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자식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얻은 깨달음

Next stop is....

by 로라see

" 엄마, 그냥 앉아 있어도 돼요...! "


" 이번에 내려야 하잖아...? "


" 그러니까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 그때 일어서서 내리면 된다니까요...! "


"... 난 미리 서서 내릴 준비 하는 게 마음이 편한데... "


결국 난 아들의 연이은 제지에 얌전히 앉아 있다 버스가 정차하고 문이 열린 후 아들이 느긋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뛰어내렸다.


“ 엄마, 것봐,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했죠, 이렇게 여유 있게 내려도 아~~ 무 문제가 없다니까요…! “


지난 토요일 오후 아들과 단 둘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파리로 가는 중이었다. 먼저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파리 도심철도 RER(Réseau Express Régional) 역에 가서 고속철도를 타고 파리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보니 아들과 단 둘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외출을 한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년 전 아들이 매주 토요일 규칙적으로 파리에 가야 할 일이 생겨 대중교통을 이용해 파리에 가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동행한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어디를 가든 자가용에 아들을 태우고 볼일을 보러 다녔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이사와 지금까지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파리로 가려면 자가용으로 소요되는 시간에 대략 두배가 걸린다(물론 러시아워 시간대는 예외). 그러다 보니 어디를 가든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년 전 고등학교에 진학한 무렵에서야 아들에게 파리 대중교통 이용 방법을 뒤늦게 지도해 줄 필요가 있었다.


파리 레알 Les Halles역에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타는 방법을 설명해줄 때 내심 아들이 파리 지하철에서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레알 Les Halles 역은 그야말로 파리지옥이 따로 없을 만큼 다양한 노선과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으로 자칫 방심하면 두 눈 멀쩡히 뜨고도 헤맬 수 있는 곳이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지난 이년이란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았는데 그 와중에도 아들은 덩치가 커졌고 수염을 깎아야 하나 밀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고 가끔은 향수도 뿌려야 할 것 같다며 은근히 남성미를 풍겨댄다. 버스에서 고속철도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들이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하루하루 나이 먹어가는 걸 한스럽게 느끼면서도 아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거에는 꽤나 무신경했구나.


마을버스에서 내리며, 엄마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미리 문 앞에 서있어야 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한국 사람이야, 아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설명하듯 변명을 늘어놓는다. 아들은 나의 변명에 아랑곳 않고, 엄마 여유를 가지세요, 일침을 놓는다. 헉.


버스가 정차하고 문이 열린 후 느긋이 일어나 여유 있게 내려도 되는데 굳이 정차도 하기 전에 흔들리는 버스의 리듬에 맞춰 아슬아슬 곡예라도 하듯 하체에 힘을 빡 준 채 문 앞에 대기하는 모양새가 여유가 없어 보인다니... 아들이 지적하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짧은 순간 아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머리를 굴려 본다. 흐흠, 엄마가 RER 타고 파리에서 내릴 때 여유 있게 행동해 볼게,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한가한 마을에서 파리로 들어가는 고속철도를 타면 언제나 앉을자리가 있다. 역시나 아들과 나는 나란히 파리 방향을 보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20분 남짓 어느새 우리가 내릴 레알 Les Halles역에 다다랐다. Next stop is... (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일어선채로 얼음이 되었다. 그 짧은 순간 다시 앉아야 하나 그냥 일어선 김에 문 앞에 가서 서있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아들 얼굴을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들은 말없이 조용히 눈짓으로 앉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뻘쭘하게 어정쩡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기차가 정차하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최대한 천천히 일어서서 아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이번에도 역시 후다닥 내렸다. 휴우우, 엄마는 아무래도 여유가 없나 보다, 아들을 곁눈질로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 급하게 행동할 필요가 없어요, 아들이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다행히 그날 우리는 서로 다른 장소에 서로 다른 볼일이 있어서 레알 Les Halles에서 헤어졌다. 아들 나중에 집에서 보자, 하며 돌아섰다. 아들과 헤어져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들이 말하는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Next stop is...라는 주문이 나에게는, 다음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경고로 해석되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이 말하는 여유는 Next stop이 경고가 아닌 약속이었다. 여유가 없는 엄마를 보며 성장한 아들이 여유가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아들이 언제나 약속이 유효한 삶을 일구어가길 응원하며... Next stop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