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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n 21. 2017

고행이냐, 수행이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묻다

산티아고 순례길 에세이 -"왜 가노?"

곳곳에 서있는 십자가와 성당은 마음을 풀어주기도 했거니와  울컥울컥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머 하러 거기 가노?"


누나의 질문이 계속 들려왔다. 짜증이 슬쩍 났다. 특히나, 복잡하고 혼란한 런던 스탠스테드(Stansted) 공항의 대합실에 앉으니 더 심했다. 이 시장통 대합실에 털썩 앉아, 왜 괜한 실없는 짓을 할까 의문이 들었다. 또 이미 짐으로 부친 배낭 안에 중요한 건 다 넣었는지 다시 끄집어 내며 걱정했다. '사서 고생을 자처했으니 끝난 뒤에 뭘 좀 깨달을까?' 계속되는 의문과 함께 두려움도 사실 일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장장 800킬로미터를 걷는다. 지루하진 않을까? 외롭진 않을까? 예약한 호텔에서 안심하며 숙박않고 그날 그날 호스텔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여럿이 잠을 자야한다. 그래서  불편하진 않을까? 혹시 위험하진 않을까?

그냥 '걷는 행위'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행위이다. 숨쉬기와 함께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행위이고 실존을 경험하는 행위인 걷기를 한달 넘게 한다. 더구나 한번도 가본적도 없는 길을 가는 두려움을 떠안고서. '롱 디스턴스(long distance)'로 걸어본 경험도 없는 난 육체적으로도 전혀 스포츠형이 아닌데다가 그리고 혼자서 외롭게 한달을 넘게 거의 산행이나 다름 없는 고행을 자처했으니... 하지만 이 기회에 실행치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것이라 생각하니 그래도 좀 편해졌다.

"이 '고행'을 '수행'으로 바꿀수 있으면 나의 계획은 성공이다. 더이상 바라는 것도 특별히 없다."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의 스페인과 국경을 맞대는, 여러 갈래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프랑스 길(the French Route)'의 출발지점인 '상 쟝 피에 드 뽀르(St Jean Pied de Port. 이하 상쟝)'로 가기 위해 이곳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비아렛츠(Biarretz)행 라이언(Ryan)항공을 기다리며 온갖 가지 말아야할 이유들을 떠올리면서도 한편으론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수 없었다.

조그만 피레네 산맥 가까운 소도시인 비아렛츠로 가는 저가 항공기는 만원이었다. 프랑스어보다 스페인어가 비행기 안에서 더 많이 들렸다. 앞에 앉은 8살 정도되는 꼬마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무척 신기해하며 감탄을 하다가 문득 뒤에 있는 나를 발견하곤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부끄러움도 없는지 당돌하게 스페인어를 하느냐고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에스빠뇰'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No. 난 못한다고 했지만 한달 넘게 스페인을 여행할거라 꼬마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산티아고를 아느냐고 묻고 싶어졌다. El Camino de Santiago(St. James' Way. 산티아고 순례길. 보통 "까미노" 라고 함)간다고. 그러니 꼬마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자기 아빠에게 나에 대해 무슨 말을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치노"라는 소리가 들리는 걸보면 날 중국인으로 오해했는가 보다. 이번 한달 순례도 저 꼬마처럼 모든 걸 신기해하고 감탄하는 신비의 순례가 되었으면 하고 슬며시 바랬다.

정확히 오후 5시 30분 프랑스 시간으로 비행기는 비아렛츠 공항에 착륙했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아마 산티아고 가는 순례자들이 많아 버스나 기차보다 몇몇이서 택시타고 가까운 바욘(Bayonne)기차역까지 가서 상쟝으로 가는게 더 쉽고 비용도 저렴할거라 해서 나같이 베낭을 맨 사람들을 찾았는데 좀체 보이지 않았다. 작은 시골공항이라 입국심사도 거의 시간이 들지 않고 짐도 바로 나와 시간은 5시 30분을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규모는 우리나라 소도시 시외 버스터미널과 비슷했다. 작은 공항을 나서니 금방 택시승강장과 그 왼쪽으로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버스요금과 시간을 확인하는 사이 정차해 있던 버스는 훌쩍 떠나 버렸다. 다음 버스까지 또? 하다가 할수없이 줄서있는 택시 앞으로가 요금이 얼마 정도 나오느냐고 물었다. 착하게 생긴 '바스크'인 택시기사는 약 25유로가 될 것이라 한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택시를 탔는데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도로가 정체상태였다. 약 10분은 정체되었다. 5시를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이 소도시에서도 교통체증이 있었다. 은근히 미터기의 요금이 걱정 됐는데 기차역에 도착하니 25유로가 약간 모자랐다. 그 기사 말은 정확했다. 휴....막바로 한달음에 기차역으로 들어섰다.

티켓 사는 곳에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섰는데 다 등산용 베낭을 맨걸로 봐서 산티아고 순례가는 순례자들로 보였다. 유니폼을 입은 중년의 역무원이 앞사람부터 한명 한명씩 상쟝으로 가느냐고 영어로 묻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지 물었다. 내 차례가 되어 직원이 자동판매기로 친절하게 날 데려가더니 표사는 것을 도와줬다. 10유로 10센트. 표를 산 뒤에야 그 역무원이 말했다. 오늘 기차는 길 보수중이라 없고 대신에 버스로 열차승객을 데려다 준다 했다. 그런데 왜 표 사기전에 이 중요한 정보를 얘기 안했는지? 프랑스식인가? 하긴 비싼 택시를 타지 않으면 딱히 다른 수단도 없으니... 그러나 순간적으로 실망이 됐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바욘에서 상쟝까지 가는 산악기차 주위 풍경이 너무 감탄할 정도로 아름답다했는데... 할수 없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몇분이 지나지 않아 이런 실망은 곧 사라졌다. 주위 경관은 우리나라 설악산에 비견할만했다. 버스가 철로곁에 나있는 도로로 가는 것 같았고 꾸불꾸불한 산악 도로를 잘도 굴러갔다. 지나는 다리위에서 피레네의 맑고 깨끗한 시냇물에 높은 산봉우리에 얹어놓은 것같은 하얀 바위들에 버스의 순례자들은 저마다 감탄했다. 이런걸 명경지수라 했던가? 약 한 1시간 30분쯤의 관광(?)이 끝나자 버스는 목적지인 상쟝에 우리를 내려다 주었다.

역앞에 내리자 마자 나는 런던에서 사지 못한 판초와 순례자 패스포드를 중심가에서 먼저 구입했다. 영화 "The Way"에 나오는 그 골목길이었다. 낯이 익었다. 밤 8시 정도인데도 다행히 늦게까지 가게 문은 열려있었다. 특히 순례자 패스포드는 'Crecential'이라 불리며 순례자 사무소에서 구입했는데 2유로하였다. 이 패스포트로 지나가는 마을마다 스탬프를 찍어 최종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certificate'를 받을 것이다. 30일 뒤에...

이 순례자 여권을 신기해하며 보는데 책상앞에 앉은 할배가 나보고 스탬프를 주며 자기대신에 힘껏 눌러 찍으라고 했다. 스탬프를 누르는 손이 떨렸다. 여행에 대한 두려움인가? 이게 나의 첫번째 순례증명이 됐다. 입김으로 호호불어 푸른 잉크를 고이 말린 다음 내 배낭의 가장 소중한 곳에 패스포트를 넣었다. 한달동안 나의 동반자가 생긴것이다.

다끝나자 시간이 밤 8시 30분이었다. 날이 어둡지 않아 다행이었다. 서둘러 호텔을 찾았는데 약 20분정도 걸아서 가야했다. 이름은 'Hotel Camou.' 호텔은 외곽 언덕위에 위치했는데 앞에 성당이 있어 좋았다. 언덕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니 호텔 앞에 주인집 할배가 의자에 명상하듯이 저녁 어스럼을 온몸으로 받으며 앉아 계셨다. 나를 보자 반갑게 내 이름까지 부르며 맞아주었다.

호텔은 정말 조용했다. 어두컴컴한 위층으로 올라가 내 방을 보여주며 주인집 할아버지는 내일 아침식사는 7시 30분에 시작한다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혹시 더 일찍할수 없느냐고, 저는 일찍 출발한다고 하자 여기서 다음 목적지까지 약 6시간 넘게 걸리는데 아침 8시 반 정도에 출발하면 문제없다며 'no problem' 을 세번이나 연거푸 외치셨다. 참으로 친절하신 분인데 전체 3층인 호텔에 인기척이 없어 좀 으시시 했다. 호텔이름이 프랑스 작가 까뮈(Albert Camus)와 비슷해 그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이유없는 살인, 아니 그 이유는 알제리의 태양이 너무 밝아 살인했다고 한 주인공 뫼르소가 방정맞게 떠올랐다. 이 할배가 혹시 뫼르소는 아니겠지. 살인의 공포가 얼핏 연상됐다. 하여튼 여기는 프랑스의 바스크 지방이라 햇살이 뜨거운 알제리는 아니라고 살인이 벌어질 이유가 없다고 실없는 연관을 지워버렸다. 대강 짐 정리를하고 주인할배에게 늦은  저녁을 먹으로 중심가로 간다고 하고 나왔다.

정말 작은 읍내라 멀리 걸을 것도 없었다. 시냇가 개울옆에 자리한 운치있는 레스토랑에서 양고기 그릴과 샐러드 그리고 맥주를 시켰다. 약간의 샐러드와 칩스가 따라 나왔다. 특히 맥주는 이곳 바스크 지방 맥주를 웨이트가 권해서 시켜 마셨는데 피곤하고 목이 말라서 그랬는지 시원하고 맛이 좋았다. 식사동안에 피레네 산맥으로부터 바람이 몇차례 세차게 불어와 식탁위의 바게트가 날아가는 소동도 있었지만 기분좋은 저녁이었다. 여기 이렇게 편히 앉아서 저녁과 맥주를 걸치며 흘러가는 피레네의 개울물 소리를 듣다보니 런던 공항에서 들었던 의문과 두려움이 다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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