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같이 상하이 갈래?

by 로라see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가볍게 겉옷 하나
걸치고서 나오면 돼

너무 멀리 가지 않을게
그렇지만 네 손을 꼭 잡을래 _별 보러 가자. 적재


적재의 '별 보러 가자'를 들을 때면 이십여 년 전 남편이 상하이에 같이 가자고 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 시절이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 거냐 묻는다면 난 단호히 '노'라 답하겠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아시아를 무대로 잦은 출장과 고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고 나는 여러 매거진에 객원 에디터로 활동하다 D 매거진의 정식 에디터 자리에 지원했다 고배를 마시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였다.


일본으로 두 달가량 장기 출장을 떠났다 돌아와 오랜만에 얼굴을 보며 저녁을 먹던 자리였다.


"나랑 같이 상하이 갈래?"

"상하이? 중국 상해를 말하는 거야? 북경 아래에 있는 도시?"

"응, 상해 맞아, 그러니까 상하이"

"거긴 왜? 놀러 가자고?"

"아니... 나 상하이 지사로 가게 됐어."

"그래? 그럼, 갔다 와."

"아니... 상하이 지사에서 최소 5년 이상은 근무하게 될 것 같아. 그러니까 결혼해서 같이 가자고..."

"결혼...? 난 지금 당장 결혼 생각은 없는데.... 상하이는 가까우니까 오빠가 서울에 자주 오면 되잖아... "

"지금도 바쁘지만 상하이 지사에 가게 되면 더 바빠져서... 서울에 자주 오기 힘들어질 거야..."


당장 결혼 생각은 없다고 말해 놓고서 난 그다음 날부터 상하이에 가서 살게 되면 어떨까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고대하던 에디터 자리에서 밀리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재취업을 해야 하나 아니면 객원 에디터를 당분간 지속하면서 정식 에디터에 재도전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참에 남자 친구가 결혼과 동시에 상하이에서 신혼 생활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중국과 중국어가 전 세계적으로 급부상을 하고 있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생들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중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지인의 누군가는 중국인과 사업을 논하거나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 나도 마음만은 이미 상하이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인 친구를 사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익숙한 거리와 풍경 속으로 매일을 지겹게 오가던 나는 내 손안에 무엇을 쥐었나. 꼭 쥐고 있는 주먹을 활짝 펴보아도 무엇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어쩌면 이국의 거리와 풍경 속을 걷다 보면 두 손 가득 채우고도 남을 그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난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기면 서두르지 않는다. 다그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게 된다. 소유하고 싶은 열망에 휩싸여 쫓아가고 달려가면 가지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한 여름밤의 캠프 파이어를 바라보는 마음이 이럴까. 두 눈으로 담기에 성이 차지 않아 온 몸을 쭉 뻗어 캠프 파이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지만 반대로 악착같이 버텨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한 발짝 물러서 최대한 거리를 둔다. 본능이 본능을 거스른다.


혼자 갈 테면 가라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보면 우리 관계가 좀 더 선명하게 떠오를 것 같았다. 그래서 상하이에 대해서 애써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제멋대로다. 난 그 제멋대로에 꼭 무장해제된다. 12월 어느 날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코 앞으로 다가왔고 새로운 달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 우리 혼인신고하고 상하이에 가자. 어쩌면 크리스마스이브를 상하이에서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그래... 그럴까?”


별 보러 갈 테니 가볍게 옷을 걸치고 나오라 하는 적재와 혼인신고만 하고 상하이에 가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자는 남편이 오버랩된다. 난 그 하늘하늘 가벼운 제안을 고민도 없이 받아들였다. 결혼이 한 여름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보러 가는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Vivien(1863), Frederick Sandys 작품

아더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매혹적인 악녀, Vivien.

그림의 배경으로 묘사된 공작새 깃털은 교만과 자만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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