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Sep 06. 2019

매직 인 더 '콜린 퍼스'

영화 <Magic in the Moonlight> 2014년

  콜린 퍼스는 기적인가? 그렇다. 마법인가? 역시 그렇다. 이 무슨 밑도 끝도 없는 발언인가 싶겠지만, '콜린 퍼스(Colin Firth)'라는 고유명사는 나의 사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다.


콜린 퍼스


  나는 세상의 영화를 두 가지로 나눈다. 본 영화와 안 본 영화가 아니다.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도 아니다. 콜린 퍼스가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다. 그가 등장하는데 안 본 영화는 거의 없다. '거의'라고 한 건, 내가 볼 수 있는 한계 내에선 그가 나오는 모든 영화를 봤지만, 국내 개봉을 안 했거나, 블루레이로 슬그머니 나와서 미처 못 본 영화도 몇 편 있다는 뜻이다. 물론 할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찾아서 볼 것이다. 실은 그를 찾아보는 기쁨을 연장하기 위해 일부러 아껴두고 안 본 영화도 있다. 내가 끔찍이 기피하는 유혈이 낭자한 하드 고어 영화라도 그의 얼굴이 한 컷이라도 나오면 기꺼이 볼 것이다. (아직까지 그런 영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까칠하지만 매력적인 영국 남자 스탠리


  영화 「매직 인 더 문라이트 Magic in the Moonlight」는 우디 앨런(Woody Allen)과 콜린 퍼스(Colin Firth)의 만남으로 화제가 됐지만, 개인적으로 우디 앨런의 존재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한때 까칠하고 냉정한 뉴요커스러운 화법으로 '우디 앨런'이란 장르를 선보였지만, 몇 년 전부터 그런 개성은 좀 퇴색된 느낌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보다는 어떤 영화의 어떤 캐릭터로 나와도 잘 웃지 않지만 매력적인 츤데레 콜린 퍼스가 이번엔 1928년 버전의 ‘미스터 다아시’로 돌아왔구나 싶었다.


중국인 마술사로 변장한 스탠리


  1928년, 유럽을 사로잡은 중국인 마술사 웨이링 수는 사실 영국인 스탠리(콜린 퍼스 Colin Firth)다. 그는 관객들 눈앞에서 코끼리를 사라지게 하는 눈속임을 하지만, 과학과 이성을 신봉하며 독설을 남발하는 까칠한 남자다.

  어느 날, 동료 마술사가 심령술사라 자처하는 젊은 여자 얘길 하며, 그녀의 정체를 밝혀 달라고 요청한다. 남부 프랑스 카트리지 가에 기식하며 심령술을 하는 소피(엠마 스톤 Emma Stone)는 사람의 과거를 알아맞히고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내는 기행으로 부자들의 신뢰를 얻는다. 스탠리는 소피의 심령술이 거짓과 속임수라 단정하고 유심히 관찰하는데, 정체를 밝혀내긴커녕 그녀에게 과거를 들키며 점점 빠져든다.


심령술사 소피


  자신은 지극히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까칠한 남자와 속임수를 쓰며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여자의 관계는 예상대로 마법처럼 흘러간다. 자신도 남을 속이면서, 아니 그러니까 더욱더 속임수를 밝혀내는 데 혈안이 된 남자는 여자의 젊음과 미모, 생기발랄함에도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현혹되지 않은 척한다. 그러다 한 순간에 그녀 앞에 무너진다. 단지 자신의 과거를 읊어대는 여자의 신기(神氣)에 미혹되어 그런 건 아니다. 소피라는 여자 자체가 이미 너무 빛나는 열기를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인 내가 봐도 엠마 스톤의 싱그러움은 탄식이 나올 정도다. 배우 자체의 아우라도 그렇고, 신비로우면서도 살짝 맹한 소피라는 캐릭터는 누구라도 무장해제시키기에 충분하다.  


남부 프랑스 햇살 속을 산책하는 스탠리와 소피


  콜린 퍼스와 엠마 스톤의 케미는 과하지 않으면서 무난하다. 실제 나이 차이는 아버지와 딸뻘이지만, 둘의 교감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연령층의 여배우와 어울릴 만큼 매력적인 콜린 퍼스 때문이겠지만, 유난히 발랄하고 상큼한 엠마 스톤도 한몫 톡톡히 한다. 로맨틱 코미디지만, 애정에 입각한 장면보다 독설과 방어로 일관하는 대사가 많아 두 배우의 나이 차이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기도 한다.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두 남녀


  사실 스탠리의 비판적인 태도와 독설은 전형적이다. 콜린 퍼스가 '미스터 다아시'의 환생이 아닌가 싶을 만큼, 까칠한 츤데레 캐릭터는 피부처럼 그에게 달라붙어 있다. 그래서 콜린 퍼스가 연기하는 스탠리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스탠리의 밉지 않은 독설은 우디 앨런 감독 특유의 색깔도 묻어있지만, 콜린 퍼스의 영국식 냉랭함때문에 더 돋보인다. 이 정도면 콜린 퍼스의 찬양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그렇다. 50대 중반의 남자가 20대 여자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면서, 여자 쪽이 복 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엄청난 사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설전을 벌이는 스탠리와 소피


  사랑은 매직이라는 메타포는 이 영화에 해당되지 않는다.  'Magic in the Moonlight'는 은유가 아니라  '매직=러브'라고 직설하는 영화다. 남부 프랑스의 아름다운 경관과 인적 드문 시골길에 쏟아지는 소나기, 고장 난 차, 천문대의 달빛 속에서 얘기하는 추억은 '이래도 사랑에 안 빠질래?' 하며 융단폭격처럼 퍼붓는 로맨스 클리셰의 범벅이다. 관객을 대상으로 눈속임하는 남녀의 매직은 결국 둘이 사랑에 빠지는 현실의 마법으로 귀결된다. 반전이 어설프고, 안일하게 해피 엔딩으로 끝나도 화면 자체가 무척 아름답다.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


정말 대단해! 삶은 비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의 신비롭고 마법 같은 뭔가가 있어!


  영화 속 스탠리가 한 말을 믿진 않지만, 콜린 퍼스가 내 앞에서 영어로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를 실제로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마법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외로운 게 어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