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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pr 24. 2018

끝난 사람이 다시 태어나기까지

<끝난 사람>  우치다테 마키코, 한스미디어, 2017년

 "정년퇴직은 생전에 치르는 장례식이다."


  다시로 소스케는 대형 은행에서 임원 승진을 목전에 두고 좌천한다. 그 후 15년 동안 자회사에서 버티다 63세에 정년퇴직한다. 그는 이 생전 장례식을 치르자마자 방황한다. 일류대를 나와 최고의 직장에 입사했다는 엘리트 의식이 정년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 몸도 마음도 팔팔한 60대인데, 사회에서 내처진 '끝난 사람'이라는 자괴감에 어쩔 줄 모른다.

  그는 같은 또래들이 다니는 스포츠센터나 문화강좌는 일부러 피하며 잉여 인간처럼 보이는 노인들을 경멸한다. 가족들의 위로도 며칠 가지 못한다. 50대 아내는 그런 남편을 노골적으로 지겨워하고, 급격히 떨어져 나간 인맥은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다시로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는 있는 힘껏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고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본인만 더 비참해질 뿐.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인정이 이렇게 어렵다. 그의 허무한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면 성실히 잘 살아온 인생이다. 은행에서 임원으로 퇴직하진 못했지만, 40년간 열심히 일한 덕분에 안정적인 노후자금도 있다. 아내와의 사이도 그럭저럭 괜찮고, 결혼한 딸과도 원만하다. 일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망만 버리면 건강한 취미를 즐기며 살 수 있음에도, 그는 스스로를 끝난 사람이라 단정하는 못난 남자다.


  방황 끝에 다시로는 젊은 여자를 만나지만,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연애는 시작도 못한다. 그는 그녀에게 '밥이나 사주는 아저씨'일뿐이다. 그녀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남자'인 건 맞지만, 그건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의 다른 말이다. 남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남자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남자는 그가 바라는 '남자'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기적처럼 신생 IT기업의 고문 자리가 들어오자 그는 덥석 수락한다. 양복의 숨이 살아있는 현역 시절로 돌아간 기분은 그를 한껏 고양시킨다. 젊은 대표가 갑자기 사망하자 내친김에 사장직까지 수락한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일과 지위는 그에겐 어떤 마약보다도 강렬한 각성제가 된다. 그는 평화롭고 즐거운 여생을 즐기는 타입이 되는 걸 보란듯이 거부한다.

  그러나 의욕적인 직장 생활은 곧 위기에 처한다. 해외사업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지만,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직장하고 무덤 사이에 자극적인 일이 좀 있는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그에겐 의욕과 에너지가 넘쳐흐르지만, 정작 필요한 것이 없다. 이를테면 나이와 능력의 쇠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참다운 인간의 품격 말이다. 결국, 다시로는 회사 도산의 뒷감당으로 개인 자산의 90%를 잃고 무일푼이 된다. 그는 비교적 차분하게 자신의 의지에 반한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더 이상 '정년퇴직은 생전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예전의 60대가 아니다. 샐러리맨으로 남김없이 불태운, 어떤 해탈의 경지를 맞본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책은 한 남자의 어리석은 은퇴기를 보여준다. 객관적으로 보면 다시로는 말년에 실패한 사람이다. 가만히만 있었어도, 처지를 받아들이고 현실을 수긍만 했어도, 아내 말만 잘 들었어도, 그는 자산을 잃지 않고 가족과도 더 좋은 관계로 살았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러나 무모한 이 초로의 남자는 생명이 있는 동안 겪어야 하는 고통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든다. 숨만 쉰다고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다. 미련해 보일지라도 그는 원 없이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많은 손실과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에게 더 이상 미련은 안 남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잘 살았고, 잘 했다.

 

  아무것도 잃지 않기 위한 최선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은퇴한 사람들 대부분은 이루어 놓은 것을 지키며 그렇게 산다. 그게 나쁜 것도 아니다. 지킬 게 많다면, 그걸 잃지 않는 최선의 태도로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게 좋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산 사람은 많은 걸 잃었어도, 후회 없는 가뿐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해탈까지 가면 더 이상적일 것이다.


  풍파를 겪고 난 다시로는 "아아, 예순다섯이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건 결코 희망적인 마인드는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생이 너무 길지 않게 적절히(?) 남은, 그래서 잃은 것에 대한 불안과 미련도 조금 가뿐하게 여길 수 있는 자조적인 안도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2년 전 은퇴할 때 이미 생전 장례식을 치른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인생이란 아무리 미리 준비해도 생각대로 안 된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이다. 가진 것의 대부분을 잃고 가족과의 관계도 변했지만, 그가 예전보다 더 잘 살 거라는 예감이 든다. 무모한 욕망과 고문 같은 희망을 떨쳐 버리고 나름 해탈했으니 말이다. 그는 더 이상 끝난 사람이 아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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