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산책을 나섰어요. 토요일 아침 모두들 잠자리를 떨치지 못하는 시간 나 혼자 조용히 걷고 싶었죠. 부지런한 새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새벽의 맑은 공기를 코로 마시고 입으로 뱉어내고 시원한 바람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어요.
아침 산책 코스의 시작 지점인 동네 초등학교 앞 주택 단지로 접어들었을 때 은은한 아카시아꽃 향이 코를 자극하면서 연보랏빛 등나무 꽃이 화사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어요. 참 이상하죠, 어제도 분명 지나간 길인데 고요한 주말 아침 그 순간에 일상의 평범한 풍경들이 오감을 자극하고 무심한 이의 발길을 붙들어 매더 군요.
아카시아꽃 향과 등나무 꽃의 조화가 신기해 등나무 꽃을 검색해보니 등나무 꽃 향이 아카시아꽃 향과 흡사하다고 해요. 해마다 봄이 되면 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마을에 산지 10년이 넘도록, 등나무 꽃이 만발할 때 왜 아카시아꽃 향이 나는지, 어떻게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는지, 그 사실이 절 더 궁금하게 만들었죠.
등나무 꽃과 아카시아꽃 향기의 연결 고리를 생각하며 걷다 보니 등나무 꽃이 만발한 담장의 다양한 표정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네요.
산책 코스의 중간 지점인 마을 성당 앞 후미진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집 대문 위로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등나무가 걸려있네요. 자전거가 세워진 자리 바로 옆에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편백 한 그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서있어요.
오늘 아침 산책 코스에서 만나는 등나무 꽃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여기가 아닐까 해요. 소박하고 조촐한 집 현관 위로 등나무 덩굴이 리스 모양으로 뻗어나가 마치 왕관처럼 씌워져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보통 집 대문이나 담벼락에 애칭이나 별칭을 표시해 두는데 이 집의 애칭은 담쟁이덩굴(Les Lierres)이라 적혀있네요.
집주인은 담쟁이덩굴이 휘감아 도는 집을 꿈꾸며 애칭을 붙인 것 같은데 현실은 누가 봐도 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핀 집이에요.
담쟁이덩굴이라는 애칭과 등나무 꽃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리스가 둘러싼 집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다른 모습일 때가 많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일치하지 않아서 슬프고 억울한 우리들의 마음도요.
이른 아침 산책길 흐드러지게 핀 등나무 꽃을 발견하고 은은한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으며 익숙한 풍경에서 낯선 기분을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