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클럽 오래오래 잘하고 싶어

그럼 잘 말고 그냥 해

by 로라see

평소 한 달에 한 번쯤 만나 밥 먹고 차 마시며 친구 동생 하는 지인이 여럿 있다. 하하 호호 서로 근황 얘기하고 고민도 나누고 어느 치과에 가야 사랑니를 아프지 않게 뽑는지 어디가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잘한다더라 등 외국 생활 필수 정보도 교환하며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며 지내기를 여러 해. 그러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고 문득 그냥 만나 얼굴 보며 시시콜콜 수다만 떨지 말고 좀 더 유익한 시간을 가지자 결의하게 된다.


그렇게 갑자기 뜬금없이 결성된 유익한 모임은 그 이름도 거창한 독서클럽.


사실 밥 먹고 차 마시며 수다 떨던 모임이 독서클럽으로 변신한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아닐까 조심스레 확신(?)해본다. 그 확신의 근거는 독서클럽 멤버 면면을 살짝만 들여다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판화 가이며 화가, 정규직 직장인이며 종이접기 강사, 안무가이며 요가 강사, 작곡가이며 피아노 강사, 그리고 한때 잡지사 객원기자였으며 이제는 브런치 작가로 데뷔하고 싶은 나. 우리는 모두 무엇이며 무엇인 채로 살아가고 있으며 거기에 한 달에 한 번 독서클럽 활동하기가 더해진다 해도 전혀 낯설지 않은, 오히려 뭔가 자연스러워 보이는 느낌이랄까...


독서클럽이 아닌 달리기나 등산 클럽을 결성했다고 상상해보니 그저 어색하고 민망한 장면만 떠오른다. 요즘 어떤 스포츠에도 유니폼처럼 착용한다는 초밀착 에슬레져룩으로 차려입은 우리는 복잡한 도심을 달리기나 애써 멀리 찾아간 산을 올려다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다음엔 카페에서 만나 수다나 떨어요, 하며 급히 헤어지지 않을까.


사실 에슬레져룩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독서클럽 친구들은 언제나 책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고 있거나 최소 동경하는 삶을 살고 있다. 친구들이 하는 일은 하나같이 자신이라는 우물을 들여다보고 우물 안 깊숙한 곳으로부터 깨끗한 물을 밖으로 길러내는 작업이다.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 일에 지치지 않으려면 영혼에 샘물이 마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독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훌륭한 길이 되어 줄 테니까. 그러니 독서클럽의 결의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나의 주장이 꽤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고 다시 주장하고 싶다.


독서클럽이라는 명분으로 몇 번의 모임을 하며 이왕 시작한 독서클럽 오래오래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독서클럽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독서클럽 운영기를 다룬 책이 있나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과 커피 마시며 독서클럽이 기대되고 그만큼 오래오래 잘하고 싶다고 고백 같은 고민을 내뱉었다. 그러자 남편이, 그럼 잘 말고 그냥 해, 하는 거다.


”그럼 잘 말고 그냥 해“


평소에 말 많은 남편과 살며 세상살이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며 자기주장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판단될 때 애써 분통함을 감추며 은근슬쩍 딴 얘기로 화제를 돌리거나 맥락 없이 빈 커피 잔을 쳐다보며, 어..? 벌써 다 마셨어 커피 한잔 더 해야지, 라며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은 어느 때보다 설득력 있는 한마디가 귀에 꽂혔달까.


물론 지금 나는 안다. 남편이 쿨하게 던진 말이 실은 어느 정도 비아냥 섞인 질타라는 걸. 뭘 그렇게 고민까지 하고 그래, 어차피 처음에 품은 열정이 시간과 함께 사그러 들어 흐지부지 될 텐데, 그러니까 그냥 해, 정도.


그런데 난 그 순간 따듯한 위로와 충고로 들은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건 고민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오래오래 잘할 수 있으니 그냥 부담 갖지 말고 즐기면서 해,라고 말이다.


결국 난 내가 듣고 싶은 말로 해석하고 결론까지 내렸다.


독서클럽, 우리 함께 오래오래 멀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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