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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21. 2019

카프카도 놀라 자빠질 변신의 귀재 ‘용남’

영화 <엑시트 EXIT> 2019년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흉측하고 거대한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꽤 오래전에 읽었는데 잊히지 않을 정도로 소설 『변신』의 첫 문장은 충격적이다. 카프카는 인간의 삶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불안한 의식의 연속이라며 구원을 꿈꾼다. 그리고 스스로 그 꿈을 무참히 깨버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보험회사 직원 그레고르가 갑충으로 변해 가족의 짐이 되고 불안과 공포가 되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생산성을 상실한 그는 몹쓸 잉여가 되어 버림받아 죽는다. 갑충이 된 그레고르 잠자와 정 반대로, 벌레 취급받는 잉여에서 시민 영웅으로 역전한 남자가 있다. 영화 「엑시트」의 주인공 용남을 위한 첫 줄은 아마 이렇게 쓰이지 않을까.


  "어느 날 저녁 백수 용남이 불편한 자리인 (어머니) 칠순 잔치에 참석했을 때 그는 유독 가스 속에서 작지만 위대한 시민 영웅으로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머니 칠순 잔치를 위해 모인 용남과 가족들


  사지가 멀쩡하다 못해 남다른 체력을 뽐내는 용남(조정석)은 백수다. 한마디로 잉여인간이다. 직업이 없고 돈벌이를 못한다고 잉여는 아닌데, 가족은 그를 잉여 취급하며 무시한다. 대낮에 놀이터에서 운동하는 그를 어린 조카는 창피해하고, 누나(김지영)는 취업에 쓸데없는 산악 동아리는 왜 했냐며 대놓고 구박한다. 머리 모양 하나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용남의 자존감은 저 밑바닥에 있다.

  신도시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어머니 칠순 잔치에 일가친척이 모이고, 입 가진 사람들은 모두 용남에게 한 마디씩 한다. 나이 먹은 미혼과 백수는 걱정과 위로로 위장한 (무신경한) 일가의 손쉬운 안줏거리다.

  컨벤션 홀 직원 의주(윤아)는 용남의 산악 동아리 후배다. 어색하게 의주와 해후한 용남은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둘러댄다. 고된 근무와 직장 내 성희롱에 시달리는 의주 또한 백수인 용남 못지않게 삶이 고달파 보인다.

  용남이 의주를 신경 쓰며 친인척들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잔소리를 자학으로 방어하는 그 시간, 건물 밖에선 정체불명의 남자가 차량의 유독가스를 유출하고 도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점점 퍼지는 가스를 피해 건물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옥상 문이 잠긴 걸 알고 망연자실해한다. 산악 동아리 에이스로 암벽 타기를 했던 용남은 발만 동동 구르며 울부짖는 일가를 둘러보다 분연히 일어선다. 건물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 밖에서 문을 열려는 것이다. 무능한 잉여 취급받았던 그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아니 해야만 하는 일에 몸을 던진다.


이랬던 용남이..


이렇게 변신!


  도시를 혼란에 빠뜨려 마비시키고 무수한 인명 피해를 야기한 유독가스 유출 사건은 그 심각성에 비해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 시스템을 비판할 틈이 없게, 시민 이용남은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그는 보는 이의 심장을 쫄깃하게 하며 건물 꼭대기로 기어올라가 옥상문을 열고, 일가친척들을 구조 헬기에 태운다. 목숨 건 사투를 벌였지만 정작 본인은 헬기 탑승 정원 초과로 의주와 둘이 옥상에 남는다. 용남과 의주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재난을 맞닥뜨린 사람들


  두 사람은 의인도 아니고 남다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살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재난에 대처하는) 지식과 (산악 동아리 활동으로 다져진) 체력을 바탕으로 뛰고 또 뛴다. 상공으로 점점 올라오는 유독가스를 피해 쓰레기봉투로 몸을 감싼 채 건물과 건물을 넘나 든다. 효력이 몇 분 안 되는 방독면을 나눠 쓰며 도시의 제일 높은 곳, 타워크레인까지 미친 듯이 달린다. 얼핏 짠내 나는 이 커플의 생존기는 웃음과 울음을 쉴 새 없이 넘나들며 연민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구조 헬기를 양보하고 옥상에 남는 용남과 의주


  의주와 용남이 처음에 구조 헬기를 양보하고, 다른 건물에 갇힌 학생들을 위해 울음을 삼켜가며 한번 더 구조를 양보하는 장면은 뻔하지만 뭉클하다. 재난 영화에 공식처럼 등장하는 클리셰 같지만, 평범한 사람이 순식간에 의인이 되는 모습은 예상 가능하면서도 감동적인 마법처럼 느껴진다. 백수도 모자라 동네 바보 취급까지 당하던 용남이 위대한 건, 그가 특별한 사명감 없이 평범한 시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어벤저스급 히어로나 온갖 훈련을 받고 무기를 장착한 특수요원이 아닌, 일상을 살던 한 인간이 우연히 맞닥뜨린 재난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공감하고 이입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사람

  

  용남과 의주를 끝까지 뛰게 하고 사지(死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가족도 공권력도 아니다. 의외로 '드론'이다. 국가의 재난 시스템도 속수무책이고, 구조 헬기는 안타까울 정도로 저 멀리 상공에 있어 그들을 발견하지 못한다. 첨단의 테크놀로지는 인간이 갈 수 없는 재난 현장을 비교적 손쉽게 접근한다. 강 건너 안전한 곳에서 동영상을 건질 목적으로 재난 현장에 띄운 드론들은 고립된 두 사람을 찾아낸다. 별도 보기 힘든 도시의 밤하늘에, 더군다나 유독가스가 핵구름처럼 뭉개 뭉개 올라오는 곳에 몇십 개의 드론들이 두 사람 곁으로 모여든다. 사실 드론이 그들을 직접 구조할 순 없다. 시도는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래도 두 사람은 드론의 생명 없는 불빛에 희망을 얻는다. 직접 손이 안 닿아도 누군가와 연결된 차가운 기계에 의지하는 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들은 의주와 용남이 자연스럽게 시전 하는 재난 구조 신호나 행동 요령보다는, 드론 조종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지 않을까 싶다.


필사적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두 사람


  예상한 대로, 용남과 의주는 무사히 재난 현장을 빠져나온다. 도시를 삼켜버린 유독가스가 물에 쉽게 용해된다는 결론은 허탈하면서도 다행스럽다. 비가 조금만 일찍 내렸다면 용남과 의주가 그렇게 목숨 건 사투를 벌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역시 공식처럼 모든 상황이 끝난 후 비가 내린다.


  만약 용남이 스크린 밖으로 빠져나온다면, 이 비를 맞기 전과 후로 그의 인생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용남의 엑소더스 동영상은 삽시간에 퍼져 그를 위대한 시민 영웅으로 만들 것이다. 재난 현장의 인명구조 요원으로 온갖 기관의 러브콜을 받을 않을까 싶다. 용남이 재능을 발휘해 재난 현장에 투입되는 직업을 갖는다면, 더 이상 백수가 아닌 당당하게 제 밥벌이를 하는 인간으로 살 것이다. 그의 인생에 가장 획기적인 변신과 전복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여기서 의구심이 든다. 그동안 용남은 왜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지 않았을까. 잉여 취급하는 가족의 수모를 견디느니, 갖고 있는 능력을 쓸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별개로 사무직 공무원이나 회사원을 꿈꾸었던 건 아닐까. 수영을 잘한다고 수영하는 걸 업으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용남은 암벽등반에 소질이 있고 남다른 체력을 갖고 있지만, 신체적 능력을 쓰는 일 보다 다른 일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변신이 쉽지 않고, 또 쉬워서도 안 되는 건 재능과 욕망과 희망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치한다 해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


취직을 못했다는 이유로 잉여 취급당하는 용남


  용남의 변신은 위대하다. 변신이라기보다 감춰진 능력의 발현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재능이 직업과 연결되든 그렇지 않든, 백수 탈출을 하든 못하든 용남의 삶은 가치 있다. 설사 그가 가족을 구하는 영웅이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를 거대한 벌레 취급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가족이라면 더군다나 말이다. 벌레로 변하고 직장을 잃었다고 그레고르를 멸시하고 버리는 가족이야말로 유독가스보다 더 유독한 존재가 아닐까. 용남이 건물 옥상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뭉개 뭉개 올라오는 가스를 자기 목을 죄고 숨 막히게 하는 가족으로 느끼지 말라는 법은 없다. 존재만으로 숨이 막히게 하고, 한편으론 내 목숨을 던지게도 하는 게 가족이니까.


  사실 우리는 벌레로 변신하긴 어려워도 은연중에 유독 가스가 되긴 쉽다. 그래서 엄청난 재난이 닥치지 않더라도, 자신의 변신을 간간이 점검하며 살 필요가 있다. 누구나 이용남 같은 가족을 갖는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그처럼 행동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인간의 가치는 평소보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용남의 한순간 결단과 변신이 몇 명의 인생을 바꿔놓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변신 자체도 쉽지 않지만, 어떻게 변할 건지 선택하는 건 인생을 건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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