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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n 30. 2017

괴테도 노벨상 작가와도 인연을 맺은 작은 성당의 신비

이탈리아 여행 에세이-산 니콜라 성당, 시칠리아

성당 내부.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에 ‘신전의 계곡(The Valley of Temples)’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였던 2500년 역사를 품은 그곳 '아그리젠토(Agrigento)'로 가기 전, 예약한 그 도시의 성당에 들러 아침 미사를 집전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아파트처럼 지루한 몇몇 고층 주거지들이 어울리지 않게 고대도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현대와 중세 그리고 고대의 흔적이 있는 이 도시의 좁은 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드디어 성당을 찾았다. 그러나,



'그 성당이 아니었다.'



다시 차를 돌렸다. GPS를 보며 길을 찾는데  화장실 표말이 나와 차를 멈췄다. 신자들이 화장실로 간 사이 난 어슬렁거리며 주위를 맴돌았다. 먼저 외벽에 멋지게 붙어있는 담쟁이 벽을 보고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고고히 서있는 키 큰 소나무도 찍었다. 그러다가 검은 색으로 칠한 나무로 만든 큰 대문을 보았는데 호기심에 문을 열어보니 그곳이 우리가 찾던 바로 그 성당이었다. '아그리젠토'의 고고학 유적지로 들어가기 전 가까운 길가에, 그리고 크지 않아 잘 보이지도 않게, 그렇게 뽐내지 않고 조용히 길 안쪽에 서 있었던 것이다. 주변엔 올리브 나무도 많았고 바로 옆에 지역 고고학 박물관도 있었다.



‘산 니콜라 성당(San Nicola. St. Nicholas).’



친절한 사크리스탄(Sacristan. 성당 미사 준비를 해주시는 분)‘이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활짝 웃으시며 반기는 모습과 이 성당 내부 모습에 그대로 마음이 다 빼앗겼다. 난 첫눈에 마음 뺏긴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 성당은 첫 눈에 바로 '감'이 왔다. 화려하지 않은 은은함, 햇빛에 반사되어 약간 탄듯한 붉은기가 슬쩍 감도는 색깔의 성당 외벽, 복잡한 장식으로  현란시키며 마음을 뺏는게 아닌 ‘정제된 우아함’을 보여주는 성당이었다. 시간에 변질된 제대 쪽 벽의 오래된 성화들도 이 정제된 분위기에다 성스러움을 가미하였다.



“역시나,...”



이 성당은 ‘시토회(Cistercian)’ 수도원 성당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유럽의 역사에서, 특히 서양미술사에서 이 수도회의 부흥과 발전, 그리고 영향은 지대하다. 유럽사에서 기억나는 ‘시또회의 수도원 개혁’과 그리고 미술사에서 이 수도원이 추구한 신학과 카리스마, ‘단순하고 정제된 미’의 원칙은 유럽 곳곳 시토회 수도원에서 발견된다. 장식적인 화려함을 배격하고 ‘단순함(simplicity)’을 추구한 이 수도회의 건축양식은 이 작은 성당이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었다.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오는 성당 건축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 포근하고 멋진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 내내 이 멋진 성당안에 있다는게 그저 신기하고 신비로왔다. 발터 벤자민이 말한 ‘아우라(오라. Aura)’가 떠올랐다. 벤자민은 아우라를 멀리서, 어떤 거리를 두어야 볼수 있다고 하였지만 난 이 성당에서 그 아우라를 거리간격없이 바로 그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닭이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따뜻하게 품듯이 꼭 그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 성당은 이 성당건축의 소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뿐 아니라 두가지 더 유명한 게 있고 또  신화와 문학 그리고 미술이 모두 연관 돼 있다.



우선 이 성당 안 오른쪽엔 독일의 문호 괴테가 극찬한 석관(sarcophagus)’이 놓여있다. 사람의 무덤, 특히 관을 아름답다고 하면 이상하지만 이 대리석으로 만든 석관, 그래서 ‘대리석관’이 더 정확한 말인 이 석관의 외벽 장식조각은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이 석관은 3세기 로마 제국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그 내용은 그리스 신화, '페드라(Phaedra)'와 '히뽈리뚜스(Hippolytus)'’이야기 장면을 조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좀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긴 성당이야 종교적 시설이라 성당내에 무덤을 많이 안치하지만 이 그리스도교 이전의 이교도 석관을 더구나 페드라와 히뽈리뚜스의 비극적 신화내용과 어울리지 않아 고개가 더 갸웃해 졌다.



‘페드라(Phaedras)’는 ‘테세우스(Theseus)’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남편의 전처 소생의 아들인 젊고 잘생긴 히뽈리뚜스(Hippolytus)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겼다. 이 사실을 안 히뽈리뚜스는 페드라의 사랑을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자 분노와 복수심에서 불탄 페드라가 남편인 테세우스, 즉 히뽈리뚜스의 아버지에게 히뽈히뚜스가 성폭행을 했다고 거짓말을 한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읽은 노한 남편이 포세이돈(바다의 신)에게 받은 세가지 저주 중 하나를 아들에게 쓰며 저주를 내린다. 결국 히뽈리뚜스는 이 저주로 바다의 괴물(Sea Monster)에 의해 타고 있던 말이 놀라 물에 빠지며 함께 죽는다.



여기까지 보면 페드라가 지탄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신화는 여러 다른 버전도 많다. 페드라의 편지를 읽은 테세우스가 히뽈리뚜스를 단번에 죽였다 한다. 그러자 페드라가 비록 질투와 복수심에 불타 거짓말을 했지만, 결코 자신이 사랑하는 히뽈리뚜스가 죽기만은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죄의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조금 다른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비극의 원인은 정제되지 않은 사랑, 즉 열정(passion)이다. 괴테는 편지형식의, 약간은 자전적인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The Sorrows of Young Werther)’을 쓰면서 이 열정과 비슷하지만 다른 우울한 베르테르의 사랑을 그렸다. 바로 그 괴테가 쓴 ‘이탈리아 기행문’에서 그는 이 석관의 조각을 보면서 이 조각의 중심은 젊고 잘생긴 ‘히뽈리뚜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젊은 베르테르와 히뽈리뚜스를 비교해 봤을까? 아님 페드라의 열정과 복수? 이 석관의 조각에 아로새겨진 늠름한 히뽈리뚜스의 모습에 감탄하며 괴테는 자신이 창조한 베르테르를 볼 수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열정의 희생자인 히뽈리뚜스, 즉 베르테르와 좀 다른 히뽈리뚜스를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 젊은이는 목숨을 끊었고 또 한 젊은이는 죽임을 당했다.



그 원인은?



어떤 버전이든지 이 신화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 내용을 새긴 석관의 조각은 아름다웠다. 예술적가치도 충분하다고 보았다. 그랬기에 이 석관은 괴테뿐만 아니라 이보다 약 20여년 전에, 똑같은 독일어를 쓴 서양미술사의 원조 ‘빈켈만’도 이 석관을 두고 품평을 했다. 하여튼, 빈켈만이든 괴테이든 간에, 또는 예술적 가치가 높든 낮든 간에, 이 석관의 조각, 즉 죽은 사람을 묻는 관에 새긴 조각예술은 산 사람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준다.



“사람은 가고 예술만 남았다.”



“사랑은 가고 열정은 재가 되었다.”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은 재가 된 열정을 식히고 다시 성당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마음을 다 뺏긴채로, 빈 껍데기가 되어 둘러 본 성당의 제단쪽에는 15세기에 제작된 나무 십자가가 있었다. 이름이 특이하게 ‘배의 주님(Il Signore della Nave. Lord of the Ship)’이라 불리는 이 십자고상은 193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 시칠리아 지역, 아그리젠토 출신 극작가, 소설가, 시인인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의 단편 소설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노벨상까지 탄 작가가 영감을 받았던 이 조그만 성당에서 나도 그 어떤 ‘영감(inspiration)’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했다. 피란델로는 어떤 ‘경이(wonder)’를 여기서 경험했을까?



열정(passion)과 정제(refinement)를 동시에 경험한 성당을 나왔다. 성당의 붉은 빛이 감도는 정면을 다시 올려보았다. 아침햇살에 시간이 색칠한 성당 외벽의 색상은 더 선명해졌다. 이 작은 성당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경이’ 그 자체였다.


:::::

*아침 햇살에 반사된 성당 정문. 사실은 저녁햇살에 비친 성당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다른 시칠리아의 특색인 화려한 바로크 성당들과 비교된다.

더운 지중해의 시칠리아라 열대식 식물도 많다.

키 높이 자랑하는 성당 옆 소나무.

담쟁이 덩굴이 인상적이었다. 조그만 성당의 창을 스쳐지나고 있다. 마치 시간이 흐르듯이... 이 벽이 담쟁이 덩굴로 온통 다 덮이기 전에 다시 올 수 있길 기원했다.

3세기 로마제국 시기의 대리석관. 세밀한 조각이 그리스 조각의 테크닉을 본뜬것같다. 어떤이는 시칠리아의 그리스 사람이 조각했다고도 한다.

Getty Image에서 빌려 온 사진. 대리석관의 다른 한쪽. '페드라'가 시녀들에 둘러싸여 있고 한 시녀가 페드라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있다. 다행히 박근혜의 올림머리는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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