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법시험 공부할래

한 번만 도와주면 평생 잘할게

by 로라see

생후 3개월 된 아들을 포대기에 싸서 서울에 들어온 지 반년이 지났을 때다. 프랑스 중소기업의 상하이 지점 대표로 근무하던 남편은 프랑스 본사로부터 상하이 지점을 정리하고 본사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고 스스로 본인의 한국행 발령을 내며 사표를 던졌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인맥도 없고 자산이라고는 1도 없는 남편은 나름 안정적이고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회사를 버리고 맨땅에 헤딩을 하기로 결정을 한다. 그리고 서울에 들어온 뒤 여러 헤드헌터를 만나 정말 헤딩만 하며 6개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젖먹이 아이를 눕혀 놓고는 비장한 말투로 뜬구름 잡는 얘기를 꺼냈다.


나 사법시험 공부해야겠어, 원래 유학 가기 전에 사법시험을 준비해볼까 잠깐 고민도 했었는데,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도전해 봐야겠어, 내가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하는 얼굴로 쳐다보니 조금은 부끄럽다는 듯이,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평생 잘할게, 프러포즈도 못 받아보고 결혼한 내속을 뒤집고 분통 터지게 하는 말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결혼하기 전에도 들어보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들어보지 못한, 평생 잘할게, 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어 보았다.


프랑스 회사를 꼬박 3년 다니고 퇴사하며 받은 퇴직금은 동작구 상도동 어느 언덕배기 13평 빌라 전월세 보증금과 생활비에 쓰이고 이미 바닥이 드러난 시점이었다. 당장 아이의 분유값과 기저귀 값을 고민하고 월세를 밀리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절박한 시기에 남편은 기약 없는 사법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꾸다니.


난 너무 어이가 없어 곧바로 흥분하고 길길이 뛰며, 이럴 거면 당장 이혼해, 더 이상 당신이랑 못 살아, 나중에 잘한다는 말 하지 말고 지금부터 잘할 생각을 해, 등의 말은 한마디도 못 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직 돌도 안 된 아이의 어두운 앞날과 이 아이를 보호할 사람이 정녕 나 밖에 없는 건가, 두려움과 외로움에 치가 떨렸다.


남편은 누가 자신의 앞길을 대신 판단하거나 간섭하고 방해하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밝힌 포부는 제안이나 의견이 아니라 통보였던 것이다.


나는 위급한 상황을 마주할 때 오히려 이성에 의지해 판단하고 냉정하게 행동하는 편이다. 코로 크게 들이마신 숨을 다시 코로 천천히 뱉어내며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래 우선 알겠고 사법시험 준비가 정말 옳은 결정인지 잘 생각해봐, 최대한 예의를 갖춰 응수하며 한 발 물러나 상황 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광속구를 던지듯 통보한 남편은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서초동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출근하듯 갔다 퇴근하듯 돌아오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해보더니, 아무래도 고시원에 들어가야겠어, 또 통보한다.


그래, 당신이 고시원 간다면 가는 거지, 언제까지 하는지 두고 볼 요량으로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신림동 고시원으로 출근하고 집으로 퇴근하며 공부 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남편이 사법 시험공부를 그만두겠다고 또 통보한다.


왜 마음이 바뀌었어, 나중에 후회하기 싫어서 도전해 보는 거라며, 시큰둥하게 물어보니, 아니 곧 아이가 돌인데, 내가 벌어 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 있는 부모님이 계셔서 도와달라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면서 내가 좀 무모하긴 했어, 힘없이 대답한다.


나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이 통보할 때는 남편이 너무 밉고 원망스러웠는데 막상 맥없이 포기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내가 오를 수 없는 높이의 벽으로 가로막혀있다. 결국 인생은 그 벽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지 선택하고 포기하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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