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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04. 2020

이런 밤의 왕자님들!!!

포르테디콰트로 언플러그드 '더 클래식' 롯데콘서트홀, 2020.7.25.

 몇 달 전, 뉴스를 보는데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Lacrimosa 라크리모사’다. 어느 방송사 뉴스 말미에,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유럽 의료진 사진을 유명 건축물에 게시한 영상의 배경 음악으로 나왔다. 슬프지만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 곡은, 모차르트가 몇 백 년 후에 전 세계적으로 슬픔과 애도의 시간이 닥치면 요긴하게 쓰라고 보내준 선물 같다. 슬픔을 위로하는 음악이야 세상의 비극만큼 차고 넘치지만, 이 곡은 지극히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을 깎아내리지 않는 비장함이 있다.


THE CLASSIC 1부>


 객석에 앉고 보니, 콘서트 홀 정면 벽에 꽤 높이 장착된 채 조명을 받고 있는 파이프오르간이 보였다. 저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싶었는데, 시작하자마자 아찔하게 놓여있는 악기에서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높은 곳에 박혀 있는 악기까지 도달해야만 하는 오르가니스트는 무섭지 않을까. 굉장히 높은 곳에 붙박이 가구처럼 있는 파이프오르간을 플랙스 해버린 곡 ♪Lacrimosa에 이어 ♪Notte Di Luce, ♪Astra(별의 노래)까지. 검은 슈트를 빼입고 등장한 「포르테 디 콰트로」 네 남자는 일사천리로 핸드 마이크 없이 열창했다. 저 모습을 보려고, 저 소리를 들으려고 몇 달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들이 ♪White as Lilies(백합처럼 하얀)를 부를 땐,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어디 가서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들어도 독하게 마음먹고 안 울던 나인데,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는 이곳이 천국인가 싶었다. 네 남자의 화음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언젠가 현수 군이 말한 것처럼 천국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곱고 영롱한 아우라가 있다.


 잠시 공연이 뜸한 틈을 타서 네 남자가 단체로 독일어를 완전 정복한 것인가. 이번엔 슈베르트의 가곡들과 모차르트의 독일어 오페라 아리아까지 연달아 들려줬다.

An den Mond (달에게)

♪Nacht und Träume (밤과 꿈)

♪Der Lindenbaum (보리수)

♪Du Bist Die Ruh (그대는 나의 안식)


 슈베르트의 가곡은 당시엔 공연장 무대에서 연주되지 못했다고 한다. 수백 곡의 가곡을 작곡한 슈베르트는 외모에 자신감이 없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콘서트를 하지 않고 지인들을 모아 조촐한 연주회만 했다고 한다. (그 밖에 다른 사정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역시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매독 때문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의 가곡들은  『언플러그드 콘서트 ‘더 클래식’』의 콘셉트에 충실한 선곡인데, 네 남자의 음성이 어우러지니 독일어 가사를 못 알아들어도 가슴이 촉촉해졌다. 특히 ‘Nacht und Träume (밤과 꿈)’은 현수 군 솔로 앨범에 수록된 곡이라 귀에 익었다. 솔직히 이 노래를 슈베르트 곡이라 의식하고 듣지는 않았다. 가사를 못 알아들어도 나에게 이 노래는 테너 김현수가 곱디고운 목소리로 자장가처럼 포근하게 부르는 노래였다. 이제는 포디콰가 『언플러그드』에서 부른 노래로 다시 기억될 것이다.  


슈베르트 선생님


 개인적으로 이번 콘서트의 백미(白眉)라 생각하는 곡은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中 밤의 여왕 아리아 ♪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속에 불타오르고)이다.  소프라노 조수미의 콜로라투라(coloratura) 창법과 아아아아~하는 하이라이트 부분이 저절로 떠오르는 곡이다. 이 저주에 사무친 노래를 네 남자의 당당하고 웅장한 화음으로 들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다. 너무 파격적이고 신선해 배신감마저 살짝 드는 선곡에 충격받아 넋 놓고 있었다. 나도 이 정도인데, 모차르트 선생님이 포디콰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들었다면 무덤을 박차고 나오셨을 것이다. 잠시 충격으로 듣다가 격하게 감동해 노래가 끝나면 기립 박수를 치며 브라비~를 외치지 않았을까. (ㅎㅎ) 나중에 현수 군이 메트로폴리탄에서 이 노랠 천 번도 넘게 부른 친구가 객석에 와 있다고 하자, 훈정이 형은 그 얘길 왜 이제 하냐고 버럭(?)했다. 그 친구 분도 남자 넷이 부르는 ‘신선하고 파격적인’ 밤의 여왕 아리아는 처음 들었을 것이다.


 현수 군은 소프라노 영역까지 커버하겠다고 작정한 듯, 정말 대놓고 고음을 쏘아댔다.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성대를 허공 위로 잡아끌어다 소리를 토해놓는 것 같았다. 고음을 내는 그는 괴로웠을지 모르지만, 난 보는 내내 짜릿한 기쁨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는 2부에 ‘Fantasma D’amore’를 부를 때도 소프라노처럼 고음을 또 쏟아냈다.) 수많은 밤의 여왕들이 이 곡에 도전해 자신만의 색깔로 열정적이고 서늘한 복수를 보여줬겠지만, 네 남자가 보여준 씩씩한(?) 퍼포먼스는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밤의 여왕이 아니라 ‘밤의 왕자님들’이 부른 이 노래를 콘서트 동영상으로만 떠돌게 하지 말고, 다음 포디콰 정규 앨범에 보너스 트랙으로라도 넣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이번 『언플러그드 더 클래식』실황 음반을 내주시면 더 좋고. (제발~ Please~ Bitte bitte bitte~~~~)


 현수 군은 1부가 끝나자 혼자 무대 뒤로 쏙 들어가 버리는 귀여운 실수를 해서 객석을 웃겼다. 이런 인간적인 빈틈 때문에 현수 군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무대 인사하는 포르테디콰트로


THE CLASSIC 2부>  


 2부는 슈베르트의 가곡 Der Erlkönig(마왕)으로 포문을 열었다.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는 해설자, 아버지, 아들, 마왕의 파트가 나뉘어 있는데 한 사람이 부르기도 하고, 역할에 따라 네 명 혹은 세 명의 가수가 나누어 부른다고 한다. 포디콰는 태진 군(아버지), 벼리 군(아들), 현수 군(마왕), 훈정이 형(해설자와 마왕)이 역할을 나누어 불렀다. 음역대에 따라 파트를 나누었겠지만, 각자 적절한 배역을 맡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그들이 그렇게 나누어 불렀다고 말해서 그런가 보다 하지, 사실 들어도 누가 어떤 파트를 불렀는지 잘 모른다. (ㅎㅎ)

 

 난 가곡을 1도 모른다. 그런데 이 노래는 시작하자마자 앗, 마왕이군~하고 알아차렸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실기 평가 때문에 이 곡을 줄기차게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 이후로 이 노래를 떠올려 본 적도 없는데, 듣자마자 뇌리에 박힌 기억이 몇십 년을 거슬러 올라왔다. 강요와 압박으로 점철된 주입식 공교육의 힘이라니..


 성대로 관객을 홀리는 것도 모자라 비주얼로 찍어 누르겠다는 듯 각자 다른 컬러의 슈트를 입고 나온 네 남자를 보자, 마스크 사이로 돌고래 소리가 삐져나왔다. 남자들에게 안 어울리는 찬사 같지만 너무 산뜻하고 깜찍했다. 특히 옅은 팥죽색(?) 슈트를 입은 훈정이 형은 유난히 단아하고 예뻤다.


♪Il Libro Dell’Amore

♪Luna

♪Notte Stellata

♪Fantasma D’amore

♪Ave Maria

♪Adagio


 피아니스트 오은철의 편곡으로 새롭게 변신한 포르테 디 콰트로의 노래들이 연이어 연주되었다. 어느 곡 하나 예외 없이, 언제 들어도 이 악물고 있지 않으면 눈물이 쏟아질 만큼 아름답다. 미국 유학 중에 들어왔다가 코로나에 발목 잡혀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에게 네 남자는 은근한 압박과 종용을 했다. 앞으로 형들과 같이 하자고. 그가 빨리 대답을 안 하는지, 부담스러우면 전화 말고 문자 보내라고 또 압박한다. (ㅎㅎ) 멤버들이 이 젊은 피아니스트를 각별히 좋아하는 것 같다.


 ‘아베마리아’의 작곡가가 카치니가 아니라는 설에 태진 군이 다음 콘서트 때까지 책임지고 원곡자를 알아봐 주기로 했다. 과연.. ㅋㅋ



THE CLASSIC 앙코르>


♪Fix You

♪Miserere

♪Oltre la tempesta


 늘 그렇지만, 포르테 디 콰트로의 콘서트는 앙코르까지 아름답고 완벽하다. 「아르모니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곡이 마치 짠 듯이 나왔다.

  ‘Miserere’는 몇 번을 들어도 늘 설레고 감동적이다. 아마 때가 때인지라, 앙코르 곡 역시 한 곡 한 곡 의미를 담아 내놓은 게 느껴졌다. 위로와 기도가 필요한 세상에, 마스크를 쓰고 찾아온 관객들에게 포르테 디 콰트로가 보내는 감사와 힐링의 메시지라 생각한다. 그들은 무대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었고, 관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선물을 받기 위해 달려왔다. 나 역시 언제까지 마스크를 쓰고 발열 체크를 하며 조심스럽게, 때론 아주 큰 마음을 먹고 그들을 보러 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신이 있다면, 제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으면...


 다채로운 타악기들과 피아노, 오르간, 기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와 함께한 무대는 작년의 언플러그드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핸드 마이크는 없었지만, 콘서트홀 오디오를 대폭 보강한 듯 마이크가 없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사운드가 빵빵했다. 훈정이 형은 작년과 달리, 이번엔 객석을 향해 잘 들리냐고 묻지 않았다. 그도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핸드 마이크 없어도 아주 잘 들린다는 것을. 지난번 언플러그드보다 훨씬 더 여유 있고 자신감 넘치는 네 남자의 모습에 마스크 쓴 것도 잊고 시원하게 즐겼다.


 많은 시간을 공들여 준비한 듯, 「더 클래식」 답게 슈베르트와 모차르트를 플랙스 해버린 이번 언플러그드는 또 한 번 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의 레전드가 됐다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지금껏 수십 번 보았던 포디콰 콘서트 중 최고였다. 내가 이런 표현은 웬만하면 잘 안 하는데.. 그들은 정말 이날만큼은 밤의 여왕이 아닌 ‘밤의 왕자님들’이었다. 아마 모차르트도 인정할 것이다!  


언플러그드, 그 전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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