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북반구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반대편 남반구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오는 귀중한 휴가 기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주말 포함 1주일 남짓이거나 어쩌면 그 누군가에게는 그 이상의 시간이 주어질지도 모르겠다. 새해가 시작되고 반년 넘게 쉼 없이 달리다 보면 그 해 중반부를 살짝 넘어서는 8월로 어느새 훌쩍 들어선다.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로 말하자면 대략 7-8월에 걸쳐 누리는 여름 바캉스를 위해서 일 년을 버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는 것에 진심인 나라이다. 뭐 그렇다고 그들이 여름에만 논다는 것은 아니고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과 2월 스키 시즌 그리고 4월 부활 방학까지 아주 빈틈없이 놀고 듬성듬성 일을 한다(프랑스의 생산성이나 배짱이 같은 행태를 비판하는 자리는 아니니 여기서 그만하겠다).
올여름은 예년과 다르게 휴가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았다. 아이가 프랑스 대학 입시를 치르고 최종 진학 결정이 마무리되는 시기가 대략 7월 중순이고 그 이후 아이 혼자서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동안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무계획으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샤를드골 공항에서 아이를 한국행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 꽤나 쓸쓸했다. 뒷좌석에 아이가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괜스레 차가 더 크게 느껴졌다. 습관처럼 틀어놓은 라디오 클래식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현악기 연주음이 거칠게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남편과 둘만 있는 차 안의 공기는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축축하고 습한 바깥공기와 다르게 바스락바스락 삭막하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평소와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또 비슷한 시간에 아침 산책을 나섰다. 대체로 여름에 고온 건조한 프랑스 날씨가 올여름에는 이상기후 탓인지 저온다습 현상이 심각했다. 7월 중순부터 2주 연속 20도 이하 온도에 장마 같은 비가 계속 내리는 통에 살짝 우울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나마 아침 루틴으로 자리 잡은 아침 산책 덕분에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한다. 그날도 아침 산책 코스 마지막 지점인 살짝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중이었다. 조용한 골목길을 으쌰으쌰 정신없이 오르는데 뭔가 모를 존재감이 시야를 흐리게 한다. 앗, 골목길 끝자락 주택가 앞에 회색빛깔 고양이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리나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클릭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냥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고요한 아침 산책을 너와 마무리 할 수 있어 행복했어!
아이 없이 보내는 여름 방학의 좋은 점을 발견했다. 냉장고를 쉴 틈 없이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냉파식 밥상으로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여유롭다. 냉동고 구석에서 찾은 꽁꽁 얼린 도미 한 마리를 실온에서 천천히 녹여 오븐에서 바싹 구워 먹은 날이었다. 오랜만에 생선 구이를 맛있게 먹었지만 집안은 온통 생선 비린내가 진동한다. 이럴 때는 인센스를 피운다. 종이식 인센스에 불을 피우고 종이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본다. 연기로 사라지는 향을 눈으로 쫓아간다. 그 순간만큼은 여느 휴양지 방갈로나 샬레 숙소가 부럽지 않다.
인센스가 한 줌의 재로 바뀌면 주방과 거실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 집안과 밖의 공기가 서로 통할 수 있도록 잠시 그대로 둔다. 그리곤 커피를 내린다. 남편과 내가 마실 딱 두 잔만큼의 원두를 수동 블라인더에 넣어 천천히 갈아준다. 이번에 주문한 원두가 상당히 부드러워 남편의 얄팍한 근육에 의지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내가 직접 원두를 갈고 내린 커피는 특별하다. 또르륵 또르륵 방울방울 내려지는 커피 소리도 청명하다.
그래 바캉스 별거 없네. 멀리 비행기 타고 가는 바캉스가 아니라면 호캉스라도 즐겨야 한다는데 나는 이렇게 조금은 심심하고 단조로운 홈캉스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