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1

by LOHEN


프롤로그

필자는 한국에서 직장인으로서 S전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일에 몰두하며 지내던 중, 결혼을 하고 부천의 작은 빌라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나름대로 안정된 생활을 이어갔다. 주말마다 여유를 찾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으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필자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꿈꾼 적이 없었다. 첫 해외여행도 30대 초반에 가서야 경험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형편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애초에 생각을 차단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해외여행은 그저 TV 속에서나 남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결혼 후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아내가 일본 여행을 너무 좋아해,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도 일본을 자주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일본은 늘 기대 이상이었다. 깨끗한 거리, 질서 정연한 도로, 번잡하지 않은 분위기. 매번 일본에 도착할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물론 여름의 무더위와 습한 기후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런 부분조차 여행의 한 부분으로 느껴졌다. 아내는 일본의 여러 도시들을 사랑했고, 덕분에 우리는 오사카, 큐슈, 도쿄 등 3개월마다 한 번씩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자주 일본을 다니면서 일본은 더 이상 낯선 나라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3개월마다 비싼 항공권과 숙박비를 지불하는데, 차라리 일본에 살면서 여행을 하면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그때쯤 회사의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아 권고사직의 위기에 처해 있었고, 나로선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참에 일본에서 살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다.


일본에 머물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니, 3개월짜리 관광 비자 외에도 워킹홀리데이 비자, 유학 비자 등 다양한 옵션이 있었다. 나이 제한 때문에 워킹홀리데이는 어려웠고, 결국 유학 비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당시 나이는 젊었지만, 30대 초반에 해외로 나간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안정된 일자리를 포기하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내도 오랜 직장 생활에 지쳐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여행도 하고, 언어도 배우며 잠시 쉬어가자는 의견에 동의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유학원을 찾아 일본으로의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유학생의 시작

한국에서 생활하던 모든 짐을 정리하고, 집도 처분한 후 일본으로 떠났다. 이제 막 산 비싼 가구와 침대도 아쉬움을 뒤로한 채 모두 나눔하고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물건들을 처분하면서 겪은 감정들이 꽤나 복잡했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일본에서의 첫 거처는 도쿄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나카이(Nakai)라는 지역이었다. 한적한 동네로, 일본 생활의 시작을 조용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히라가나 50음도 정도만 겨우 외우고, 일본어로 말할 수 있는 건 “오겡끼데스까” 정도뿐이었다. 그것도 뜻도 모른 채 외운 문구였다. 이런 상태로 일본에 왔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용감했거나 무모했던 것 같다. (웃음)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가는 길은 정말 고된 여정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몇 번을 헤맸고, 역무원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제대로 된 질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결국 아파트에 도착했고, 그 작은 방에서 첫날 밤을 맞았다. 월세는 환율을 고려하지 않아도 약 100만 원이었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방을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어쩔 수 없었다. 추가로 시키킹(보증금), 레이킹(감사비) 등 복잡한 비용들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저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살던 방은 작은 원룸이었다. 싱글 침대 하나에 책상 하나,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의 크기. 복도와 부엌이 함께 있는 구조였고, 부엌 뒤쪽에 작은 욕실과 화장실이 있었다. 좁고 불편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 찬 첫 일본 생활은 그 모든 불편함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방 한쪽에 짐을 풀고, 창문을 열어 마주한 일본의 풍경은 그동안의 모든 긴장을 풀어주었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DALL·E 2024-10-29 15.05.58 - A cozy, minimalist Japanese apartment room with a single bed, desk, and small kitchen, capturing the simplicity and charm of a new life in Japan. The .png


주변을 둘러보며 산책을 하니 작은 공원도 있고, 강아지 공원도 있었다. 작은 냇가가 흐르는 공원도 몇 개 보였다. 녹음이 우거진 그 풍경은 힐링하기에 충분했고, 무엇보다 동네는 너무 조용했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기에 일본 특유의 고즈넉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괜히 비 오는 날 길거리를 사진으로 찍거나, 화단에 핀 꽃들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자의 시선으로 일본의 풍경을 바라보며, 아직 실감 나지 않는 유학생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학원 생활과 현실적인 문제들


며칠 뒤 어학원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나와 아내는 매일 4시간 정도 공부하는 코스로, 6개월의 어학 과정을 등록했다. 우리가 다니던 어학원은 오쿠보에 위치해 있었고, 집에서는 걸어서 40분~50분 정도, 전철로는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아침 걸어서 학교에 갔다.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점심 무렵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간단한 도시락이나 반찬거리를 사서 집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외식은 최대한 자제하고, 돈을 아끼려 노력했지만, 금요일 저녁만큼은 작은 사치를 부렸다. 신주쿠에 들러 5000원짜리 돈까스를 사먹었는데, 그 돈까스가 왜 그리 맛있었던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웃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인 압박은 점점 심해졌다. 매일 돈은 줄어들기만 했고, 정작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아내는 번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수입은 많지 않았고, 나도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번역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차라리 개발 공부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신경질적으로 거절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때는 내가 더 급하다고 느껴졌다.


처음 계획은 1년간 일본어를 배우고 취업하는 것이었지만, 6개월이 지나자 아내와 상의 끝에 나는 실무를 통해 배우는 스타일이라며 곧바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일본어 실력이 늘지 않자, 아내는 우회적으로 내게 준비를 재촉한 셈이었다.


취업과 새로운 도전


취업을 위해 여러 구인사이트에 이력서를 넣었다. 일본에도 잡코리아와 비슷한 구인사이트가 많아 많은 업체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여전히 일본어 실력이었다. 면접 때마다 일본인 면접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당황스러웠고, 그로 인해 지원한 많은 기업에서 낙방했다.


그러던 중 한국인이 운영하는 SI업체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어 편했지만, 월급은 낮았다. 그러나 공부하면서 돈을 번다는 생각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일본의 SI업무는 파견 형태로 진행되어, 집과 멀리 떨어진 현장으로 파견을 나가곤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어 실력의 한계를 느끼며, 더 많은 고민과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매주 토요일 일본인 선생님과 1:1 과외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고, 나는 꾸준히 일본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에 온 지 2년이 되자, 이제는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비록 유치원생 수준이었지만, 나름대로 자신감이 생겼고, 다시 취업시장에 도전할 용기를 얻었다.


결국 여러 번의 면접을 거쳐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면접 당시 회사 대표와의 대화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겨우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마음에 들어 한 대표 덕분에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좌절과 실패가 결국 성공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제 일본에서의 삶은 불안정하지 않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정은 나에게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법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때로는 일본어로, 때로는 영어로, 또는 번역기를 사용하며 이어가야 했던 생활 속에서 나는 성장했다. 그 모든 경험들이 내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