명 교사가 다른 학교로 전출을 하고 한 명만 전입해 오게 된다. 단위 학교에 교사 수가 줄어서 발생하는 문제가 또 있다. 바로 학교 업무다. 교사는 학생지도뿐만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학교업무가 더 있다. 행정업무량은 그대로인데, 교사 수가 줄어드니 보직교사 수도 줄여야 하고 교사 1인당 감당해야 할 수업 외의 업무가 가중된다. 행정 업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교육청으로부터 바로 연락이 오거나,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교사들은 학교 업무를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수업 시간에 학교 업무를 하는 상황이 올 때도 있다. 너무나 급박한 상황에서 교사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여가도 없다.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최근 신도시가 된 어느 지역에서는 교실이 부족하여 모듈러 교실을 짓는다고 한다. 학생 수가 30명이 넘어 교실이 부족하니 불가피한 일이다. 모듈형 교실은 공장에서 교실을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해 교실을 완성한다. 완공까지 2주일이면 충분하다고도 한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교실이 모라란 것도 아닌데, 학급 수를 줄인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이렇듯 교실 증축은 속성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학생 교육은 속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성장은 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부도 때가 있다.'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학생과 교사 모두 행복하게 가르치고 배우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교도소가 좁아 고통을 당했다면서 재소자 50명이 국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하였다. 법원은 재소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국가가 수용자들을 1인당 도면상 면적이 2㎡ 미만인 거실(기거하는 방)에 수용한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해 위법한 행위라고 봐야 한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2023. 11. 4. '더팩트') 물론 재소자들은 기거하는 방에서 먹고 자는 일상생활을 모두 한다. 하지만 교실도 마찬가지다. 자는 일만 빼고는 대부분의 일을 교실에서 한다. 급식실이 수용 인원이 제한적이어서 교실에서 급식을 하는 학교도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우리 교실 면적을 재보았다. 사물함은 붙박이라서 그걸 빼고 쟀다. 8.75m☓7.20m=63㎡이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학급당 학생수 27명을 두고 따져보면 학생 1인당 면적은 2.3㎡다. 재소자의 도면상 면적보다 0.3㎡ 넓다. 이쯤 되면 교실에서 학생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상상이 되는가. 교실에서 학생들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읽고 쓰는 공부만 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토론도 해야 하고 모둠 활동도 한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게임이나 놀이도 한다. 가끔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친구들과 신체 놀이도 한다. 쉬는 시간이면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수다도 떤다. 마음에 맞지 않아 몸싸움도 한다. 교사는 아이들이 다칠까 봐 전전긍긍한다. 20평도 안 되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교사는 1년간 서로 부대끼며 산다. 아파트 평수와 교실 평수를 비교해 보기 바란다.
교실뿐인가. 아이들은 교실 외에 교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한 장난을 치거나 다치기도 한다. 특히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놀거나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장난을 치며 놀다가 다치기도 하는데, 모든 것이 담임교사의 책임이다. 이런 불상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 쉬는 시간이건, 점심시간이건 교실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는 교사도 있다. 맘껏 뛰어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가엾기는 하지만, 교사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교사의 에너지도 한계가 있어서, 금쪽이를 돌보느라 학급 전체 학생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자동차에만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 아니다. 30명 가까이나 되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교실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교사의 시선이 다 닿지 못하는 곳에서는 각종 사고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2023년, 여러 학교에서 발생했던 민원 대부분은 학생의 사고로부터 기인한 경우가 많았다. 교사의 눈치를 살피면서 크고 작게 벌어지는 사고 말이다. 다치는 사고, 다투는 사고 등. 페트병을 자르다가 다치는 사고, 연필로 친구의 손이나 얼굴에 상처를 내게 되는 사고 등.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작은 학교, 학생 수가 적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보도는 본 적이 없다.
1학년 때 한글을 깨치지 못해도 2학년으로 올라간다. 하룻 동안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못해도, 선생님과 오고 간 말이 없어도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듯이 한 교실에서 20명이 공부해도 30명이 공부해도 6년의 시간은 흘러가고 학생들은 졸업을 한다. 학생들이 어떤 질의 교육을 받고 졸업하는지는 측량하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다고 잴 수 없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교육여건 개선의 핵심은 학급당 학생 수다. 아이들에게 학습준비물을 사주는 것, 늘봄교실이나 돌봄 교실 늘리는 것, 학급운영비로 생일파티해 주고 간식 사주는 것, 이 모든 것에 앞서야 할 것이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것이다. 교육개혁의 첫 발걸음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도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생의 의식이나 행동 등에 영향을 주는 교육환경을 물리적 환경과 인적 환경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교실 환경은 대부분이 비슷하다. 19평 내지 20평 되는 공간이다. 문제는 인적 환경이다. 교사와 학생이다. 정해진 교실면적에 얼마만큼의 사람이 함께하냐가 관건이다. 경험상, 가장 이상적인 학생 수는 16명이다. 특히 4명씩 4모둠으로 하면 여러 가지 학습이나 놀이를 하는데에 효과적이다. 적을수록 좋지 않냐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학생은 교사로부터 배우기도 하지만 학생들끼리 배우는 것도 상당하다. 16명은 어려우니 20명이라도 지키자는 얘기다.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는 학급 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하려는 정책을 많이 내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도 알아준다. 그 교육열이 여러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이만큼의 나라를 꾸려온 것도 교육의 힘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가난한 부모도 자식에 대한 교육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IMF때 가정에서는 여러 문화비, 외식비, 생활비를 줄여나갔지만 가장 늦게까지 고수했던 것이 자녀 교육비였다는 뉴스를 들었다. 가정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손 놓을 수 없는 것이 자녀교육이다. 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국가 예산이 부족하다고 해도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