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지 말고 지금 하기
첫 문장부터 술술 잘 읽히는 글이 있다. 세련되고 유익한 게다가 재밌기까지 한 글을 만나게 되면 난 어김없이 심장이 빨리 뛰고, 눈물이 핑 돈다. 증상만 보면 헤어진 연인을 극적으로 다시 만났거나 잃어버린 반려견과 상봉하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하지만 실상은 멋진 글을 아무렇지 않은 듯 세상에 선보이는 그들이 마냥 부러울 때 나타나는 증상이며 한동안 빈 종이 위에 글 한 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 자신을 부정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란 걸 잘 안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나도 한때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 여기서 ‘글’은 나를 위로하고 나를 담아내는 글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한국에 몇몇 문화 예술 리빙 월간 잡지사 객원기자로 쓴 기사가 내가 말하는 글이다. 잡지사 측에서 메인 기자들이 미처 소화할 수 없고(물론 시간이 없어서) 월간 잡지 전체 분량 중 절반을 넘기는 지점에서 후반부에 배치해야 하는 꼭지들 특성상 가독성도 떨어지고 주로 취재성 기사를 가장한 광고성 기사를(돈은 좀 되지만 크게 의미 없는) 나와 같은 객원기자에게 넘기면 내 흥미와 재능을 따지지 않고(따지기 시작하면 쓸 수 없다) 마감일을 여유롭게 남기고 다시 넘기는 일을 주로 했다.
그럼 이쯤에서 질문이 쏟아질 법한데….
왜 지금은 남이 쓴 멋진 글을 읽고 감탄과 탄식만 하면서 자기 글은 하나도 쓰지 못하고 있나요? 라며.
사실 최근까지도 남이 쓴 멋진 글을 읽으며 심장이 뛰다 못해 눈물이 맺히기까지 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내가 보기보다 감수성이 퍽 깊은 편인가 봐...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평소 친구 동생 하며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과 함께 일명 ‘독서클럽’을 결성하고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증상이 단순 감수성 폭발이 아닌 자괴감과 무력감에서 출발한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 시작은 독서클럽을 함께하는 한 친구가 던진 질문에서 출발한다.
"언니 예전에 잡지사 기자로 활동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지금은 왜 글을 안 써요? “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수많은 먼지 중 한 톨이 되어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난 곧바로 그 친구에게 ‘글’이라고 부르기에 한참 모자란 기사를 쓰던 구질구질한 시절을 적당히 쿨하고 심플하게 정리해 주절주절 떠들어 댔고... 그 순간 난 내가 나로부터 도망치는 삶을 살아왔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객원기자에서 정기자가 될 타이밍에(최소 되려고 노력해야 할 타이밍에) 쫓기듯 결혼하고 임신하고 육아 전쟁을 치르며 나는 나에게서 줄곧 멀어지는 데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아왔다. 나와 멀어지는 걸 택하고 사회가 정한 기준에 부합하는(도대체 누가 정한지도 모르는) 삶을 선택한 나는 내가 마땅히 응당 해야만 한다고 되뇌었던 지난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세상을 탓하고 운명을 탓하며 내 삶을 밝히는 희미한 불빛을 기어이 꺼트렸다.
좋은 질문은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게 한다고 했던가... 어느 날 문득 친구가 던진 질문 하나가 잠든 나를 깨우고 내 머리 위로 핀 조명을 켰다. 네 삶은 괜찮냐고... 너는 지금 행복하냐고...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냐고...
나 스스로에게 독백과도 같은 질문을 쏟아냈지만, 그 어떤 질문에도 긍정하지 못했다.
아니... 아니... 없는데...
난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늘 긍정으로 답해야 한다는 강박을 달고 살면서 막상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부정으로만 답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나에게 긍정하는 삶을 살자고...
더 이상 뒷걸음치며 돌아보고 후회하는 삶은 멈추고 지금에 살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시작이 반이 되려면 일단 시작하는 거다.
지금 이렇게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브런치부터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