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을 더 즐겨야겠다는 아들에게

by 로라see

" 이맘때가 되면 꼭 그런 생각이 들어.

올해가 끝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고…

지난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남은 시간을 더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돼…"


누구신지… 어째 이 세상 꽤나 살아본 이가 인생 뭐 별거 없으니 즐겨, 하는 포스가 풍긴다.


오늘 아침 학교 가는 차 안에서 아들이 독백하듯 나에게 툭 뱉어낸 말이다.

순간 아들이 달라 보였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허둥지둥 씻고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그 와중에 날씨를 체크하며 긴팔 상의를 입어야 하나 반팔 상의를 입어야 하나 조언을 구하는 아들에게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간신히 꾹꾹 누르고도 모자라 등교 버스를 간발의 차로 놓친 아들을 태워 학교 앞까지 모시고 가는 길이었다.


참자 참자 아침부터 야단치고 화내고 얼굴 붉혀봐야 나만 하루 종일 심란하고 맛없는 학교 급식으로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울 아들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할 것이 뻔하니 그냥 말없이 조용히 가자 다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선제공격하듯 훅 치고 들어온 아들의 말이 거짓말처럼 모든 걸 잊게 했다. 이를테면, 하교한 아들에게 야단도 아니요 간섭도 아니요 훈계도 아닌 형식(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잘 모르지만)의 어떤 가르침을 좀 줘야겠어, 라는 마음속 다짐 같은 것 말이다.


프랑스는 9월에 개학을 하고 다음 해 6월 말 무렵 여름 방학을 시작하며 일 년 학사를 마무리하는 가을학기 제도를 시행한다. 달력 기준으로는 분명 1월에 한 해를 시작하고 12월 31일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지만 프랑스에 살다 보면 달력상 일 년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5월이 되면 벌써 한 해가 다 끝나가는 것 같다. 다르게 얘기하면 프랑스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씁쓸하고 동시에 설레는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달력이 갖는 순수한 의미를 종종 어쩌면 완전히 잊어버릴 수도 있다.


아들도 이맘때가 되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반복되는 일상의 흐름과 그 속에서 의식처럼 치러야 하는 과제와 행사 등에 익숙해진 것이다. 되돌이표 같은 리듬 속에서 지나간 시간들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현재에 집중하고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아침시간 아들이 부산하게 등교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야단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길 참 잘했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 어어... 그래 그렇지...(최대한 조언처럼 느껴지지 않을 한 마디를 머릿속으로 굴려본 시간만큼 채워진 마침표들) 결국 오늘 하루를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보내면 되지 않을까...? "

" 응... 그래... "


곧이어 학교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는 아들에게 평소보다 좀 더 씩씩하고 다정한 말투로 인사한다.


" 오늘도 좋은 하루! "

" 그래~ 엄마도! "




매거진의 이전글나 어쩌면 결혼을 못 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