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걷는 마음 1.

by 로라see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너무나 당연하다 여겨 온, 어쩌면 말이란 걸 알아듣고 내뱉기 시작할 즈음부터 내 머릿속에 화석처럼 박혀 인간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확신이 들게 되는 문구이다. 하지만 그 확신은 내가 매일 걷기 시작한 뒤로 의문이 되고 나만의 새로운 정의에 닿게 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려면 우선 육체가 정신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말이다.

작년 봄 나는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강제 자가격리 조치를 난생처음 여러 번 경험하며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창문 밖 너머로 보는 풍경을 통해 계절 변화를 감지하고 마음속으로 짧은 감상문을 떠올려 보는 일상에 소소하게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니까 대체로, 오늘 같은 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 마시기면 좋겠네, 라던가, 내일은 드라이브하고 근교에 있는 맛집에서 점심하고 차 마시면 좋겠네, 하는 수준에서 계절을 느끼고 즐기면 그만이라 여기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던 내가 비자발적 격리를 겪으며 무기력증과 가벼운 우울증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처음엔 내가 우울증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는 자각도 하지 못했을뿐더러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도 무시하거나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상태에 가까웠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아침 먹고 돌아서서 점심 먹고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시계를 보며 반사적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먹은 후 곧바로 설거지하고 8시가 되면 저녁 뉴스를 보면서 그날의 확진자 수를 확인하며, 아, 어제보다 더 늘었네 휴…, 한숨 쉬고 하루 종일 코로나 걱정에 우울했느니 조금은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밝은 주제의 영화를 틀어서 보다 보면 전날 잠든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어김없이 하품이 쏟아지고, 아. 벌써 잘 시간이네, 하면서 잠자리에 들고, 무사히 다음날 아침 전날과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고...


이런 생활이 한동안 반복될 때 처음엔 나도 루틴이 생겼나 봐, 하며 조금은 반갑고 신기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우울감은 슬며시 내 삶을 파고들고 있었고 나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어느 봄날 이른 아침 문득 집을 나서 무작정 걷기 시작하기 전까지.

그날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주 평범한 날로 기억된다. 긴 겨울이 끝나고 이제 봄이 오고 있다는 여러 신호가 거실 창을 뚫고 식탁 위로 내리 꽂히고 있다는 정도가 다른 점이랄까. 더더군다나 전날 밤 잠들기 전, 내일 일어나자마자 걸어야지, 하고 다짐하고 일어난 날도 아니었으며 저 먼 우주 어디에선가 나에게 특별한 신호를 보낸 날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 당장 나가서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충동에 휩싸였고 어느새 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와! 상쾌하다, 내일도 모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걷고 싶다, 고 말이다. 하루에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내 몸과 마음의 변화에 이끌려 조금씩 변하고 성장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내 삶은 매일 걷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매일 걷기 전에는 대체로, 오늘 같은 날은 야외 활동하기 틀렸어…. 온종일 따뜻한 집에서 아이스커피나 마시며 책이나 봐야지, 하며 쌓여있는 책을 다 해치울 것처럼 다짐하고서 언제나 늘 그 다짐과는 먼 딴짓으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뿐인가 미처 잠들지 못한 헛헛한 밤이면 혼자 몰래 군것질로 거짓 배고픔을 달래거나, 싫어요, 난 이거 말고 저게 더 좋아요, 해야 하는 순간에도, 좋아요, 난 아무거나 다 좋아요,라고 말하는 걸 강박처럼 달고 살았다.


그런데 매일 걷기를 지속하고 언제부터인지 다짐만 하던 책 읽기에 좀 더 진심이 되고 해야 할 공부도 스스로 찾아서 하고 글쓰기에도 흥미가 생겼으며 야심한 밤 습관처럼 하던 군것질을 멈추고 잠자리에 빨리 든다거나, 좋아요, 강박에서 벗어나 내 감점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한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꽉 끼어 단추가 채워지지 않던 청바지 안으로 다리가 메끄럽게 쑥 들어가고 허리라인까지 부드럽게 손이 올라와 가볍게 단추를 채우는 순간의 환희는 덤!


그다지 불편하지도 불만도 없던(실은 눈치채지 못한) 내 평범한 일상이 나도 모르게 변하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다 생각해 의심조차 해보지 않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논리가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질문하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뭔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거나 또는 새로운 출발선에 설 타이밍에 어김없이 뒷걸음질 치거나 그도 아니면 긍정과 부정의 표현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순간에 강박적으로 긍정해야 한다는 내적 압박감에 시달릴 때, 내가 멘털이 약하구나, 멘털을 강화하려면 요즘 유행하는 명상호흡법을 배워보거나 심리상담사를 찾아갈까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계획도 세우기만 할 뿐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는 걷기 시작한 것이다. 걷기가 내 삶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계획하고 도출시킨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냥 내적 충동에 내 몸을 맡긴 것뿐이다. 처음이 낯설고 어색할 뿐 매일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일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단단해지고 기쁨에 충만해졌다. 그뿐이다.


그럼 이쯤에서 내가 정의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려면 우선 육체가 정신을 이끌어야 한다"라는 논리가 여러분에게도 설득력 있게 닿았을까?(그러기를 기대해 본다!)

나에게 매일 걷는 마음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용기이고 응원이다


내가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절망감에 빠져들거나 가만히 앉아 숨 쉬는 것도 버거운데 남들은 빨리 달리기나 마라톤 완주를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걸 바라보며 자꾸만 마음속 동굴로 숨고 싶어질 때, 괜찮다고 겁먹지 말라고 동굴 안보다 동굴 밖이 훨씬 따뜻하고 재밌는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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