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숲아트센터>개관10주년 테너 김현수 가곡 콘서트 2019.10.13
아름다운 테너를 보러 가는 길은 늘 설레고 흥분된다. 전날 힘든 일이 있어도 기대하는 마음 때문인지 발걸음이 산뜻하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0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꿈의숲아트센터>에 도착하니 해가 져 어두웠다. 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음악회가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 한 무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테너 김현수가 주인공인 시간이었다.
젊고 아름다운 테너는 계절에 맞게, 연한 갈색 톤의 슈트에 보타이까지 하고 등장했다. 사실 이 슈트는 낯이 익다. 내 눈썰미가 맞다면, 지난 4월 군포 철쭉 때 입은 슈트다. 그때도 의상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더 멋지다. 물론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그때 입었던 것과 다른 슈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테너는 등장하자마자 일단 비주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어제(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 '좋은날')도 봤는데, 보고 또 봐도 흐뭇하다.
가곡을 각별히 아끼고 자주 부르려 노력하는 테너는 이번에도 우리 가곡으로 무대를 시작했다. 서정적인 「산들바람」에 이어 흥겹게 부르는「뱃노래」까지. 현수 군은 노래를 끝내고 약간 수줍게 '멍석을 깔아놓으면 못한다고..' 이 말을 하면서 멍석 대신 방석으로 말하는 깜찍한(?) 말실수를 해 좌중을 웃겼다. 사실 이런 건 실수도 아니다. 긴장하면 그럴 수도 있지. 현수 군이 무슨 짓을 하든, 그곳에 있었던 관객들은 아마 나처럼 다 우쭈쭈~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름에 갔던 단독 콘서트에서는 석사 논문을 쓰느라 정신없다고 하더니, 현수 군이 드디어 석사가 되었다고 한다. 슈만의 가곡으로 논문을 썼다고 들은 듯한데, 내가 맞게 들은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포르테 디 콰트로로 활동하며 콘서트와 방송하고 그 와중에 논문까지 쓰다니, 다시 한번 우쭈쭈~해주고 싶다.
석사가 된 테너는 슈만의 가곡을 연달아 세 곡 불렀는데, 노래의 피아노 전주가 매우 짧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낯선 멜로디에 가사도 못 알아들었지만, 선율이 매우 서정적이고 곱다는 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한 곡은 노래 사이 같은 멜로디로 피아노 반주가 반복되는 구간이 있는데,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정이 귀에 꽂혔다. 저 피아노 반주 부분은 내 폰 벨소리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한 회색 슈트로 갈아입은 현수 군은 2부에선 우리말 가사가 시원스럽게 들리는 노래들을 주로 했다. 「풀꽃 연정」이라는 노래를 부를 땐 귀까지 빨개져서 열창하는데, 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마이크가 없어도 현수 군의 음성은 폭포수처럼 시원하고 웅장하게 귀에 꽂혔다. 솔직히 난 테너의 음성을 마이크 없이 듣는 게 좋다. 큰 공연장에선 힘들겠지만, 꿈의 숲 아트센터 콘서트홀 정도의 공연장에선 이렇게 듣는 게 더 아름답다.
현수 군 다음 앨범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곡 「꽃밭에서」가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객석에서 '카톡~'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 군이 웃으며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 하니 객석도 웃음바다가 됐다. 현수 군은 이게 콘서트의 묘미라 하지만 매너 없는 관객 때문에 울컥 짜증 날 뻔했다. 너그러운 아티스트 덕분에 웃으며 넘어갔다.
요즘 현수 군은 이 노래에 꽂힌 듯하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이 곡을 설명할 때마다 객석에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현수 군 어머니 프로필 사진은 아직도 꽃밭일까? 나라면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아들 사진으로 도배해 놓을 텐데. (ㅎㅎ) 현수 군은 이 노래를 열창하고 나서 별다른 말도 없이 갑자기 무대 뒤로 쑥 들어가 버렸다. 잠시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데, 순서를 잊고 있었던 것 같다. (ㅋㅋ)
밑도 끝도 없이 들어갔다 나온 테너는 쇼팽 연습곡 「Tristezza」를 불렀다. 이 곡 역시 현수군 앨범에서 꼭 다시 들었으면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현수 군은 지난 7월 가곡 콘서트 할 때 실황 음반을 위한 녹음까지 했는데, 앨범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난 그 콘서트 음반이 나올 거라 기대하며 7월부터 내내 기다리고 있는데.. (ㅠㅠ)
프로그램북을 가지고 있는 관객들 앞에서 현수 군은 이번 곡이 진짜 마지막이라며 밀당을 시도했다. 아니라는 거 다 아는데, 프로그램북에 몇 곡 남았는지, 다음 곡이 뭔지 다 나와있는데.. 관객에게 매번 협박(?)을 하는데도 어찌 이리 어설픈지. 그도 '아, 다들 프로그램북이 있으시구나.' 하며 되지도 않는 밀당은 집어치웠다. (ㅎㅎ)
난 머리 말리고 화장할 때마다 현수군 1집 『Sogno』를 듣는데, 아침에 들었던 노래를 저녁에 또 들었다. 이번 콘서트의 진짜 마지막 곡이다. 어차피 집에 가면 또 듣겠지만, 오래간만에 넷이 아닌 한 사람의 음성으로 듣는「얼음꽃」은 새삼 아름다웠다.
꿈의 숲 아트센터 콘서트 홀은 포르테 디 콰트로가 <고전적 하루>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한 곳이라고 한다. 현수 군은 그래서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그 녹화를 할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이다. 포디콰도 그렇고 현수 군도. 그 프로를 볼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김현수라는 테너를 찾아다니게 될 줄 몰랐다. 네 명의 완전체를 보는 사이사이에 현수 군을 따로 볼 수 있는 무대가 많기를 바라지만, 넷이 있으면 한 명의 무대가 보고 싶고, 한 명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네 명이 그리워진다. 「얼음꽃」을 들으니 현수 군의 포근한 음성 사이로 다른 세명의 음성이 환청처럼 겹쳐졌다.
이번 공연은 테너 김현수의 부드러움과 웅장함,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무대였다. 어떤 공연인들 그렇지 않은 적이 있을까만은, 이번 무대는 그의 깜찍한 어설픔(?)이 살짝 삐져나오긴 했어도 뭔가 품격이 느껴졌다. 현수 군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는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아티스트라는 걸 새삼 느꼈다. 오늘 들은 노래들 모두, (1집에 실린 노래는 빼고) 한 곡도 빠짐없이 현수 군의 다음 음반에 실렸으면 한다. 그가 가사를 연구해 논문까지 쓴 독일 가곡들도 다시 꼭 듣고 싶다, 그의 음성으로. 피아노, 기타, 첼로로 무대를 빛나게 해 주신 연주자들도 너무 멋있었다. 지난 7월에 뵀던 분들 같은데 다시 보게 되어 현수 군 못지않게 반가웠다.
1부> 연한 갈색(or 베이지색) 슈트에 보타이
♪ 산들바람 (현제명) ♪ 뱃노래 (조두남) ♪ <Myrthen> Op.25 중 Widmung, Der Nussbaum, Die Lotosblume (R. Schumann) ♪ Vaga Luna, che inargenti (V. Bellini) ♪ 걱정마요 (이지수)
2부> 진한 회색 슈트
♪ 너의 그늘 아래서 (김진환) ♪ 꿈꾸는 봄 밤, 풀꽃 연정 (박대웅) ♪ 꽃밭에서 (이봉조) ♪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김진호) ♪ Tristezza (F. Chopin)
앙코르>
♪ 가족사진 (김진호) ♪ 얼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