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불안과 시간은 글쓰기에 가장 좋은 연료다. (....)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사실 시간과 불안을 이기기 위한 것 아닌가. 시간과 불안을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는 삶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 기쁠 때도 쓰고 슬플 때도 쓰고, 심지어 쓰지 않을 때도 쓴다.
이윤주 작가의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프롤로그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가가 오랜 시간 오로지 자신을 위해 글을 써온 시간을 통해 담아낸 '쓰는 삶을 위한' 고백이다. 시간과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이윤주 작가의 담담한 고백은 나의 지난 열흘을 돌아보게 했다.
지난 주말까지 열흘 연속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처음부터 열흘 동안 매일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다. 독서클럽을 시작하고 우연히 브런치에 작가 등록을 한 것이 지난 3월 초였고 4월이 될 때까지 겨우 3개의 글을 발행한 것이 전부였다. 적당히 한가롭고 여유로운 3월을 보내고 4월에 접어들어 과제 제출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분명 전날까지는 3월이었고 겨우 하루 지나 4월이 되었을 뿐인데 달력에 표시된 4라는 숫자를 보니 갑자기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과제 작성을 목적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과제 파일은 열어보지만 재미가 없고(사실 과제 작성이 재밌었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 집중이 되지 않아 집중력을 올려볼 요량으로 전자책을 펼치고 잠깐 독서 시간을 가져본다. 이상하게도 독서는 시간이 많고 한가할 때보다 여유가 없고 머리가 복잡할 때 욕구가 치솟고 효과도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조금 책을 읽다 보면 떠오르는 단상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진다. 그렇게 지난 열흘 동안 나는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과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 글을 썼다는 이윤주 작가와 달리 나는 달아나는 시간을 붙잡기 위해서 썼던 것 같다. 과제 마감일이 촉박해지면서 스트레스가 늘어나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의욕마저 바닥을 치면서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이 바싹 말라 증발해버릴 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혔다. 기껏 과제 파일을 열어놓고 진도를 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컴퓨터는 켰지만 파일을 열고 싶지 않아 딴짓을 했다. 이왕 딴짓을 하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 할바에 브런치에 글을 쓰는 방식으로 딴짓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일 아침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과제를 하는 루틴이 만들어지면서 열흘이 흘렀다.
마치 오랜 가뭄으로 딱딱하게 갈라진 땅 위로 단비 같은 소나기가 내리면 바삭 마른땅은 그제야 조금씩 천천히 부드러워지고 서서히 갈라진 틈이 메워지듯이 지난 열흘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시간은 마감에 쫓겨 흥미를 잃고 의미도 잊은 내 마음을 촉촉이 적시고 어쩌면 말랑말랑하게도 만든 것 같다. 결국 나는 마감일에 맞추어 과제를 작성하고 제출할 수 있었다.
무슨 말장난인가 하겠지만 쓰는 근육이 한번 생기고 나면 삶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을 내가 '쓰는 태도'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겨우 열흘의 시간이지만 어떤 다짐이나 약속 없이 매일 글을 쓰면서 난 그 매일의 리듬을 즐겼던 것 같다. 마감도 없고 주제의 제약도 없고 분량 제한도 없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해방감 비슷한 것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글이 허무하고 공허한 독백이 될까 두렵기도 했다. 이윤주 작가의 말처럼 나에게도 '쓰는 근육'이 생겨 내 삶의 많은 일을 '쓰는 태도'로 해석할 수 있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꾸준히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