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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Feb 16. 2024

푸아그라가 빵 세 조각이야?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기면서도, 혼자 무언가를 잘 하진 못한다. 그나마 혼자 할 수 있는 게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영화관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고, 하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거나 낙서를 하거나 일을 하는 거다. 영화를 혼자 보는 것도 그 시작은 정말 어려웠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인디영화나 예술영화 계열이라 주변사람들을 설득하며 함께 보러 가자고 하는 것이 너무 번거롭고 눈치 보였다. 나의 커피 취향도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탓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부분도 있다.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 갔던 날, 1시간 걸리는 다른 지역으로 갔다. 혹여나 아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의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영화 시작 직전에 들어가서 끝나고 제일 먼저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물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커피를 혼자 마시러 갔던 날은 책이며 노트북이며 챙겨갔던 것 같다. 뭔가 바쁜 사람처럼, 엄청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신경을 썼다. 물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내가 혼자 여행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들을 대체로 잘 해냈다.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랬던 것이기도 하지만, 혼자 일어나서 혼자 밥 먹고, 혼자 미술관 가고,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돌아와 잠드는 것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혼자이기에 사색도 즐기고 떠오르는 영감들도 충분히 받아 안는 만족감이 있지만, 혼자여서 외롭고 쓸쓸할 때도 많다. 특히나 프랑스 정찬을 먹어보고 싶은 나의 욕구를 채우기 어려웠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식사들로만 끼니를 때우는 게 아쉬웠다.  


  프랑스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푸아그라를 먹어보는 건데, 푸아그라는 웬만하면 정형화된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보니 영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니콜라가 정말 맛있는 푸아그라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안다며, 괜찮다면 같이 가 주겠다고 해서 니콜라와 약속을 잡았다. 니콜라는 마레지구로 오라고 했다. 가족외식장소로 즐겨오는 곳인데, 할머니 때부터 오던 곳이라며 기대치를 올렸다, 나는 한껏 기대하며 나의 옷차람이 그 레스토랑에 적절한지 니콜라에게 물었다.


  마레지구의 예쁜 가게들 속에서 예쁜 모습의 식당이긴 했지만, 어딘가 실망스러웠다프랑스 정찬을 즐길만한 우아하고 품격 있는 느낌의 레스토랑을 기대했는데 가볍고 편한 느낌의 펍이나 카페 같은 느낌이었다. 니콜라는 내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저를 믿어보세요." 안에 들어서니 분위기는 좋았다. 반신반의하며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받았다. 나는 메인메뉴를 먼저 살폈다. 온통 프랑스어로 쓰여있었지만 '푸아그라'로 읽힐만한 메뉴를 찾으려고 눈으로 훑고 있었다. 


  니콜라는 역시 세심하다. 산만한 나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손가락으로 메뉴 하나를 짚어준다. "앙트레는 푸아그라로 드실 거죠? 식사는 뭘로 하시겠어요?"  "네. 전 푸아그라요." 니콜라는 난감한 눈빛으로 음.. 하며 말의 시동을 걸더니, 푸아그라는 애피타이저니까 메인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그리고 오리 스테이크를 추천했다. "네? 푸아그라가 애피타이저라고요?" "프랑스 사람들은 푸아그라를 먹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어요. 메인 메뉴로 먹는 것에 대해서는 혐오하는 분위기예요."


  나도 주워들은 말들은 있다. 프랑스의 푸아그라나 우리나라의 보신탕이 동물학대를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누군가 보신탕을 먹는다고 하면 으~~ 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푸아그라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생각도 그런가 보다. 먹지 말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니콜라는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외국인이 프랑스에 와서 푸아그라를 먹어보고 싶은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니, 아무도 너를 혐오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푸딩 사이즈의 한 입 크기의 음식이 스테이크 느낌으로 담겨올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앗! "니콜라, 저는 푸아그라를 주문했어요." 자신의 애피타이저 샐러드를 포크로 찍으며 말했다. "그게 푸아그라예요." "네? 빵 세 조각이요?" "아니 이거요!" 니콜라는 빵 옆에 조그만 소스접시를 가리켰다. "네??" 뭔가 바사삭 깨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푸아그라라고? 이건 소스잖아. "일단 먹어보세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요. 의외로 호불호가 강하거든요."


  바게트 세 조각이면 이미 배가 부를 것 같은데 이게 애피타이저라는 것도 너무 싫고, 게다가 그토록 기대했던 푸아그라가 간장종지에 담긴 소스 나부랭이라니,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샐러드나 시킬걸. 빵을 먹고 스테이크를 또 먹어야 하다니. "니콜라도 빵 한쪽 드세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저는 푸아그라를 먹지 않아요." 꿈에 그리던 푸아그라를 먹는 일이 뭔가 벌칙 받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시무룩한 기분을 누르고 잘 구워진 빵에다 푸아그라를 발랐다. 


관련 이미지로 핀터레스트에서 퍼옴

  빵은 그냥 오븐에 바삭하게 구운 느낌이고, 빵에 바르는 질감은 크림치즈 느낌이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한입 베어 물었다. 버터의 질감과 향이 풍겼다. 혀에 부드럽게 감기는 느낌이 좋았다. 혀를 살살 휘감아 입안을 장악하는 느낌이랄까? 한 조각을 더 집어 들었다. 좀 더 과감히 푸아그라를 발랐다확 치는 강렬함은 없지만 깊고 진한 풍미가 좋았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이 느낌 뭐지? 안달이 났다. 마지막 한 조각. 이게 마지막이라니. 니콜라는 나의 반응을 재밌어했다.


  맞다. 세계 3대 진미였지? 푸아그라는? 사실 3대 진미라는 게 근거가 없단 말도 있다. 그저 허세로운 느낌으로 근거 없이 퍼진 말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푸아그라가 정말 특별한 음식임에 분명하다. 푸아그라는 프랑스 마트에서 살 수도 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땐 그랬다. 잼이나 크림치즈처럼 포장된 푸아그라를 한국 올 때 챙겨 왔다. 그런데 그 맛이 아니었다. 풍미도 내가 아는 그게 아니었. 거기에서 사 올걸. 따로 판매하는지 물어볼걸. 


  검색해 보니 "LE PETIT MARCHÉ"는 우리나라에서도 소문난 맛집이 되어 있고, 푸아그라는 더 이상 팔지 않았다. 가격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10년 전 거기서 50유로를 썼는데, 지금도 애피타이저에 디저트까지 그 정도 가격이면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다시 파리를 간다면 꼭 들러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10년이나 지나버려 메인 요리로 먹은 오리스테이크의 맛이 기억도 안 나고, 디저트는 뭘 먹었는지도 기억에 없고, 푸아그라는 이제 팔지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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