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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n 12. 2017

동남아 크루즈 여행에 낭만은 없더라...

동남아 여행 에세이

산같은 거대한 크루즈 선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놀라서 도망을 갔다.


타이타닉을 떠올렸다. 침몰은 기억안하려 했다. 영화장면들도 속속 떠올랐다. 갑판위 뽀족하게 세모진 앞 모퉁이에 서서 대서양을 향해 두 팔을 번쩍 올리던 케이트, 그리고 뒤에서 늠름하게 잡아주던 리어나도의 명장면도 떠올랐다. 내 생전 처음 경험하는 크루즈 여행이었기에 기대도 컸다. 비록 여유로운 몇 주가 아닌 4박5일뿐이란게 아쉬웠다. 일행중 많은 할매 할배들은 크루즈 여행을 몇번이나 해본 베테랑들이었다. 캐나다에서 알라스카까지, 영국 사우샘프톤에서 노르웨이의 깊은 협곡까지, 그리고 크루즈 여행의 대명사격이며 가장 보편적인 마이애미에서 카리브해의 점점이 섬까지... 크루즈 여행은 은퇴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래서 벌써 은근히 은퇴 후의 삶도 그려봤다. 크루즈 베테랑들은 산같이 큰, 배안의 엄청난 시설들도 빼놓지 않고 얘기했다. 영화관, 수영장, 레스토랑... 갑자기 영화 타이타닉의 레스토랑 천장에서 흔들리던 샹들리에가 번쩍번쩍거렸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크루즈 항에 코치가 들어가 우리를 떨구어 놓자마자 낭만적인 크루즈 여행의 상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슨 거대한 부두의 창고같은 곳엔 수많은 여행자들이 집결해 수속을 밟고 있었다. 시끄러운 단체 여행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창고안의 소음 정도는 공항보다 도 심했다. 우선 크루즈 회사에서 준 번호가 프린트된 부착표를 붙인 큰 짐을 한쪽에 우르르 모아 놓자 짐꾼들이 이를 확인하고 나르기 시작했다. 왁자지껄, 부둣가보다 더 번잡했다. 그리고 크루즈 안에서 사용할 카드를 발급받기위해 긴 줄을 이루며 한참 대기해야 했다. 카드엔 나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다  담겨있었다. 특히 신용카드 정보가 들어 있어 배 안에서 이용하거나 물건을 사는 경우 모든 대금은 속전속결 신용카드로 빠져 나가도록 되있었다. 모든게 무료인줄 은근히, 아니 요금표에 다 포함된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특히 하루 10달러 정도의 서비스료, 그래서 토탈 40-50 달러는 기본으로 아예 책정되 있었다. 기다린 끝에 사진을 찍고(다행히 카드엔 나오지 않았다) 카드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사진... 손으로 V자를 그리라고 필리핀 사진사는 나에게 요구했다. 뒷 배경은 거대한 크루즈가 바다를 항해하는 중인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Royal Caribbean'이라 적혀있었다. 이 사진은 나중에 출력해 배안에 전시해 두고 기념으로  승객이 원하면 살 수 있었다(난 사지 않았다). 그 앞에 서서 어색한 미소와 어정쩡한 V자를 그린게 쑥스러웠다. 또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그리고 태국 푸켓을 돌아오는 일정이기에 출입국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두시간을 넘게 보냈다.


벌써 힘이 쭉 빠졌다. 배안에 들어가기 전에 스테프에게 카드를 보여주니 수퍼마켓에서 바코드를 찍듯 "삑" 소리가 사납게 울렸다. 크루즈는 정말 거대한 산같은 배였다. 바다위에 보이는 것만해도, 한 15층 높이의 빌딩같았다. 배라곤 도버에서 칼레로 가는 'P & O 페리'가 전부였던 나에게 크루즈의 사이즈는 나를 압도하기 충분했다. 그 큰 배에서 우선 머물 방을 찾아야 했다. 난 우리 영국 할배와 함께 방을 쓰도록 배정받았다. 할배는 거의 75세가 넘었다. 방찾기는 나의 책임이었다. 우리 방은 '덱2(Deck2)'에 있었다. 이 크루즈가 지상 15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객실중 가장 아래부분인 셈이었다. 여러대의 엘리베이트도 잘 작동했다. 객실이 위로 갈수록 요금이 더 비싸다고 들었다. 한 6층정도부터는 객실로부터 바다로 툭 튀어나온 발코니도 있었다. 그놈의 돈이 우리를 층층으로 갈라놓는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상류와 하류층울 구분시켜 놓았다. 우선 덱2로 내려가니 배의 앞편이었고 우리 객실번호는 배의 뒷부분이었다. 이 앞부분과 뒷부분이 연결되는 곳은 4층과 5층이었다. 다시 헉헉대며 4층으로 올라왔고 뒷부분으로 걸어가 다시 2층으로 내려가 겨우 방을 찾을 수가 있었다.


방은 작았다. 침대가 양편으로 놓여있었고 방문 왼편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붙어있었다. 침대의 머리맡에 바다로 난 둥근 창이 보였다. 할배와 난 창을 통해 싱가포르의 항구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다 그 복잡한 절차를 마치느라 둘 다 피곤해 침대에 그대로 누워 낮잠을 한시간 잤다. 낮잠임에도 할배는 그 연세에 피곤하셨는지 드렁드렁 코를 고셨다. 옆방에서 들을까 걱정됐다.


오후 5시 30분경이 되자 모든 승객의 의무인 안전요령습득을 위한 'Fire Drill'에 참가했다. 혹시나 타이타닉같은 사태가 벌어질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교육받는 것이었다. 언어는 영어와 중국어였다. 그러다 보니 이 크루즈안에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똑같은 웃옷을 맞춰입고 세를 과시했다.


저녁식사 시간전에 배안 곳곳을 어슬렁거리며 배안 사정을 익혔다. 배의 앞편에 크지 않은 수영장이 두세개 있었고 그 주변에 꼭 일반수영장 처럼 접이식 의자들이 주르르 놓여있었다. 또 그 옆엔 인도 청년이 아이스크림기계에서 아리스크림을 뽑아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고 있었다. 나도 할배도 더운 날씨에 거듭 두개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를 즈음 배는 벌써 싱가포르를 떠났고 말레이 반도가 멀지않은 오른쪽에 펼쳐졌다.


다시 크루즈의 중심부인 중간층(4층과 5층)으로 왔다. 중간은 꼭 도시의 시내 중심가처럼 꾸며 놓았다. 보석과 가방을 파는 가게, 옷을 파는 가게 그리고 기념품가게까지 있었다. 그리고 15층 맨 꼭대기에 모든 종교인이 사용할 수 있는 기도실(chapel)이 있었다. 기도실에 올라가자 기도실 사방 구석에 4개의 싸구려 그리스 로마식 동상들이 서있었다. 중간에 벤치들이 놓여있었고 앞쪽에 제대로 쓸수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 테이블 양쪽에 꽃이 놓여있었는데 살짝 만져보니 조화였다. 그러면 그럴테지 하면서 밖으로 나오니 오른쪽 작은 문 앞에 '신부대기실(Bride Changing Room)'이라 적혀있었다. 여기가 가끔 크루즈 안에서 하는 결혼식이 열리는 곳임을 짐작했다. 4층으로 내려오니 카지노가 개장되었다. 수많은 승객들이,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들인 이곳에서 카지노 딜러 주위를 에워싸며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저녁시간이 되어 11층에 있는 부페 식당으로 갔다. 약 3천명의 승객을 소화시켜야 하기에 크기도 엄청컸고 복잡도 했으며 혼란스러웠다. 원형으로 빙 둘러쳐진 음식대에선 각 나라의 요리들이 있었다. 줄서기란, 거기엔 질서란 없었다. 제각각이었다. 모두을 한 손에 접시와 나이프와 포크를 감싼 냅킨을 들고 이리기웃 저리기웃하며 서성였다. 가관이었다. 거기에다 소음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단체손님이 대부분이라 같은 일행끼리 '이리 오너라' '저리오너라' '저기 음식이 맛있더라' 하며 글자 그대로 불교용어 '아수라' 장이 꼭 들어맞았다. 속으로 '싫다 싫어'를 연발했지만 음식맛은 좋아 참았다. 중국인들이 많아 젓가락도 준비해 놓고 있었다. 한국음식은 김치와 김 그리고 불고기가 있었다. 시끄럽던, 혼란스럽든, 배불리 먹고나자 다시 타이타닉이 떠올랐다. 거기엔 우아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하얀 식탁보 덮여진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의 서비스를 정중히 받으며 양반처럼 식사하였다. 이런 혼잡한 부페식당은 기억안났다. 일행중 한명이 웃으며 말했다. 내일 밤 5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이 크루즈의 '캡틴'과 식사를 같이 한다며 잔뜩 기대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밤이 '캡틴의 밤'이며 그와 사진도 같이 찍을 수 있고 대화도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난 캡틴이라면 배의 항해나 열심히 지켜보며 잘해야지 무슨 셀레브리티처럼 같이 사진도 찌고 식사도 같이 할까 의문이 들었다. 배의 안전은 괜찮을까? 또 그놈의 타이타닉이 생각났다.


다음날 밤 단체로 길게 줄을 서서 서비스를 받으며 먹을 수 있는 5층의 레스토랑 앞에서 식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페 식당과 달리 여긴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배정된 테이블로 가 앉아 식사하는 곳이었다. 정각이 되자 레스토랑 문이 좌르르 열리더니 한 스무명은 되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웨이터들이 두 줄로 서서 우리가 입장하자 박수로 환영하였다. 무슨 밥먹는데 박수까지... 각각 지정된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는 한 30대쯤 돼 보이는 웨이터가 자기 소개를 했다. 중국에서 왔다며, 오늘 밤 최선을 다해 서비스하겠으며 좋은 밤이 되길 빈다고 영어로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일행도 다른 승객들도 모두 정장을 하고 있었다. 나만 평소대로 검은색 사제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여자분들은 우아하게 흘러내리는 긴 드레스를, 남자분들은 정장에다 깔끔하게 넥타이까지 메고 있었다. 무엇보다 영국에서부터 챙겨온 그들의 준비성에 감탄하였다. 문득 저 멀리 테이블에 한복을 입은 여자분들 몇몇이 보였다. 알고보니 한국인 단체여행객들이었다. 대단했다. 한복을 여기까지 가방에 담아오다니... 그리고 그걸 입고서 겨우 하루 이틀 저녁먹을 걸 가지고... 어제밤에 아수라장이었던 부페 레스토랑에서 이리뛰고 저리뛰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여긴 전혀 딴 판이었다. 이분들은 같은 음식이라도 가끔은 이렇게 '정식'으로 먹으려하는구나. 식사는 주린 배만 제때 채우는 기능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기능도 덩달아 온다는 의미에서 언뜻 이해도 같다. 누가 시킨 레드 와인 한잔을 얻어마셨다. 얼큰했다.


그러나 이 크루즈 여행이 항상 붐비고, 시끄럽고, 혼란만 있는 건 아니었다. 중심지인 4층과 5층만 벗어나면 조용한 곳도 많았다. 배안 곳곳을 둘러보면 조용하게 앉아서 커피도 마실수 있고 빈 벤치가 적재적소에 배치돼 있어 혼자 있기에도 좋았다. 그리고 7층엔, 믿지 못하겠지만, 도서관도 있었다. 한쪽에 영어책들이 다른 쪽 책장엔 독일어, 불어, 일본어, 중국어가 나란히 전시돼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어 책은 거기에 없었다. 대부분이 소일거리로 읽을 소설이나 전기 또 여행도서들이었다. 넓직하고 푹신한 소파도 장만해 놓아 앉아 쉬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기보다 서너명씩 소파에 앉아 잡담하고 있었다. 나에겐 제일 좋은 장소가 배 밖의 갑판 양편으로 난 오솔길이었다. 걸을 수도있고 벤치에 앉을 수도 있는 명당 자리가 많았다. 더구나 바로 앞에 보이는 넓은 '안다만' 해 그리고 그 넘어 인도양까지 상상하며 보는 바다는 최고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를 보는 것으로 보냈다. 그러다 심심하면 하루하루 나오는 배안의 뉴스레터를 읽으며 쇼나 콘서트 시간을 맞춰 구경해도 되었다. '아이스 쇼(Ice Show)'도 하였는데 보진 못하였다. 단 하루만에 밥때, 쇼때, 그리고 개인시간때를 서서히 몸에 맞춰 이 크루즈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게으른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이 크루즈 안 시설에서 놀라운 것은 오리지날 사진과 그림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것이었다. 항상 그림을 전시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작가와 연대 그리고 가격이 적혀있었다. 대부분이 천불 정도하였고 비싼것은 오천불이나 하는 것도 있었다. 시간이 나서 어슬렁거리며 하나하나 자세히 보며 무얼 뜻할까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 대부분은 일반 집에 걸어 둘 낭만적인 그림들이 대부분이었고 서너 작품은 약간 치기어린것도 있었다. 배가 싱가포르에 돌아오는 마지막 날 밤엔 이 그림과 사진들을 파는 '옥션'을 진행하였다. 생전 처음보는 그림 옥션이었다. 망치를 팡팡 두드리는 바로 그 옥션말이다. 승객중에 한 30여명이 옥션에 참가하였다. 예술사 공부하며 견학으로 런던 중심가의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구경할 기회도 일부러 가지 않았는데 여기서 옥션을 구경하다니... 어차피 그림을 사서 걸어둘 기회가 나에겐 없을 것임을 알고, 옥션견학은 헛고생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빠졌던 옛날이 기억났다. 그런데 처음보는 옥션이 비록 몇백만 파운드의 그림은 아니었지만 엔터테인먼트로 충분했다. 또 크루즈 안 곳곳에 조각작품들을 배치해 놓아 심심하지도 않았다. 특히 중심부엔 우리나라 '반가사유상'류의 모조품을 세워놓아 이 시끄러운 장소에 깊이 명상하는 부처상이 있다는게 아이러니하게 보였다.


4박 5일동안의 크루즈 여행동안 두 군데 즉, 쿠알라룸푸르에 가까운 항구 '포트 클랑(Port Klang)'에 들러 쿠알라룸푸르의 나머지를 구경하고 또 태국의 푸켓에 들러 하루를 보냈다. 비록 짧은 크루즈 여행이었지만 그런데로 재미도 있었고 그 생활에 적응하니 그런대로 편안도 했다. 그러나 이 크루즈 여행은 마음껏 먹고 즐기는 게 더 큰 이유인 것같았다. 그렇지만 크루즈 여행 프로그램도 잘만 이용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아무 걱정없이 바다를 무료하게 바라보고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에겐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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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으로 붉밝힌 가운데 반가사유상 모조품이 앉아 있었다. 시끄러운 배 안에 안 어울리는 것같았다.
크루즈 앞 부분. 수영장이 보인다. 아침에 중국인 단체여행자들이 체조를 하고 있었다. 달밤이 아니어서 괜찮았다.
밤에 본 크루즈 앞부분.
크루즈의 번화가 4층과 5층이었고 숍들이 즐비했다. 항상 시끄러웠다. 남대문시장을 옮겨온 듯 했다.
여기 앉아 아침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내다보는게 가장 좋았다. 최고의 요지였다. 커피 한잔이면 충분했다.
크루즈 방안의 침대 머리맡에 난 창. 물론 열수는 없었다. 가끔 밖을 보며 명상에 잠겼다.
캡틴과의 식사 시간에 올라 온 디저트. 보긴 좋지만 단것을 질색하는 나에겐 안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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