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아들에게

Feat.나쁜 남자

by 로라see

“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한대….”



지난 토요일 이른 저녁 시간 오랜만에 가족 모두 좋아하는 단골 우동집에서 바삭한 새우튀김에 국물 자작한 우동으로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이었다. 시계는 저녁 8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지만 썸머타임이 시작된 4월 초저녁 하늘은 노랗고 붉은빛으로 잔잔히 물결치고 있었다.


왠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귀가 부드러워져 무슨 얘기를 들어도 단박에 알아채고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18살 인생 아들도 입이 부드러워졌는지 평소 혼자 간직하고 있던 말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아주 고요하고 조금은 단호한 말투였다.


“ 나는 친구들이랑(남사친과 여사친을 통틀어) 같이 놀 때, 같이 밥을 먹을 때, 그냥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게 마음이 편해, 그런데, 그게 좀 걱정이야”


“ 뭐가 걱정이야??(난 아들이 무슨 말을 할지 너무 두려웠다) ”


“ 아니...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한대... 근데, 난 나쁜 남자가 아니잖아... 그냥 이래도 좋아 저래도 좋아, 그러는 남자니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속으로 웃었다) ”


18살 인생의 난제는 연애였다. 나는 이왕 입이 부드러워지고 귀가 부드러워진 김에 아들의 연애사를 조금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가 끝나지 않은 고딩 아들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몰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화를 풀어야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 누가 그래?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고? 남들처럼 연애하고 결혼한 여자인 엄마가 볼 때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야...! ”


“ 그럼,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데…?”


“ 여자들은(아마도 대부분, 어쩌면 모두 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일에 단호하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남자를 좋아하지…. 그러니까, 이런 남자의 처신이 공적으로는 얼핏 나쁜 남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적으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착한 남자의 전형이지…. 엄마 말 알아듣겠니?”


“ 아...어...(뭔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아주 낮은 음성), 근데, 난 아직 낭만적인 사랑이 좋아...”



그래... 낭만...사랑...음.....뭐라고?? 여기서 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18살이 말하는 낭만과 사랑이 뭔지 좀 더 알아야 하니까.



“ 그럼, 낭만 좋지~ 그리고 사랑은 낭만적이어야지... 그럼 그럼, 그렇고 말고, 그런데 네가 생각하는 낭만적 사랑이 뭐야? ”


“ 그냥, 좋은 거. 어른들이 얘기하는 능력이나, 조건 이런 것 말고... 그냥 보면 좋은 거...”


하...그래...맞다...그냥 보면 좋은 게 사랑이지...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그냥 보고 느낀 대로 사랑을 하고 싶다는 낭만적인 마음을 품고 있어서.(그래서 넌 지금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은 사랑이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난 꾹 참았다.) 그래 바로 그 마음에서 출발하면 된다.


그래도, 인생을 먼저 살아 본 선배로서 평범하게 연애하고 결혼한 이후의 생활은 지루함과 고단함 가끔 소소한 행복과 함께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의 연속이라는 걸 말해 주고 싶었다. 뭔가 심플하고 임팩트한 인상을 주면서 동시에 18살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만한.


“ 사랑은 분명 낭만적이어야겠지,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삶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현실에 아주 단단한 뿌리를 두고 있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낭만과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현실적인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해. ”


“ 엄마가 말하는 현실은 뭐야? ”


“ 매일 아침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오늘 저녁엔 어떤 맛난 음식을 먹을까 고민할 수 있는 삶, 그런 현실이 나의 사랑을, 낭만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아 ”


그리고 아들은 말이 없다.

짧은 시간 낭만과 사랑에 대한 단상들이 차 안의 온도를 높였는지 창문을 내리자 기분 좋은 시원한 밤공기가 훅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