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이 인정하는 영국 런던의 실내악 전용 홀, 위그모어홀
한 해 동안 영국 런던에 거주하면서 흐린 겨울에는 햇빛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날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는 무작정 걷는 쪽을 선택하는 습관이 생겼다. 겨울의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아닌 ‘해를 그리워하는 나라’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햇빛이 조금이라도 비추는 날, 걷고 또 걷는 게 익숙해지면 지루할 법도 하지만, 런던 길거리 곳곳에 위치한 공연장들 벽면에 공연 일정들을 체크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게 된다. 이날은 인턴쉽 인터뷰가 잡혀 있던 곳에서 인터뷰 일정이 아무 런 언급 없이 변경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허탈한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런던 템스강 서쪽에 위치한 서머싯 하우스 (Somerset House)를 시작으로 위그모어 홀 (Wigmore Hall)까지 약 40분가량 걸었다.
런던 중심가 이자 옥스퍼드 쇼핑 거리 뒤편 영국의 고전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위그모어 홀은 필자가 영국에서 가장 애호하는 클래식 음악 공연장이다. 영국에서의 유학을 결정하고 지난해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이틀 뒤에 달려간 이 곳은 마치 ‘간판 없는 술집’처럼 숨겨진 공연장스러웠다. 하지만 소박한 겉모습과 달리 홀 안의 모습은, 흔히 ‘유럽’ 하면 떠오르는 건물 장식과 함께 아담한 소규모 공연장을 품고 있다. ‘이게 바로 영국의 공연장인가’라는 감동과 함께 머리가 희끗희끗한 영국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티켓을 받아 들고 한껏 들떠 있는 모습으로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그모어 홀 (Wigmore Hall)은 미국의 스타인웨이, 오스트리아의 뵈젠도르퍼와 더불어 세계 3대 명품 피아노 제조 회사 중 하나인 독일의 베히슈타인이 1901년에 설립한 위그모어 홀은 과거 ‘베히슈타인 홀’이라고 불렸으며, 영국 건축가 토마스 콜컷이 르네상스 스타일로 공연장을 디자인했다. 위그모어 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공연장 내부의 둥근 지붕 (Cupola) 부분에 그려진 그림이다. 해당 그림은 ‘음악의 영혼 (the Soul of Music)’으로, ‘음악의 위대함을 추구하는 인류의 노력’을 상징한다. 또한, 500석 남짓 되는 규모인 위그모어 홀의 뛰어난 음향 시설은 연주자들의 소리를 섬세하게 전달한다.
첫째, 음악가들과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위그모어 홀 (Wigmore Hall)이 사랑받는 이유는 젊은 연주자들의 데뷔 무대부터 오랫동안 연주 활동을 해온 연주자들의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클래식 음악 공연은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 기획사에서 직접 공연을 기획해 공연장을 대관하는 것과 달리, 공연장 자체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에 적합한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과정으로, 관객들은 영국의 각 클래식 음악 공연장마다 특색 있는 프로그램들을 접할 수 있다. 따라서, 위그모어 홀은 수많은 연주자들이 영국 런던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던 역사를 바탕으로, 지금도 유럽 내에서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젊은 연주자들의 데뷔 무대부터 오랫동안 연주 활동을 해온 연주자들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보여준다.
둘째, 위그모어 홀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다수의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이 공연하며 역사를 만들어갔다.
위그모어 홀의 연주자 대기실 벽면에 걸린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발자취인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연주자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서양 음악 작곡가로 유명한 라벨, 포레, 생상스 등이 위그모어 홀을 다녀갔고 영국 클래식 음악의 주요 작품들 또한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20세기에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그의 은퇴 리사이틀을 위그모어 홀에서 마 친 후, 이 아름다운 공연장에 계속 와 달라는 말을 청중들에게 하면서 이곳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위그모어 홀에서 공연을 한 연주자들의 사진들을 지하 카페와 연주 자 대기실에서 볼 수 있다. 명연주자들이 다녀갔고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발표되었다는 의미 있는 역사를 가진 위그모어 홀에서 현재 젊은 연주자들이 영국 런던 데뷔 무대를 열며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
지난 2016년 우리나라 현악사중주팀 최초로 노부스 콰르텟이 위그모어 홀에서 영국 런던 데뷔 공연을 했다. 최근 2018년에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세기 작곡가 울프, 피츠너, 바그너, 슈트라우스의 가곡으로 이루어진 공연을 선보였다. 피아니스트 손열음도 첼리스트 나탈 리 클레인와 함께 듀오 연주를 했다. 또한, 위그모어 홀에서 개최된 2018 국제 현악사중주 콩 쿠르에서 우리나라 현악사중주팀 에스메 콰르텟이 1위와 함께 다관왕을 수상했다.
또한 올해 초 2019년 1월에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리사이틀에서 작곡가 신동훈의 곡 ‘New Work’가 세계 초연되었다. 이어 바이올리니스트 박혜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와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속한 트리오 가온,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노부스 콰르텟 등 우리나라 연주자들의 공연들을 끊임없이 접할 수 있다. 영국 런던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공연장, 위그모어 홀에서 클래식 음악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공연장 주소]
36 Wigmore St, Marylebone, London W1U 2BP
[참고사이트]
위그모어홀 역사: https://wigmore-hall.org.uk/about-us/history
위그모어홀 홈페이지: http://wigmore-hall.org.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