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하고 싶지만...
며칠 전 오랜만에 아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저녁상을 차렸다. 아들은 얼큰한 탕이나 찌개류, 새콤 매콤한 무침류와 시큼 쌉싸래한 짠지류를 좋아한다. 쓰고 보니 완전 토종 한국인 입맛이다. 그런데, 이곳 프랑스에서 아들의 입맛을 채워줄 식재료를 구하기도 힘들고 애써 노력해 식탁을 채워본 적도 없다.(아... 왠지 불량엄마 같다) 조촐한 가족 구성원의 식탁은 굳이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지 않아도 충분히 초라하고 때론 궁색 맞기까지 하다.
그날은 며칠 동안 이어진 비가 여전히 내리던 날이었고 강풍까지 가세해 몸과 마음이 추워져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절로 생각났다. 아... 아들도 국밥이 먹고 싶을 것 같은데, 가만, 지난 일요일 한국 슈퍼에서 사 온 순대 한 팩이 냉동칸에 고이 모셔져 있잖아, 그래, 오늘 저녁은 얼렁뚱땅 순댓국을 끓여야겠어.
밥 두 공기와 순댓국 두 그릇을 허겁지겁 후루룩 삼키는 아들은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남편은 열심히 숟가락질하는 아들을 보며 흐뭇해하면서도 좀 천천히 먹어라 연신 핀잔을 준다. 아빠의 핀잔에도 아랑곳 않고 두 그릇을 비워낸 아들은 그제야, 엄마 난 역시 국밥을 좋아하는 것 같아, 라며 배불리 먹여 준 것에 대한 소회를 대신한다.
평소라면 식사가 끝나고 바로 자리를 뜨며, 나 할 게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요, 하는데 그날 저녁처럼 만족스럽게 배를 채운 날은 엄마와 아빠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합류를 한다. 아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가족끼리 외식을 하거나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이루어진다.
식탁 위 대화는 어김없이 프랑스와 한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현황들이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시시각각 발생하고 변하는 두 나라의 여러 이슈와 문제점들은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하고 머리는 복잡하게 만든다. 프랑스도 최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극우세력들이 득세를 하는 모양새다. 프랑스는 현재 각계각층의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
아들도 자신의 의견을 풀어내다 불쑥, 나 어쩌면 결혼을 못 할지도 몰라, 물론 하고 싶지만, 고백 같은 말을 뱉어낸다. 하고 싶지만 못할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며 나와 남편은 동시에 불안을 애써 감추며 반문한다. 아니, 최저임금제로는 두 사람이 살기에 충분한 집을 얻기도 힘들 것 같고 그런 경제적 조건이면 누가 나랑 결혼하려고 할까 해서, 어쩌면 결혼을 못 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들은 어깨를 어색하게 들었다 내린다.
나와 남편은 아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전해 듣고는 동시에 침을 꼴깍 삼켰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 기초 교육을 받고 있는 아들이 한국의 청년들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적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지점에 수긍하며 뭔가 먹먹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프랑스에서도 엘리트주의가 만연하고 1등이 계층의 꼭대기에 가장 먼저 도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 너도 1등이 돼보는 것이 어떠니,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대신 남편과 나는, 네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면 그에 대한 보상은 언젠가 따를 것이며 그런 너를 알아봐 주는 이가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있을 거라고, 막연한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아들은 엷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 그러면 좋지, 그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