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평가의 삶이 문학이 되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나의 인생>을 읽고

by 강지영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그는 누구인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그는 독학으로 ‘문학 비평’이라는 일가를 이루었다. 그의 삶을 뒤흔든 세계사적인 일들도 그의 신념과 열정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나는 한 인물의 삶에 대한 경외감과 경건함을 느낀다.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과 제2차 세계대전의 불안과 공포를 견뎌내고 그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학과 음악 등의 예술이었다. 특히 독일어와 독일문학에 대한 라니츠키의 애정과 열정은 남달랐다. 개인적인 취미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평론가가 되어 대중에게 문학을 알렸다. 그의 별칭이 ‘문학의 교황’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문학의 어떤 속성이 라니츠키의 삶을 지탱한 것일까. 라니츠키의 자서전 <나의 인생>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건, 문학의 ‘유연성’ 때문이겠다, 생각한다.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체득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 말이다. 유연성을 ‘적응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고통과 고뇌에 적응하고 자신을 지켜낸 강인함.


이 책에는 히틀러 나치당의 유대인 핍박과 학살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예전에 나는 왜 유대인은 나치에 저항하지 않았을까 궁금한 적도 있다. 무장한 나치군에게 항거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일이었을 게다. 무작정 대항하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면 후세에 그 잔혹함을 알릴 수가 없었을 터이다. 라니츠키도 살아남았기에 우리가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흔히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 한다. 라니츠키가 턱 밑까지 다가온 모멸감과 생명의 위기에서도 온전한 정신을 지키면서 문학 평론가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나치 독일, 세계대전, 공산당 입당과 축출 등,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정치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도 늘 그와 함께 했던 것은 문학이었다니, 글이라는 게 이토록 삶의 힘이 될 줄이야. 그의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가 세상을 뜬 2013년,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분명 일간신문을 구독하고 있을 때였는데, 나는 무얼 본 걸까. 다음은 당시,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기사의 전문이다.

“독일의 문학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Marcel Reich-Ranicki)가 지난 18일 93살을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폴란드 태생 유대인인 그는 독일 사회에서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MRR’로 통했다. 문단에서는 ‘교황’이라는 별칭을 들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그는 독일 공영방송의 <문학사중주>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문단과 독서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에 앞서 1973년부터 1988년까지는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문학면 책임자로 일했다. <문학사중주>가 폐지된 뒤에는 <라이히라니츠키 솔로>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그를 가리켜 “우리에게 읽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라 표현했다.

1995년 라이히라니츠키는 주간 <슈피겔>의 표지에 충격적인 방식으로 등장했다. 막 발간된 귄터 그라스의 소설 <광야>를 두 손으로 찢는 모습이었다. “가치 없는 책”이라며 <광야>를 혹평하는 라이히라니츠키의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의 대외적 표현은 단호하고 가차 없었다. 그라스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와 작품에 대한 그의 판단이 그러했다. 당연히 적이 많았다.

2002년 7월 독일 보수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마르틴 발저는 <어느 비평가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악평에 분개한 작가가 평단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유대인 비평가를 살해한다는 줄거리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대인 비평가가 라이히라니츠키를 떠오르게 한다는 점 때문에 독일 문단 안팎에서는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발저를 비판한 반면, 노벨문학상(1999년)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는 발저 편에 섰다. 지난해에 그라스가 발표한 이스라엘 비판 시 <말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 라이히라니츠키는 “혐오스럽다”고 일갈했다.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셰익스피어와 괴테와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믿는다”고 답했던 라이히라니츠키가 그 예술 거장들의 곁으로 갔다.”(한겨레신문, 2013. 9. 29. 네이버 검색자료)


셰익스피어, 괴테, 모차르트, 베토벤, 문학과 음악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은 라니츠키. 이 책 <나의 인생>에는 그가 감상했던 여러 문학작품과 음악작품이 거론된다. 그것을 찾아 읽고 들어도 현대 예술에 젖어들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평론이나 비평은 독자나 청중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역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 그의 비평을 보기 위해서 라니츠키의 <작가의 얼굴> 책을 주문해 놓고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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