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체 게바라'를 부활시켰다.
쿠바 여행 에세이 8-쿠바 여행을 마치고
쿠바를 여행하면서 다른 라틴 아메리카와 얼핏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슷한 점은 아무래도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개방적 성격이라는 것이다. 여기가 정말 공산주의 국가인가(물론 옛날에는 달랐겠지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쿠바는 자유로왔다. 다르다면 세계 곳곳에 보이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여기선 잘 볼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쿠바는 우리식으로 보면 그저 가난이 도처에 보인다. 하바나의 역사적인 해안가의 건물들도 곧 보수를 필요로하는 옛 건물들로 즐비했다. 한 거리만 안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더 심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정해져 도움을 받지만 다시 복원과 보수를 하기엔 천문학적 돈이 들어간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이곳이 정말 한 나라의 수도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관광지를 뺀 나머지 시가지는 낡고 시대에 뒤떨어졌다. 즉, 1961년부터 최근까지 받은 경제 제재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수 있었다. 미국의 경제 제재를 그것도 거의 반세기를 받았다면, 이 세상 어느 나라가 온전히 살아남으랴? 다행히 최근에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사정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짧은 여행 중에도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누구하나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가진 쿠바인을 못봤다(물론 만난 쿠바인은 소수고 제한된 그리고 영어하는 사람들인 호텔과 관광지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반감의 역사를 증명하듯 어느 도시에도 스타벅스나 맥도날드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이상했지만 의미심장했다. 은연중에 ‘항미’를 하는 것인가? 이런 면에서 쿠바는 세계에 몇 안되고, 아마도 북한과 비슷할 것이다. 심지어 호텔이나 레스토랑에도 흔한 코카콜라나 펩시도 없었다. 대신에 ‘쿠바 콜라’가 자리하고 잡고 있었다. 맛은 다른걸 못 느꼈다.
화폐도 두 종류나 되었다. 하나는 달러에 고정된 환율(그러니까 달러와 마찬가지)인 CUC가 있었고 외국인은 이 돈만 사용하도록 허락됐다. ‘유로(Euro)’도 많이 쓰였다. 그리고 쿠바인들만 사용하는 그들만의 화폐는 따로 있었다. 복잡했다.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방편이었다. 이해가 되었다.
또다시, 이 세상에서 몇십년(1961년부터 최근까지)을 미국의 경제 제재를 혹독하게 받고 살아남는 나라가 과연 있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았다. 그나마 돈줄이었던 소련 붕괴후엔 경제난이 더 극심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흔적’은 하바나 시내 곳곳에 있었다. 그 흔적은 60년대 미국차들이었고 거리를 생생 달리고 있어서 꼭 6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듯 했다. 60년대 차 부품을 자신들이 그대로 만들어 사용중이며 가끔 미국에서 60년대 차를 '빈티지 카(vintage car)'로 콜렉션하는 사람들에겐 이곳이 천국이라고 했다. 하바나 관광지에선 특별히 이 60년대 차들이 하나의 관광 상품화되어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특별 택시 구실도 하며 인기 최고라고 한다.
앞서 말했듯이 코카 콜라나 펩시,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매장이 없는 거리는 뭔가 이상했다. 우리가 너무 자본주의에 노출되어 있어서인 모양이다. 더구나 세계 어디에고 있는 자본주의의 꽃인 다국적 기업의 광고판을 거리나 도로상에서 본 일이 없다. 대신에 ‘체 게바라’의 초상이 이런 광고판을 대체해 곳곳에 서있었다. 밤마다 그의 얼굴은 하바나의 ‘혁명광장’ 네온사인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이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미사를 하셨다. 체 게바라가 떡하니 내려다 보는 그곳에서 말이다. 쿠바 어디에고 체 게바라는 꼭 ‘조오지 오웰’의 ‘빅 브라더’처럼 그렇게 우리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를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항상 똑 같은 체 게바라의 얼굴이 보였다. 냉장고 마그네틱에서, 티셔츠에서, 길거리 리어카 위 헌책들도 체 게바라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 체 게바라를 자기집으로 가져가길 원했다. 그렇게 쿠바의 어디에든 거기에 체 게바라는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공산체제 속에 사는 쿠바인들 가슴에도 체 게바라는 뚜렷이 각인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저마다 그 체 게바라를 사고 싶어했다. 그는 혁명의 투사에서 이제는 철저히 자본주의 상품화되어 쿠바 어디에도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산타 클라라에 묻힌 체 게바라가 자신이 저주해 투쟁한 그 자본주의에 이제 자기 자신이 상품화되어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상황을 안다면 도대체 어떤 표정일까 궁금했다.
+짦은 순례였지만 쿠바에 대한 인상을 바꾼 시간이었다. 특히 쿠바인들의 친절함과 미소는 잊혀지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 특히 좋지 않은 조건속에서도 불평않고 미소로 일관하던 쿠바인들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얼굴에 겹쳐 북한 동포들의 피골이 상접한 얼굴이 떠오르는 곳은 너무 감상적일까. 먼지나는 시골 도로를 말을 끌고 가던 할배들, 호텔에서 미소띄며 우리 일행의 짐을 도와주던 직원들, 공항에서 왔다갔다하며 도와주려던 직원들, 호텔 바에서 또 거리에서 흥겨운 쿠바 음악을 연주하던 사람들, 미사를 드린 성당 곳곳에서 만난 사크리스탄과 신부님들, 아, 그리고 그 ‘난닝구’만 걸친 하바나의 그 편안한 인상의 신부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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