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류시화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앗, 내가 생각한 류시화가 아니다. 어깨를 타고 내려가는 긴 생머리에 깎지 않은 턱수염 그리고 그를 덮고 있는 후줄근한 옷차림, 나에게 각인된 류시화의 모습이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미욱한 내가 새해에 만난(책으로 만남) 류시화는 달랐다. 겉모습만 보고 생각한 류시화가 아니다. 도인 같기도 하고 철학자 같기도 하고 또 시인 같기도 하고, 알고 보면 이 모든 걸 아우르고 있다. 특히 그는 인도 여행을 하면서 여러 수행자나 빈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여행을 하면서도 글쓰기를 쉬지 않는다. 여행과 수행을 동시에 하면서도 번역일까지 한다니 존경스럽다. 그는 현재까지 70여 권의 책을 썼다. 시집 잠언집 우화집 산문집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권을 출판했다.
내게도 류시화의 책이 세 권 있기는 하다. 시집과 잠언집인데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 시는 어렵다는 편견 때문인지 그의 시를 읽으면서도 즐거움을 못 느꼈다. 문득 그의 삶과 글이 궁금했다. 시에도 작가의 삶이 반영되기는 하나 산문만큼은 아니라고 여겨왔다. 온라인 서점을 기웃거렸다. 그의 산문집이 출판되었음을 알았다. 결제를 하고 그의 책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틀 후,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배송일시를 알리는 문자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눈방울이 더욱 굵어졌다. 교통사정 때문에 택배기사가 오지 못한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될 정도였다. 걱정을 한참 하고 있는데, 배송시간 알림보다 책이 일찍 도착했다. 눈길을 뚫고 달려온 택배기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으나, 어느 순간에 현관 앞에 책을 놓고 갔다.
동지섣달 꽃을 보면 이런 기분일까.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내게 온 그의 책이었다. 바로 류시화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수오서재, 2023)이다. 읽는 내내 그가 나를 위해 쓴 책인 것 같은, 달콤한 착각도 했다. 글꼭지마다 와닿았다. 그의 글을 추앙하게 되었다. 그의 산문은 우선 가볍게 출발한다. 깃털처럼 가볍게 출발한다. 가끔 히죽히죽 웃게 만든다. 그러다가 심장이 진동한다. 때로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그러고는 밑줄을 치게 만든다. 이렇듯 그의 글은 온몸으로 읽게 한다. 그의 글이 감동적인 이유를 세 가지로 꼽아 보았다.
첫째, 그는 인간적이다. 여행(수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가 리얼하다.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관찰하고 이웃의 말을 경청했기에 글에 옮겨 적을 수 있다. 160쪽 '찾아오지 않으면 찾아가기' 꼭지를 읽어보자. 작가가 인도에서 머물 때의 일이다. 옆집에 혼자 사는 중년 여성이 있었다. 처음부터 작가를 보는 눈이 날카로웠고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골목은 그녀의 고성으로 늘 시끄러웠다. 알고 보니, 계급이 다른 결혼으로 인해 그녀는 시가로부터 냉대를 받아왔다. 분가해 살던 중, 남편이 본가를 방문했다. 거기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모르고 그녀는 남편을 기다렸다. 시부모와 남편의 형제자매는 그녀에게 알리지도 않고 장례를 치렀다.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그녀는 아들과 떨어져 살면서 외롭기까지 했다. 그 여성에게 다가간 작가. 그녀는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게 되었고 골목도 조용해졌다.(작가가 어떻게 그 여성에게 다가갔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안다.)
둘째, 그는 꾸밈이 없다. 자신의 외모를 꾸미지 않듯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미화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를 안 보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는 심리학자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다. 서문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에, '글쓰기는 고독한 일이지만, 미지의 독자가 있음을 믿으면 그 고독이 힘을 얻고 문장이 빛을 발합니다. 전달된다고 믿지 않으면 작가는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작가로서의 고독과 바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셋째, 그는 재치가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재미가 있다. 읽으면서 '풉' 웃음이 나온다. 읽고 있으면 빙그레 웃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살고 있는 귤밭에서 만난 토끼가 새끼를 뱄는데, 그 토끼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토끼 모자를 하고 토끼 흉내를 내면서 노는 장면을 읽을 때도 웃음이 나온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남자가 토끼와 같이 노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재미만 있는 게 아니다. 그는 그 우스개에서 성찰을 끄집어낸다. 그의 변신놀이를 통해 인간의 '변신'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과거의 자신에게 갇히지 말자,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자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비판을 가장한 불평과 문제 제기를 자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으나 그게 잘 안 되었다. 작은 일에 흥분하고 화내고. 성마른 내 성격을 고쳐보고자 했다. 더구나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우울감과 불행감. 모든 사람이 행복한데, 나만 괴로워하고 나만 고통당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주어진 행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큰 행복을 찾았다. 더 큰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런 나에게 작가가 일침을 가했다. 247쪽부터 시작하는 글인데, 글꼭지는 '문제를 발견하는 문제'이다. 그의 글을 따라가 보자.
삶에 대해 늘 불평하는 제자가 있었다. 그는 생로병사를 비롯한 모든 문제는 벗어날 수 없으며 그것이 불행의 근본원인이라고 믿으며 늘 불행했다. 어느 날 그의 스승이 그를 불러서는 물 한 잔을 가져오게 한 다음 소금을 한 줌 타서 마시게 했다. 제자는 한 모금 맛보았다. 얼굴을 찡그리며 너무 짜서 더 이상 마실 수 없다고 했다. 그다음으로 스승은 제자를 호숫가로 데리고 갔다. 똑같이 소금 한 줌을 호수에 뿌린 후 호수의 물을 맛보라고 하였다. 제자는 한 모금 맛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시원하다고 말했다. 짜지 않느냐는 물음에 제자는 전혀 짜지 않다고 했다. 스승은 제자의 손을 잡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차이를 알겠는가? 불행의 양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다만 그것을 어디에 담는가에 따라 불행의 크기가 달라진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호수가 돼라."
그렇다. 우리가 겪는 문제도 소금 한 줌과 같다. 그 소금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넓이가 다를 뿐이다. 류시화 작가는 재차 묻는다.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다면 혹시 뛰어난 문제 발견자이기 때문이 아니냐고. 그간 내가 겪는 문제가 힘겨웠던 것은 내 마음이 호수처럼 넓지 못해서였음을 알았다. 내가 느끼는 우울감 불안감 불행감 이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였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호수가 되자.
다음에 책을 주문해서 받게 되면, 택배기사의 추위를 녹여줄 '손난로(핫팩)'라도 문고리에 걸어 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