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있는 날이다. 내가 주로 아침 산책에 이용하는 코스는 우리 동네 대선 투표장이 마련된 초등학교도 포함된다.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투표할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 조용히 산책하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학교 앞 널찍한 인도는 인적이 드문 주택 단지 중심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어 등하교 시간이 아니면 개미 한 마리 지나가는 것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정적이 흐른다. 저 멀리 대선 후보들의 홍보물이 부착된 선거용 게시판이 조용히 서있다.
파워워킹으로 호흡이 빨라지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늘색 유모차와 함께 두 남자가 여유롭게 걸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부터 말쑥한 차림으로 유모차를 끌고 학교 앞을 지나가는 두 사람이 왠지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훤칠한 키에 스키니진과 스니커즈, 커플 템처럼 보이는 선글라스까지, 게다가 둘 중 걸음걸이가 다소 여성스러워 보이는 남자는 요즘 유행하는 귀엽고 깜찍한 크로스백을 메고 있다. 어엇, 뭔가 모르게 굉장히 낯이 익은 실루엣이네 생각하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두 남자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곧 거친 심호흡과 함께 아주 부드럽고 달콤한 향이 코를 자극하고 빠르게 뇌로 전달된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남자 동성 커플인 것이다. 최근 파리 시내에서 간간이 마주친 적이 있지만, 파리 서쪽 외곽지역 중에서도 인구 밀도도 낮고 보수성향이 강한 동네에서 유모차를 끄는 동성 커플을 만날 거라고는 상상해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대통령 선거 투표장이 있는 학교 앞을 그것도 다들 주말이라 늦잠 자고 있을 시간에 왜 지나갔을까 궁금해하면서 남은 산책 코스를 최대한 파워풀한 속도로 걸었다.
아침 산책의 마지막 코스는 오늘도 집 앞에 있는 빵집이다. 집 근처에 빵집이 두 개 있는데,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빵집은 정말 맛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빵은 거의 언제나 빨리 품절되고 집 바로 앞에 있는 빵집은 좀 실망스러운 수준이지만 내가 원할 때 언제나 빵을 살 수 있으며 야외 테이블이 있어 주말 오전에는 간단히 브런치를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오늘 아침엔 바게트 하나만 살 계획이다.
아침부터 모처럼 해가 반짝하다. 2주 가까이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까지 내려 도대체 봄은 언제 오는지 일 년 내내 가을과 겨울로만 지내는 건 아닌지 이제 기후 변화를 일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닌지, 바로 엊저녁에 걱정하며 툴툴거렸는데 해를 보니 그냥 기분이 줗다. 역시 빵집 앞 야외테이블은 벌써 빈자리가 없다. 그리고 하늘색 유모차 한 대가 차양을 펼치고 해를 정면으로 보는 자리에 세워져 있다.
아니나 다를까 좀 전에 마주친 그 커플이 유모차가 세워져 있는 위치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선글라스를 쓰고 해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그들을 나는 또 스치듯이 지나 빵집으로 들어갔다. 빵을 주문하려고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야외 테이블에 앉은 그들의 뒤통수를 계속 흘끔거리며 쳐다보고 있는데 나만 흘끔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른 아침에 빵을 사려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과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아빠 등 빵집 앞을 지나는 동네 사람들 모두 애써 아닌 척 하지만 흠칫 놀라는 기색이 내 눈에 그대로 읽힌다.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재택근무와 야외활동에 크게 주목하면서 지금 현재 프랑스는 탈도시화가 계속 진행 중이다. 우리 동네도 최근 눈에 띄게 풍경이 바뀌고 있다고 느낄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는데 오늘 마주친 그 동성 커플은 우리 동네에 부는 가장 신선한 바람이다.
프랑스는 2013년 동성 커플도 정식으로 입양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어 이제 그 누구도 차별 없이 아이를 가슴에 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아이의 볼살을 찌우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양볼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인내를 쌓아가고 체념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인정하는 지혜를 배우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그 지루하고 고단한 과정이 우리를 더욱 우리로 살아갈 수 있는 길로 인도한다고 나는 믿는다.
바게트 하나 손에 들고 나오면서 한 번 더 하늘색 유모차에 눈길이 간다. 하늘색 유모 차면 아들일까, 아니면 요즘은 기존의 성별을 구분 짓는 색상 개념과 반대가 유행이니까, 그럼 딸일 것 같기도 하다. 헛, 딸인지 아들인지 궁금해하는 내가 유행에 뒤쳐지고 있는 것 같아 황급히 뒤돌아 파워워킹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Photo: krausman.fr(poussette combinée 3 en 1 clasic bl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