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에 핀 꽃을 보고 생각한 것들

by 로라see

나는 벽으로 구성된 공간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지금도 내 삶의 대부분 시간을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보내고 있다. 그러니까 벽이 없는 공간에서 사는 내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잠자는 시간을 포함한 사적 영역과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적 영역에서도 벽은 언제나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태어난 이후로 줄곧 벽을 벗어나서 살아 본 적이 없다는 얘기를 꺼내는 걸로 보아 벽의 부정적인 면을 얘기하려나 보군…. 누군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고백하건대 벽이 있는 공간을 정말 좋아한다. 좋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벽으로 적절하게 분리되어 쓸모 있고 규모 있게 구획된 공간에 있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공간에 있으면 왠지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 정도이다. 비교적 넓은 공간이(사면 또는 삼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 어떤 구획도 없이 텅 비워진 상태라면 나는 한시도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장소에 잠시라도 있어야 한다면 나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상상하며 그 시간을 버텨낼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방식으로 말이다. 여기는 입구와 가까우니 외출 후 손을 씻거나 외출 전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기 편리하게 세면대가 있는 샤워실을 배치하면 좋겠고 그 옆으로는 샤워실과의 동선을 고려해 외출 전후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옷방으로 쓰면 되겠어. 옷방과 마주하는 위치는 장 본 것을 정리해두고 요리에 필요한 식자재를 정리해두는 팬트리 공간으로 쓰면 편리하겠어. 팬트리 옆으로는 자연스럽게 주방을 배치하면 좋을 듯하고 주방 맞은편으로는 식사하는 공간과 생활공간을 겸할 수 있는 거실로 사용하고...


텅 빈 공간 위로 내가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상상을 하는 순간만큼은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게 된다. 내가 원초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순간조차도 꽤 견딜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평소 충분히 만족하고 칭찬할 만한 구성으로 구획된 곳이라 평가하는 장소라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어느 순간 갑자기 지루하게 다가오고 여기저기 눈에 거슬리면서 머릿속으로는 나도 모르게 새로운 공간 분리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나는 평소 일상적 공간에서부터 특수한 목적을 위한 공간까지 다양한 공간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품어왔다.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그 공간 안에서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모든 그 총체가 늘 나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벽으로 구성된 다양한 형태의 공간은 그 다양한 형태만큼이나 다양한 감성을 품고 있으며 그 공간을 스쳐 가는 이들과 함께 공유된다. 사실 최근까지도 내가 왜 이토록 공간에 대한 집착에 가까울 만큼의 애정을 품는지 쉽게 설명할 수 없었고 그 애정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또한 잘 알지 못했다.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고 그 이전에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기존의 지식과 상식에 대해 재해석과 재설정을 하는 등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에서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벽 le mur에 대한 것도 있다. 벽은 평화로운 일상에서는 그저 우리의 삶을 여러 자연환경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단순한 물리적 장치에 가까웠다. 물론 코로나 시대라고 해서 보호장치로서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외출이 금지되는 등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고 보니 벽이 보호장치로 보이기보다 벗어나고 싶은 구속장치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할까.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올봄에 동네 산책을 하면서 예년에 느끼지 못한 여러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에서 출발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산책길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파릇파릇 새순도 보고 여리고 수줍은 봄꽃도 보고 씩씩한 담쟁이넝쿨이 길쭉길쭉 가지를 뻗어 힘차게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것도 보았다. 사계절 동안 계절마다 꽃이 다르게 핀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겨우 이삼 개월 가량의 짧은 봄 동안에도 시기별로 다른 꽃이 피고 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참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자연 현상이 나에게만 우리 인간에게만 절대적이고 때론 가혹하다 여겨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어리석은 민낯으로 여리고 고운 새순과 꽃잎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렇게 찬란한 봄이 끝나갈 즈음 매일 똑같은 산책길을 걷던 어느 날 어느 집 담벼락 사이로 여러 무리를 지어 화사하게 피어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봄꽃을 마주했다. 수줍은 소녀 같은 얼굴의 옅은 보랏빛 봄꽃이 낡은 담벼락을 뚫고서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시멘트와 돌을 섞어 둘러친 담벼락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손보지 않았을 담벼락을 가까이서 꼼꼼히 살펴보니 멀리서 보이지 않는 균열과 빈틈들이 보였다. 그 균열과 빈틈 사이로 보랏빛 소녀 같은 봄꽃들이 말간 얼굴을 내밀고 어리석은 행인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그 순간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낸 균열과 빈틈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제야 공간을 구성하고 구획하고 구분 짓는 벽에 대해 내가 부여하는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소통’이었다. 나 자신을 위한 생활 속 편리한 동선, 내가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크기의 창, 상대가 나에게 선뜻 다가올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형태와 디자인의 파사드.


목젖을 울려서 소리 내지 않아도 우리는 머릿속으로 떠올린 생각들을 벽이라는 물리적 장치를 이용해 표현하고 있었다. 거기에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시간이라는 에너지가 더해지면 어느 봄날 담벼락 사이로 수줍은 봄꽃과 불쑥 마주하는 신기한 경험도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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