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로리아 벨 Gloria Bell> 2018년
외로운 여자는 밤마다 클럽에 간다. 한 잔 하며 몸을 흔든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혼자 온 남자들과 춤을 추며 탐색한다. 그 이후가 이어지기도 하고 맥없이 끝나버리기도 한다. 50대 싱글 글로리아 벨(줄리안 무어 Julianne Moore)의 하루는 그렇게 반복된다.
칠레 감독 세바스티안 렐리오(Sebastian Lelio)가 자신의 어머니 삶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영화 「글로리아 벨 Gloria Bell」은 앞서 만든 칠레 영화 「글로리아」의 리메이크다. 자신이 만든 영화를 자신이 리메이크한 것이다. 주연 배우 줄리안 무어가 원작을 무척 좋아해 감독을 만나면서 일이 그렇게 흘러간 듯하다.
50대 중반 여자. LA에 사는 이혼녀. 장성한 자식과 직장이 있는 싱글. 게다가 주인공은 줄리안 무어. 주인공의 프로필을 보면 내용이 대충 예상된다. 영화는 그 예상을 안정적으로 충족시키면서 발랄하지만 현실적인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주제는 짐작대로 중년 여성 글로리아의 사랑 찾기다. 한 여인의 자아를 찾는 여정이라 해도 좋고, 외로운 중년 여성의 현실적 사랑 이야기라 해도 무난하다.
영화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여자는 매우 낯설지만 한편으론 남 같지 않다. 인종과 국적이 다르고, 살아온 이력과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도, 그녀의 감정에 부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영화의 가공된 캐릭터에게 나를 이입하는 순진한(?) 짓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털끝만큼이라도 공통점을 지닌 인물이라면 냉혹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의 타이틀 롤 글로리아 또한 싱글이라는 것 빼고는 나와 공통점이 거의 없고, 나의 미래가 그녀와 비슷할 가능성도 제로에 가깝다. 그래도 그녀를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며, 간혹 비난하기엔 지장이 없다.
50대 싱글 여자는 외로움에 몸부림친다. 이건 꼭 그녀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외롭기 때문에 그다지 특이하지 않다. 나이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홀로 태어나 홀로 가야 하는 인간은 예외 없이 외롭다고 본다. 옆에 누가 있으면 잠시 망각하기도 하고, 먹고사는 게 고단해 잊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글로리아에겐 장성한 아들과 딸이 있다. 다 큰 자식들은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부담스러워한다.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아들은 엄마의 도움을 예의 바르지만 집요하게 거절한다. 딸도 마찬가지다. 스웨덴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떠나면서도 공항 밖에서 쿨하게 작별인사를 끝낸다. 청사 안까지 따라 들어와 눈물을 뿌려댈 게 뻔한 엄마를 진저리 치며 미리 차단한다. 중년 이후의 엄마들은 은근하지만 집요하게 자식들에게 거부당하는 게 숙명인지도 모른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 양쪽 다 이해하면서도 안타깝고 한편으론 짜증도 난다.
자식 인생에 주체로 남고 싶지만 주변부로 밀려낸 중년 여자에게도 연로한 엄마가 있다. 연금으로 딸에게 밥을 사는 늙은 엄마를 중년의 자식 또한 꿋꿋하게 거리를 둔다. 정작 필요할 땐 늙은 엄마를 찾긴 하지만, 글로리아 또한 중간에 낀 세대의 이율배반적 모습을 보여준다.
직장에 다니며 홀로 생계를 해결하고, 밤엔 적극적으로 파트너를 찾아 나서는 중년 여성은 일단 당당하고 멋지다. 나이나 처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다. 어렵게 찾은 사랑이 자신을 실망시키고 배신할 땐 허물어지듯 망가지지만, 곧 정신 차리고 현실을 자각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징한다. 여기서 나를 감동시킨 건 '응징' 그 자체다. 응징의 종류나 세기보다 응징을 한다는 자체가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사실 50 넘어 만난 남녀가 연애 좀 실패한 게 무슨 대수냐 싶었는데, 그녀는 확실하고 유쾌하게 끝맺음을 한다. 나 같으면 실컷 욕하다 흐지부지 잊었을 텐데, 유머러스하면서도 깔끔한 엔딩은 미적지근한 관계를 단박에 정리해준다.
글로리아의 연애 상대 아널드(존 터투로 John Turturro)가 보여주는 중년의 고뇌 또한 만만치 않다. 그의 상황은 글로리아와는 정 반대다. 뒤늦게 불붙은 연인과 사적인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그는 수시로 다 큰 딸들의 전화에 시달린다. "딸들은 나를 한 명의 사람이 아닌 아빠로만 봐요. 난 항상 자기들을 걱정하는 사람이고 그들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정말 외로운 기분이에요." 장성한 자식들의 요구를 끊어내지 못하는 중년 남자의 토로는 자식들에게 밀려난 중년 여자의 심경 못지않게 처절하고 안타깝다.
글로리아는 늘 차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가 차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이 때론 싫었지만 그 노래 속에 뭔가 좋은 게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고 말한다. 글로리아가 따라 부르는 올드팝은 대체로 적나라하고 신파적인 가사가 많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 그 나이에 어울리면서도 간간이 튀는 감성을 대변해 준다.
자식과 부모와 애인과 그의 가족들과 전 남편까지. 50대 여자를 둘러싼 세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녹록지 않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싶다가도, 뭘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사나 싶다. 남의 인생인데도 보고 있으면 심난했다가 즐겁고, 그러다 또 한숨이 나온다. 글로리아가 외로운 건 자식들이 밀어내서도 아니고, 늙은 엄마처럼 되기 싫어서도 아니다. 가정을 꾸린 전 남편도 그녀를 초라하게 하진 않는다. 그냥 그녀는 살아 숨 쉬는 인간이라서 외로운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외로움을 뿌리쳐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것도 부지런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지, 게으르고 무신경한 사람은 감정의 스팩트럼조차 얄팍하구나 싶다. 남 얘기처럼 하지만 내 얘기다. 난 아마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그녀처럼 살지 못할 것이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솔직히 그녀처럼 살고 싶지 않다.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보여도 내 인생으로 만들고 싶진 않다. 그녀가 또 한 번 사랑에 실패해서 그런 건 아니다. 한 남자의 연인이기 전에 어머니로, 자식으로, 직장인으로 그녀는 성취한 것도 많고, 객관적으로 지금의 나보다 괜찮은 부분이 많은 삶이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좀 끔찍하게 느껴진다. 덜 열정적인 대신, 덜 기쁘고 덤덤하게 사는 것도 내가 은연중에 택한 삶의 태도라서 그런가. 어쨌든 난 당했다고 유쾌하게 누굴 응징할 만큼 에너지가 충만하지 않다. 나중에 바뀔지 모르지만 현재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