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感謝)는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감(感)과 이를 표현하고 사례하는 사(謝)가 합쳐진 뜻이다. 감사는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기회에 대해 스스로 감사함을 느끼면, 내면에 울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결국 그 울림이 나를 움직이는 행동(표현)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내가 영국 유학길에 실패한 이유도 돌이켜보니 내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운 좋게 서류에 합격해 유학길에 오른 것은 분명 큰 행운이었고, 그 기회 안에는 부족함을 채워 나갈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나의 몸과 마음은 편안함만을 좇으며, 주변 상황을 활용해 나아가려는 것에 무지하였다.
결국 감사를 안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불평과 불만을 먼저 갖기보다, 그 속에서 작지만 작은 기회나 배움, 무엇을 나의 무기로 가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데 있다. 스스로 던진 고민에 결론을 내고, 계속 작은 실패들을 하더라도 그 행동들이 반복되어 쌓여, 나의 태도가 조금씩 변해간다는 뜻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에서도 항상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항상 하루를 감사해 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아마 그들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실패하고, 무너지면서도, 그 틈새로 주어지는 작은 기회들이 곧 성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감사함을 아는 태도는 긍정적인 마음을 넘어, 무엇이 기회인지를 알아챌 수 있게 하는 지성을 길러주기도 한다. 그 지성을 활용해 나가는 것은 아무리 많은 독서로도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독서를 했더라도 실행되지 않는 감사함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결국 부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내가 감사함을 몰랐다고 할 수 있는 건 먼저 학교 생활이었다. 이전 편에서도 되풀이하며 말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환경에 쳐했을 때, 환경 탓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얻고 학교 생활을 마치고 싶은가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더라면, 환경적인 요소들이 거슬린다는 궤도에서 조금 벗어나 뭔가 하나라도 얻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얕게라도 연결되는 네트워킹들, ‘나’라는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왔는지 증명 될 수 있었던 기회들, 다른 언어로 내 생각을 표현 할 수 있어 회복되는 자신감이었을 것 같다.
두 번째는 학생 비자와 졸업 비자 기간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몸과 뇌가 편한 것을 선택하였다.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 온 나였더라면, 핑계를 대지 않고 상황을 극복해 나아가려 했을 것이다. 한 번도 해외에서 그 나라의 화폐를 벌어 본 적이 없기에 사람들을 대하는 문화는 정말로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했을 것이고, 던져진 다른 세상을 몸소 경험하여 나를 조금이라도 런던에서 살아가 보려는 나로 변화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사는 대로 살아가려 한 것이었다. 자신이 세운 계획들을 완벽하게 하루하루 이뤄 나갈 수 없다면 우선순위를 정한다던지, 계획을 수정하며, 하루에 한 가지라도 작은 것들을 해 나가야 했었다. 대충 빨리 결과를 낼 수 있는 것들에 집착하는 건, 당장의 편안함만을 고집하며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태도였다.
현재의 나는, 핑계를 대자면, 레스토랑 일을 하면서 감정/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해 해야 할 일들을 또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편안함을 좇으며 안주하지 않는 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포기하지 않고 속도가 조금 느리지만 미래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나의 유학길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얻은 것은 과거와 달라지려는 작지만 소중한 변화, 그리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감사의 태도에 마주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