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혼과 출산을 동시에 경험했다
출산 예정일을 1주일 앞두고 마지막 정기검진이 있는 날 상하이에서 근무 중이던 남편이 출산 휴가를 내고 친정집이 있는 부산으로 오기로 했다. 나는 그해 봄 결혼을 하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상하이에서 신혼 생활을 하다 출산 예정일을 두어 달 남기고 출산 준비를 위해 여름이 끝나가는 무렵부터 친정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새벽 3시쯤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은 느낌에 눈을 떴다. 그 후로 해가 뜰 때까지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거렸지만 막상 느낌만 있을 뿐 시원하게 용변을 보지 못했다. 남편은 점심시간이 지나 친정집에 도착했고 곧바로 정기검진을 위해 함께 병원을 갔다. 한국에서 남편과 정기검진을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병원으로 가면서 남편은, 검진 마치고 해운대로 드라이브 가서 전망 좋은 카페에서 커피라도 마실까, 다음 주에 출산을 앞두고 있는 만삭인 아내의 기분을 살폈다. 나도 오랜만에 만난 남편이 배는 산만하고 손발이 퉁퉁 부어 뒤뚱거리는 오리 같은 아내와 데이트를 가자는 말에 새벽부터 계속 화장실 가고 싶은 느낌도 잊어버리고 해사해졌다.
오후 4시쯤 담당의사와 먼저 초음파를 보고 질 분비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8센티가량 열려 있네요, 전혀 진통을 못 느끼셨나요? 지금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셔야 할 것 같아요, 출산 예정일이 다음 주 아니였나요?
네?? 남편과 나는 8센티가량 열렸다는 말도, 위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남편은 눈치도 없이, 위층으로 가기 전에 저희 잠깐 외출하고 와도 될까요, 순진한 눈빛으로 의사에게 물었다. 아내랑 해운대로 드라이브 다녀올까 하는데요...
그 순간 담당의사는, 뭐 이런 정신 나간 예비 아빠가 다 있나, 하는 눈빛을 애써 숨기며 냉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지금 아기가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요, 우리도 지금 아기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요! 지금 당장 올라가셔야 해요, 그리고 남편은 댁에 가서 입원 준비물을 챙겨 오세요.
네?? 아기가 나오려고 한다고요....?
마지막 정기검진만 받고 드라이브 갈 거라고 핸드백 달랑 들고 병원에 온 나와 병원에 입원할 때 챙겨 와야 하는 출산 준비용품이 들어 있는 캐리어를 집에 가서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에 낙담한 남편은 왠지 풀이 죽어버렸다. 지금 아기가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데 나와 남편은 아기를 만날 준비를 미쳐 끝내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당분간 둘이서만 하는 홀가분한 데이트는 힘들겠구나 싶은 심정이었을까. 그제야 새벽에 화장실 가고 싶은 느낌이 진통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내가 통증에 둔감한 건지 미련하게 잘 참는 편인 건지 어느 쪽이건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내가 미리 싸 둔 입원 물품이 들어있는 조그만 캐리어 가방을 가지러 집으로 가고 나는 분만실이 있는 위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진료실이 있는 아래층과 분만실이 있는 위층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중간중간 호흡이 끊어지고 이어지고를 반복하며 터져 나오는 다양한 톤과 높이의 소리들이 공기 대신 채워지고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들 사이에 설레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한 손에는 캐리어를 들고 바삐 지나가는 남자,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싱글벙글한 표정의 남자,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초초하게 분만실로 들어가는 남자들이 마치 종이 인형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분만실이 있는 위층은 현실과 초현실 세계가 만나는 경계지점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간호사의 일사불란한 인도하에 수술복으로 환복하고 관장을 하고 척추에 무통분만 유도 주사를 맞는 현실 세계에서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초현실 세계로 들어갔다.
얼마 후 남편은 설레고 두려운 표정으로 아이의 탯줄을 가위로 잘랐다. 남편이 길게 날이 선 번쩍이는 가위로 탯줄을 자르는 순간 아무런 통증도 없이 나의 일부였던 핏덩어리가 세상으로 분리되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묵직한 체증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헛헛하면서 동시에 날아갈 듯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간호사가 톡톡 찰지게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를 내자 으아앙 조금은 가냘프고 신경질적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현재 시각 저녁 8시 45분 ㅇㅇㅇ님 아들을 출산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간호사의 공식적인 기록이 우리를 현실 세계로 다시 불러들였다.
사실 난 상하이에서 출산을 할 생각이었다. 남편이 그 당시 상하이에서 근무하면서 동시에 아시아 여러 나라로 출장도 다니는 등 무척 바쁘게 일하던 때라 출산 휴가를 내기도 힘들어 보였고, 상하이도 사람 사는 곳인데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는 도저히 불안해서 안 되겠다며 친정이 있는 부산에 가서 출산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어떻게든 출산 예정일에 맞춰 휴가를 내어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러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래도 내가 상하이에서 출산을 경험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얘기하자, 넌 어쩜 그렇게 겁도 없냐며, 아무리 중국에서도 그나마 대도시에 속하는 상하이지만 한국만 할 수 없다며, 다시 완강하게 친정에 가서 출산할 것을 권유했다.
상하이에서 지낼 때 정기 검진을 간 건 두 번 정도였고 사실 정기 검진이라고 해봐야 초음파로 뱃속의 아이가 심장이 잘 뛰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 정도와 출산 예정일이 10월 말에서 11월 초쯤일 거라는 정도가 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선택을 했어도 그리 크게 후회하거나 문제 될 것이 없었을 것 같으나 결국 친정집에 머물며 출산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상하이 병원에서 알려준 출산 예정일과 한국에서 출산한 병원에서 알려 준 출산 예정일에는 오차가 있었다. 출산 병원에서 알려준 예정일을 기준으로 앞뒤로 5일의 여유를 두고 남편이 총열흘의 출산 휴가를 받아서 온 첫날 예고도 없이 아이는 세상으로 나왔다.
덕분에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을 가슴에 가득 품고 아슬아슬한 기분에 사로잡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우울하다 나아졌다를 반복하던 중 남편에게 오붓하게 해운대로 드라이브 다녀오자는 달콤한 데이트 신청을 받고 설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꽤나 운 좋게 아빠의 손길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아이는 지금 고등학생이 되었고 남편과 분위기 좋은 곳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셔도 예전처럼 마냥 기분 좋고 설레지만은 않을 때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 가자고 하던 그날의 남편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