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의 <관부연락선>을 읽고

by 강지영

소설,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으로 허구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다. 그렇더라도 소설 속 이야기는 작가의 직간접적인 체험이 밑바탕이 될 것이고 작가의 삶 속에서 건져올린 사고체계가 여러 모습으로 변주될 것이라는 추측은 합리적이다. 이병주의 소설<관부연락선>은 일제강점기의 핍박과 광복 후 미군정기의 굴욕, 좌우대립 이데올로기의 혼란과 격동의 시대, 그리고 6·25 한국전쟁을 오롯이 살다간 젊은 지식인의 삶을 보여준다. 조선의 젊은 지식인 유태림, 유태림은 작가 이병주의 변신이 아닐까.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면 문학은 패자의 기록이라는데, <관부연락선>에는 우리의 젊은 지식인, 일반 청년, 민초들이 겪은 세세한 고초가 있다. 그 시대에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보여진다. 이 소설은 역사적 상상력을 소환한다.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고뇌와 방황을 추체험할 수 있다.


이병주의 <관부연락선>은 자전적 소설에 가깝다. 이 소설의 뒷장에 씌어 있는 작가 연보를 보면, 이병주는 1921년에 태어났다. 1941년 일본 메이지대학 전문부 문예과를 졸업했다. 와세다대학 불문과에 재학 중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국 소주에서 지냈다. 1948년 진주종과대학과 해인대학(현 경남대학)에서 영어, 불어, 철학을 강의했다. 이병주의 실제 삶은 <관부연락선> 주인공인 유태림과 매우 닮았다.

이병주는 일제 강점기, 광복, 미군정, 등 우리 나라의 굵직한 정치 사회적인 소용돌이를 살아 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식민지의 학생으로서 제국주의 나라에 유학을 했던 일. 학생시절에 학병으로 동원되어 일본군으로 지냈던 일. 귀국하여 교편을 잡은 일.


이병주의 소설 <산하> 제1권 맨앞에 나오는 이 말,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이병주는 태양에 바랜 역사를 소설로 승화시켜 월광에 물든 신화를 이루었다. <관부연락선>에는 임태림을 비롯한 조선의 청년들이 등장한다. 일제의 핍박에 고통받는 모습이다. 임태림은 예술적 소양이 다분한 사람이니 정치, 이데올로기, 등과는 거리가 멀다.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디 임태림 뿐이었으랴. 다음은 유태림의 고뇌를 묘사한 부분이다. 살펴보자.

‘고독! 그렇다. 고독은 고독 속에서 이겨내야 한다. 나는 우울한 내 심정을 친구를 찾아가서 소화시키려고 한 내 마음먹이가 글렀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을 만나보았자 기껏 내 우울함을 그들에게 전염시키는 언동 외에 뭣을 할 것이 있단 말인가. 인간은 본질저그로 고독한 것이다. (중략) 형사들 앞에선 비굴했다가 비굴해한 스스로의 모습에 견딜 수 없어 친구를 찾아 거리를 헤매다가 고향 아닌 하이마트에서 먼지 냄새를 맡으며 앉아 있는 것이다. 나도 뭔가를 정해야 한다. 아버지의 호의와 재산에만 편승하고 있는 안이한 생활태도를 버리고 내 힘으로 내 생활을 지탱하며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겠다. 우선 생활인으로서의 태도와 방향을 정해야겠다. 나는 망명인으로서의 내 숙명을 감상하고 있었다. 코스모폴리탄이란 견식을 모방하고 민족과 조국의 절박한 문제를 회피했다. 에트랑제를 뽐내는 천박한 기분으로 안이하고 나태하고 비겁한 생활을 변명해왔다. 22세라는 젊음을 특권인 양 왕자를 잠칭하고 세상을 속였다.’(2권 183쪽)

또 있다.

‘나는 도쿄를 떠나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고향에 돌아가면 도쿄에 있을 때보다도 몇 갑절 더 강하게 스스로가 에트랑제라는 것을 느낀다. 도쿄에서 느끼는 에트랑제는 8백만의 인구 속에 살아가고 있는 미립자로서의 감미로운 겸손이 있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가기만 하면 주위에 둘러치인 친화감에 적성敵性을 느껴보는 오만한 감정 때문에 발광할 지경이 되는 것이다. (중략) 주위엔 ‘볼레로’의 곡조가 흐르고 있었다. 어딜 가도 ‘볼레로’, 어떤 다방엘 가도 ‘볼레로’를 듣지 않는 다방은 없다. 유행이란 그처럼 무서운 것인가. ‘볼레로’가 그처럼 좋은 음악인가. 나는 ‘볼레로’를 듣기만 하면 성신경性神經이 이상해진다. 나는 다방을 나왔다.‘(2권 184쪽)

유학한 일본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처럼 생각되었던 유태림의 고독과 고뇌, 그리고 방황이 느껴지는 대목들이다. 다음은 유태림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상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동포를 대할 때도 진실의 내가 아닌 또 하나의 나를 허구했다. 예를 들면 ‘일본인으로서의 자각’이니 ‘황국신민으로서의 각오’니 하는 제목을 두고 작문을 지어야 할 경우가 누차 있었는데 그런 땐 도리 없이 나 아닌 ‘나’를 가립假立해놓고 그렇게 가립된 ‘나’의 의견을 꾸미는 것이다. 한데 그 가립된 ‘나’가 어느 정도로 진실의 나를 닮았으며 어느 정도로 가짜인 나인가를 스스로 분간할 수 없기도 했다.(중략) 자기 변명을 하자면,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하는 그 방법을 찾지 못할 바엔 저항의 의식을 의식의 표면에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체관諦觀이 습성화되어버렸다고 할 수도 있다.’(2권, 195쪽)


<관부연락선>은 작가의 체험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씌어져 있다. 그렇다고 문학적 가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임태림과 서경애의 러브스토리 또한 낭만적이다. 정치 사회적인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그들의 애정관계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두 연인의 관계는 구름 속의 달처럼 은은히 비춰진다. 소설의 말미에서 지리산 빨치산에 합류할 것을 포기하고 해인사에 들어간 서경애. 그리고 6·25한국전쟁 이듬해 행방불명된 임태림을 찾아 해인사를 떠나는 서경애의 심정은 비극적이고 문학적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1930년대, 1940년대의 일본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일본 ‘하이마트’다방에 울려퍼지던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볼레로’를 검색하여 들으면서 그 당시 상황을 상상하며 책을 읽기도 하였다. ‘볼레로’는 라벨의 유명한 오케스트라 작품이다. 그 곡이 완성된 것이 1928년이라고 하니, 프랑스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서양 음악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나의 리듬과 두 개의 주제가 시종일관 단조롭게 이어지지만 긴장감은 놓치지 않는다. 음이 약하게 시작해서 끝부분에는 폭발적인 관현악으로 점층되는 악곡의 매력이 인상적이다. 도도히 흐르는 독립을 대한 민중의 열망이 볼레로의 곡조처럼 상상이 된다.


<관부연락선>이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월간중앙’에 연재되었다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이다.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인 낱말이 ‘마음먹이’다. 지금은 쓰지 않는 이 말이 이 소설에서는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 말이 작가의 고향에서 쓰던 사투리인지, 그 당시 유행어인지,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는 자연스레 씌어지고 있으니 문학이 우리말을 풍성하게 하는 데에도 기여하는 예가 아닌가 한다. 소설 속에서 그 예시를 찾아본다.

‘시종일관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의식, 언제나 자기를 한 칸 위에다 놓고 행동하는 마음먹이, 그것이 틀려먹었다는 것이다.’(1권, 22쪽)

‘그러나 이건 너무나 옹졸한 마음먹이가 아닐까도 한다.’(1권, 23쪽)

‘이에 대한 상식적인 답으로선 본명을 밝혀놓으면 가족이나 동지들에게 누를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먹이를 들 수가 있다.’(1권, 224쪽)

‘밉살스럽게 굴어도 천재에게 그만한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는 식의 마음먹이가 엿보여 고마운 생각도 들었다.’(2권, 155쪽)


“운명…… 그 이름 아래서만이 사람은 죽을 수 있는 것이다.”


관부연락선, 그것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의 ‘영광과 더불어 취항해선 일본의 대륙경영에의 영광스러운 통로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통로를 통해서 많은 일본인이 한반도로 쏟아져 들어왔다.’(143쪽) ‘관부연락선을 타고 한국으로 건너가는 일본 사람들은 지배하기 위해서, 군림하기 위해서였고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오는 사람들은 그 잘난 생명을 이을 호구지책으로 노옉 되기 위해서였다.’(146쪽) 이렇듯 관부연락선은 1905년부터 1945년까지 부산항과 시모노세키항을 오가던 여객선이다. 별칭은 ‘부관 연락선’, ‘전시 노예선’이다.

이 소설을 통해 새로 알게된 것은 구한국시대 이완용이 전권공사(全權公使)로서 미국으로 건너가 심한 모욕을 받으며 4년 동안 머물렀다. 인디언 특수부락, 멕시코, 인도, 폴란드, 유대인종 등을 연구해 보아도 한국인보다 열등한 인종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이완용은 일본에 기대어 한민족이 살게되면 구미인이 우리를 개 돼지처럼 여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는 것이다. 이완용보다는 내부대신 송병준이라는 인물을 가장 비열하고 간사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송병준은 나라의 명운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이 전연 없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선 그 밖의 모든 일은 일체 안중에도 없었다.’(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