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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n 25. 2017

고통은 향연기에 사라지고...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보타푸메이로' 향연기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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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다리를 끌며 산티아고에 당도했다.
거기엔 누구에게도 말못하는 ‘비밀’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성치 못한 '몸과  영혼'을 축이는 샘물이 거기에 있었고, 그 샘물을 마시자 ‘비밀’이 되어버렸다. 그 '비밀'때문에 힐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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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
이 중세도시는 모든 순례자에게 머-언 어디쯤에 있다.

“산티아고가 아직 멀었습니까?”

순례자들은 종종 묻는다. 나 ‘자신’에게 묻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물을 필요는 없다. 순례길에 친절하게 표시되어있는 산티아고까지 가야할  ‘km’를 눈으로 계속 확인하기에 굳이 다른이를 귀찮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산티아고는, 특히 이곳의  대성당은, 도보순례동안 순례자들의 가슴속 한가운데 매순간 자리하고 있다. 이 순례자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상징은 순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걸을 수 있는 힘을 주며 까미노의 노란 화살표처럼 순례의 방향을 잡아준다. 그래서 지리상의 산티아고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시켜주는 나침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순례자들은 날마다 순례의 종착지인 대성당으로 이 연결선을 따라 한 발자국씩 걸음을 떼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영혼의 내면으로 체험여행을 하는 것이다. 순례자는 이 체험중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산티아고가 어디있습니까?”

나도 다른 순례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지리적 산티아고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어떤 '텔레파시'같은게 점점 느껴졌다. 산티아고 대성당이 강력한 파워를 가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뭔가 알수없는 마술적인 매력에 끌려들어감을 느꼈다. '야고보(산티아고. St. James)'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있는 대성당으로부터의 어떤 기적같은 힘이 솟아 나왔을까?

긴 순례의 막바지에 높이 솟은 대성당의 첨탑을 처음 봤을때 중세의 순례자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성호를 긋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을까? 그저 감격의 눈물만 마구 쏟아냈을까? 이런 상상이 일어난 순례의 마지막 날, 난 새벽 5시에 일어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벽 5시.
닭들도 아직 곤히 자고 있었다.

1000년을 넘게 이 대성당은 수 많은 순례자들을 너그럽게 받아왔다. 오늘 나도 이 중의 한명이 되는 것이다. 10년전에 이미 산티아고를 가보았지만 도보순례로 가는 산티아고는 '분명히' 다르다. 도보순례한 뒤에 보는 산티아고는 분명히 '다르다.' 중세의 순례자로부터 바로 어제까지,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자욱으로 생긴 이 성스러운 까미노(길)를 걷는다는 것은 육체(Body)뿐 아니라 정신(Mind)과 영성(Spirit)도 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티아고 도보순례는 '부분(part)'이 아닌 '전체적(holistic)'이다. 10년전엔 육체만 코치를 타고 갔다. 난 산티아고에서 순례의 대미를 거룩하고 의미있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기가면 해야할 것들을 그려보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오에 있는 ‘순례자의 미사(Pilgrim’s Mass)’에 참석하는 것이다. 많은 순례자들은 그들이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상관 않고 이 미사에 참석하며 산티아고 순례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도착 하루 전날부터 알베르게에 삼삼오오 모인 순례자들은 다들 흥분하면서 순례자의 미사를 얘기했다. 이를 놓치지 않으려면 다음날 일찍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수밖에 없다고들 했다. 아침잠 많은 내가 새벽 5시에 출발한 이유도 여기 있다. 어느 이름없는 작은 마을에서 꼬끼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행복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프랑스 피레네 산맥의 작은 마을 ‘생 쟝 드 삐에(St. Jean De Pied)’를 떠난지 딱 28일 만에 그리고 산전수전(?)끝에 산티아고에 다달았다. 아침 10시 30분쯤이었다. 먼저 해야 할일은 ‘순례증명서 발급소’를 찾아 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이 상식임에도 난 산티아고에 다다른 ‘흥분’을 주체못해 성당안에서 30분을 훌쩍 보냈다. 성당 안과 밖의 벽에 붙어있는 모든 성인들이 나에게 벅수를 쳐주는 것같았다. 특히 산티아고 성인(야고보 성인)이 말이다. 흥분되면 뷰끄러움은 사라진다. 몇 킬로 줄어든 바짝마른 땀냄새 밴, 내 몸과, 내 배낭과, 내 신발을 내려다 보았다. 그저 좋았다. 고마웠다.

그 뒤 발급소를 찾아서 가니 20미터 정도의 긴 줄이 늘어서 있는게 아닌가. 긴 줄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무척이나 상기된 얼굴들이었고 무거운 베낭은 곁으로 던져두고 정다운 친구가 된 순례중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몇명은 산티아고 도착의 기쁨에 가족이나 친구에게 통화를 하는 것도 보였다.

“나 산티아고 드디어 도착했어.”
“난 해냈단 말이야.”

이 긴 줄의 끝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혹시 시간이 걸리면 12시 순례자 미사에 참석 못할까 걱정됐다. 순례의 중요한 지혜인 “layback”을 벌써 잊은 것일까? 적어도 30분전에 성당 제의실에 가서 보고하고 공동미사집전을 허락받는 일을 가상해 시간을 꿰맞춰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11시 20분정도에 난 두 개의 증명서를 받았다. 하나는 순례를 마쳤음을 증명하고 다른 하나는 내가 800 km를 걸었음을 증명하는 문서였다. 순례증명소 직원이 담아준 두껍고 빨간 원통박스와 순례문서를 한손에 들고 나오니 줄서 기다리던 몇몇 순례자는 전통으로 해주는 축하의 박수를 쳐주었다.

시간이 촉박해 증명서를 베낭에 급히 넣은 뒤 성당으로 그대로 내달렸다. 또다른 긴 줄이 성당 입구에 나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며 차례로 들어가는데 성당 직원이 날 제지했다. 배낭을 지고 들어갈수 없다고 했다. 내가 “파드레(신부)”라며, 미사 공동집전을 해야한다고 애원했지만 할수없었다. 성당앞에 있는 물품보관소에 맡기고 오니 시간이 벌써 10분전 12시. 제의실로 황급히 달려갔다. 제의실(Sacristy) 담당 수녀님이 영어를 전혀몰라 설명하는데 또 진창 애를 먹었다. 스페인 수녀님은 나에게 ‘가톨릭 신부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 촉박한 시간에...' 난 물품보관소에 맡겨둔 내 배낭에 있다고 했지만 소통이 되질 않았다. 다행히 상주하는 독일 신부님이 통역을 해주었다. 급하게 제의로 갈아입고 다른 신부님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스페인 주례신부님이 제의실에 모인 각 신부님들께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일일이 묻고 인사하셨는데 여러 나라에서 온 10여명의 신부님이 계셨다. 천장이 높은 제의실 위쪽 벽면엔 큰 바로크식 성화속의 예수님과 성인들이 우리들을 내려다보며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웅장한 미사의 시작 성가가 오르간 소리와 함께 흐르고 사제들은 성당으로 천천히 열을 맞춰 입장했다. 성당안은 순례자들로 인산인해였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순례자도 더러 보였다.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집전되는 성당안은 거룩함으로 가득찼고 순례자들 한분 한분 자신이 걸어온 그 까미노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도 마음이 주체할수 없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감사했다. 모든게...’

난 제대의 뒤쪽에 다른 신부님들과 같이 서서 수백명의 순례자들을 바라보았다. 각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을 주례 신부님이 일일이 소개하자 가끔씩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독서와 복음 그리고 한마디도 알아 듣지 못한 스페인어 강론이 끝나자 예정되로 ‘신자들의 기도’시간이 됐다. 각 언어권 별로 신부님들이 독서대로 가서 자기나라 말로 기도를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어 한국어로 신자들의 기도를 했다. 난 내 기도를 듣고 있을 성당안의 한국 순례자들을 그리고 순례중에 만난 모든 분들을 기억했다.

영성체가 끝나고 마지막 강복이 끝났을 때 주례신부님은 우리 신부들보고 제대 앞으로 나와 서라고 했다. 흥분과 기대에 가득찬 얼굴을 한 수많은 순례객들의 얼굴도 동시에 눈앞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 무게가 50kg이 넘고 높이가 1.5미터나되는 거대한 향로,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 산티아고와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성당에서 쓰는 향로)’가 위엄을 갖춘 명배우처럼 20미터 높이 성당 천장으로부터 제대앞으로 서서히 낙하했다.

“와…”

성당안의 순례자들은 순간적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 보타푸메이로는 ‘칼릭스 문서(Codex Calixtinus, 중세 최초의 산티아고 순례자 가이드 북)에 의하면 ‘투리불룸 마그눔(Turibulum Magnum, 대 향로)’이라했는데 공기를 정화시키는 일과 긴 여행에 지친 순례자들의 땀냄새를 없애주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이미 순례자들은 저마다 카메라나 스마트 폰을 꺼내 준비하고 있었다. 주례 신부님이 몇 줌의 향을 보타푸메이로에 넣고 축복(Blessing)을 내리자 보타푸메이로가 하얀 연기를 피우기 시작했다. 이 연기는 서서히 성당안을 채워 나가며 순례자들을 정화시켰다. 미사의 MC가 1미터 정도 공중에 뜬 보타푸메이로를 살짝 옆으로 밀어내자 8명의 자주색 유니폼을 똑같이 차려입은 ‘티라볼레이로(Tiraboleiros, 향. 봉사자)’들이 도르래 줄을 이용해 공중 높이 보타푸메이로를 들어 올렸다가 능숙하게 그네처럼 대성당 제대 앞 좌우 약 60미터 공간으로 이리저리 날렸다. 한 마리의 고고한 학처럼 보타푸메이로는 곡선을 그리며 대성당 천장아래 넓은 공간을 우아하게 날라다니며 천상의 연기를 순례자들 머리위로 쉴새없이 뿜어대며 축복(Blessing)을 내렸다. 우린 모두 마술에 취한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감격에 겨워 다른 많은 순례자들처럼 나도 웬지 눈물이 나왔다. 지난 28일간의 순례동안 힘들고 또 감사했던 순간들이 문득문득 스쳐 지나갔고 이내 하얀 향연기처럼 공중으로 서서히 분해되어 사라졌다. 보타푸메로는 그렇게 순례자들을 천상으로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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