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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n 16. 2018

술독에 빠진 화가...

예술사 에세이

예나 지금이나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많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 영국의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온 많은 아일랜드 노동자들은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아니, 지나치게 마셨다. 지금은 낡아버린 영국 각지의 거미줄 철도를 깐 사람들은 영국인이 아니라 아일랜드 노동자들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듯 당시 조그맣고 가난한 나라 아일랜드 남자들은 가족을 아일랜드에 두고 산업화된 영국의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아서 몰려 들었다.그들의 노동은 영국의 부에 큰 힘을 보탰다. 맨체스터로 리버풀로, 버밍햄으로 런던으로, 그렇게 그들은 몰려왔고 영국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가족과 떨어져 외지 생활을 하는 그리고 낮엔 힘든 노동을 해야하는 그들에겐 저녁마다 고향 아일랜드 사람들과 삼삼오오 펍에 모여 술마시는게 그들만의 ‘낙’이었다. 달달이 송금하는 힘든 노동의 댓가로 아일랜드 가족들이 그나마 생활을 영위함에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며 또 그리운 가족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타향에서 술잔도 한잔 두잔 비워냈을 것이다. 그러다 술에 취하면 구성진 아일랜드 민요도 흥얼거렸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힘든 외지 생활을 이겨냈다. 그래서 지금도 아일랜드인이라면 술주정뱅이라는 이미지를 영국인들은 갖고 있다. 그리고 자연히 술이 사람들을 망쳐놓은 경우도 많았다. 술중독이 되면 정든 가족에게 부치던 돈도 술값으로 들어가 줄어들었고 서서히 외지에서 폐인으로 되어갔던 사람들도 있었다.


술에 빠져 세상을 잊고 삶의 무게를 잠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19세기 후반기 프랑스에서도 많았다. 그래서 술마시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명화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빛의 도시 파리의 화가들은 독한 술 ‘압생트(Absinthe)’ 마시는 모습을 자주 화폭에 담았다. 연한 녹색으로 어찌보면 쥬스 색깔같기도 한 이 압생트는 주도가 45도에서 70도로 다양했다 한다. 아마 압생트 그림으론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드가(Degas)’의 압생트 마시는 남녀 그림이 가장 잘 알려진 경우일 것이다. 멍청한 모습으로 작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앉아있는 남녀 그림말이다.


‘쟝-프랑소와 라파엘리(Jean-François RAFFAËLLI)’의 1881년 그림 ‘압생트 마시는 사람들(the Absinth Drinkers. Les buveurs d'absinthe)’도 드가의 그림처럼 압생트 마시는 사람들이 주제이다. 그의 대표적 그림 중 하나이며 일반에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지금은 화가의 이름도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당시 19세기 후반기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풍이 휩쓸었던 파리의 화단에 사실주의(Realism) 화가로 ‘제 6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이 작품은 전시되었다. 당시 사실주의 화가의 작품이 인상주의 전에 전시된다는 사실로 기분이 썩 좋지않은 화가들도 있었다. ‘모네’는 그의 출품을 보고 이 전시회는 ‘미장이라면 누구나 다 전시하는 모양이군’ 하며 투덜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압생트 마시는 장면을 약 5년전에 그렸던 드가(Degas)는 기꺼이 라파엘리를 이 전시회에 초대하였다.


인상주의 전시회에 전시된 이 사실주의 작품은 당시 전시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그림이 보여주는 독한 술 압생트가 가져오는 중독가능성과 그 독한 술이 가져 올 파괴적인 영향을 이 그림이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파리 시민들도 이를 잘 알았다. 이 독한 술 압생트에는 튜존(thujone)이라는 테르펜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은 연한 녹색 술에 독특한 향취를 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술은 뇌세포를 파괴하고 환각 상태도 유발한다고도 알려졌다. 압생트를 정기적으로 마심으로 중독된 상태를 ‘압상티즘(absinthism)’이라 한다니 이 술의 영향을 쉽게 알수있다. 이 정도 상태가 되면 중독자는 사고력 저하로 멍청해지거나 신경과민, 또는 환각 경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위의 라파엘리의 그림 안 두 남자들도 이런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라파엘리가 세밀하게 파리 외곽의 소외된 계층을 관찰했는지도 이 그림으로 간접적으로 알수 있다. 이 압생트는 또 몽마르뜨의 화가였던 툴루즈 로트렉과 빈센트 반 고흐도 즐겨 마셨다고 한다. 시인과 예술가들이 이 술을 마신것은 이 독한 술을 마시면 창조력이 솟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일까? 그러나 너무 도수가 높고 피해도 많아 이 술은 제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오랫동안 유럽에서 금지되었다가 다시 1980년대 초반에 제조가 허가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이 그림을 그린 라파엘리는 이 독한 술이 당시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또한 그로인한 피해를 잘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것은 그가 근대도시 파리의 외곽지역 변두리의 산업화로 인한 소외된 지역사람들에 관심을 갖고 이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화려한 파리 중심에서 벗어나 우울하고 비관적인 변두리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았고 당연히 세계의 유행을 이끌던 파리보다 세련되진 못했지만 정감이 가는 풍경과 그 속의 사람들을 화폭에 담았다. 라파엘리란 그의 성에서 알수있듯 그의 할아버지 대에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이주민의 가정에서 자란 그는 처음엔 프랑스의 시골이자 영국쪽 지방인 ‘브레통’ 지역을 그리다가 파리의 변두리 지역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알콜중독자들과 가난한 넝마주의자들을 사실감있게 그렸고 또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느슨하지만 인상주의의 화가들과의 교류도 있었고 또 그 영향도 보이지만 사실주의 선구자인 쿠르베의 사실적인 표현방식을 더많이 볼수있다. 화풍의 경계를 넘어 살롱전(Salon)전과 인상주의전 양쪽 다 전시했던 그는 또 행운아였다.


‘드가’의 압생트 그림속 두 남녀가 대화없이 앉아있듯 이 그림속의 두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림 속엔 침묵만이 흐른다. 그 침묵이 드가의 그림에선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이 그림에선 그렇지 않다. 이 두 인물은 서로 마주 앉아 있지만 술에 취해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 이 침묵전에 그들은 의미없는 말을 계속했거나 아니면 삶의 고충을 서로에게 털어 놓았는지 모른다. 오른쪽 남자 옆의 빈 의자 둘은 아직도 파리 시내 카페에서 종종 보이는 그런 의자다. 빈 의자처럼 비어있는 두 인물 사이의 공간은 다시 그들의 소외를 말해주며 이 소외는 술의 힘에 의해 극복하고자 하는 나약함을 보여준다. 독한 술 압생트는 알콜의 본성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쾌락’과 ‘피폐’를 동시에  가져다 주는 것이다. 두 어깨에 무겁게 드리워진 삶의 짐을 잠시 내려 쉬려다 피폐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는 파괴적인 술이다. 그리고 중독은 단절을 가져온다. 그 단절은 바로 앞자리 사람과의 단절이 될 수도 있고 몸담고 있는 사회와의 단절이 될 수도 있다. 이 단절은 그리 멀지 않은 중심에 접근못하는 변두리의 소외이자 단절이다. 그래서 이 단절을 경험한 오래전의 많은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이 그림을 보며 떠올랐다. 영국이란 외지에서 힘들게 살아가며 술의 힘에 의해 연결을 꿰했지만 결국 가족과도 단절됐던 이들이 자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또 영국으로부터 부쳐지던 돈이 단절되었던 아일랜드의 가족들은 그 뒤 어떻게 살았을까? 이 그림의 왼쪽 위에 어렴풋이 보이는 철도로 상징되는 산업화와 기계화는 이렇게 사람들의 단절을 가져왔다고 라파엘리는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디지털 정보화 시대는 또 어떤 사람사이의 단절을 가져올까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독한 압생트처럼 이 디지털 정보화 시대도 강한 중독성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 ‘압생트 마시는 사람들(The Absinth Drinkers. Les buveurs d'absinthe)’ by 쟝-프랑소와 라파엘리(Jean-François RAFFAËLLI). 1881.

Oil on canvas, 110 x 110 cm. Private collection.


*아래 그림: 'L'Absinthe' by Edgar Degas. 1875–76.

Medium Oil on canvas. Dimensions 92 cm × 68 cm (36.2 in × 26.8 in). Musée d'Orsay,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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