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8 - 20일 - 나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이야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한 열 번 이상은 간 거 같다. 그런데, 올해가 가장 바빴던 도서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본 글은 매우 사사롭고도 사적인 나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이야기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국제도서전으로 가장 큰 규모 및 교역량을 자랑하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3년 만에 재개되었다(2022년 10월 19일-23일). 작년에도 우리 회사의 몇몇 동료들은 호텔 세미나룸을 빌려 조촐하게 도서전 미팅을 이어갔지만, 2019년을 마지막으로, 팬데믹으로 멈췄던 도서전 시계가 다시 째깍째깍 바쁘게 움직였다.
95개국에서 18만 명이 다녀갔다고는 하나 2019년에 비해서 방문객 숫자로만 보면 반토막난 도서전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코비드 19 바이러스가 변이에 변이를 거쳐 끊임없이 옮겨 다녔고, 우리 팀에서는 이탈리아 동료 L 등이 도서전 전에 코로나에 걸려, 팀 전체가 2주간 재택에 들어갔다.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여행을 못 가게 될 수 있으므로. 다행히 L은 도서전 직전에 음성 판정을 받아 무사히 도서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도서전 기간 동안 마스크 할 것을 권장하였지만, 막상 현장은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로 마스크 안 쓴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독일로 들어가는 비행기 내에서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도 출발 전에 받은 터였다.
나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나는 이번 도서전에 내가 담당하는 아시아 방문객은 적으리라 판단하여,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간만 미팅을 할 생각으로 짧게 2박 3일 일정(10월 18일-20일)으로 예약을 마쳐둔 터였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나는 이 이틀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도서전을 소화해야 했다.
평년에 비해 한국에서 반도 안 되게 참석했음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분들이 방문하면서, 이틀 동안 휴식 없이 24건의 미팅을 했다. 아, 한 베트남 출판사에서 미팅 시각을 착각하고 잘못 오시는 바람에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 6홀 한쪽 구석에 있는 스시 코너에 가서 차가운 초밥을 점심으로 먹는 연례행사를 이번에는 할 수가 없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제공하지만, 이 숨넘어가게 바쁜 미팅들 중간에 잘못 차갑고 딱딱한 샌드위치를 먹었다간, 2013년처럼, '체하고 토하고 앰뷸런스 오고'를 재연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나는 내가 먹을 것을 따로 싸와서 중간중간에 따뜻한 물과 함께 챙겼다.
이번에는, 한국관을 비롯하여 다른 홀은 구경도 못 하고, 이틀 내내 꼬박 내 테이블에서 미팅만 했던 터라,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어땠냐?'는 질문에 난 뭐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물 안 개구리가 본 하늘은 핑글핑글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재밌는 일 투성이었다.
내가 놓친 것들
화요일 부스 세팅을 마치고 (책 배치를 하고), 저녁에는 회사 회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새벽 비행기로 온 터라, 피곤했고 쉬고 싶었다. 그러는 바람에 우리 동료들 여러 명은 스페인 국왕을 보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이번에 주빈국이 스페인이라, 펠리페 6세가 방문한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 호텔에 묵었다. 오픈한 지 6개월 된, 전시장에 가깝게 위치한 이 새 호텔은 투숙객이 배정받은 해당 층만 갈 수가 있다. 우리 동료 A는 엘리베이터에 '그'와 그의 보디가드와 함께 탔다고 23층으로 가더라고 Whats App을 통해 팀에 알렸다. 우리는 이를 두고, 수런수런 익살 수다를 나눴다. '우리 이 소식 The Sun 지 등에 팔 수 있는 거 아니야' 등등.
내 테이블만 지키면서 내가 놓친 게 한둘이 아니겠지만, 나는 새 호텔의 조식도 건너뛰었다. 동료들이 조식 정말 괜찮았는데 하고 자랑한다.
어린이 책세상
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제 어린이 임프린트만 담당하고 있다. 그런지, 4-5년 되었다. 그 사이에 출장도 있었고, 온라인 미팅들도 계속해오고 있었지만, 오랜만의 본격적인 대면 미팅들을 앞두고 나도 들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어른인 내가 읽어도 신나는 그림책이 이번에는 많았다. 그러면 책 소개할 때도 신비로운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아, 이것이 이야기의 힘인가?
내 주머니에는 #뾰로통 토끼 #상심한 거북이 #급똥을 외치다 #길을 잃은 곰 #사랑 한 꼬집 #다윈의 지렁이 등의 카드가 있었고 #마음의 구멍을 소개하자, 두 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요즘 어린이책 장난이 아니다. 나는 도서전 준비를 하면서, 일부 그림책들을 페이지별로 글과 그림 분석을 했다. '캐릭터(character)'들이 '갈등(conflict)'을 빚고 '해결(resolution)'해 나가는 양상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서방 세계의 어린이책들은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하나는 'sustainability'이고 다른 하나는 'inclusivity'로 꼽을 수 있다. 픽션과 논픽션 공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올해만의 키워드는 아니지만, 팬데믹으로 고립된 세상을 경험하면서 이런 경향이 더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 Sustainability를 축으로 인간과 자연(환경)의 관계에 대한 고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Inclusivity를 또 다른 축으로 나와 나 자신, 그리고 나와 가족/친구/이웃/사회와의 관계에 대해서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도서전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
도서전은 책이 주인공인 셈이지만 책만의 리그는 아닌 결국은 사람들의 향연이 아닌가 싶다. 바다 건너 오랜만에 만난 북페어 프렌드들이 반가웠고, 함께 한 오스트리아 음식과 그 시간에 감사했고, 무엇보다 잊지 않고 들러준 이들이 사무치게 고마웠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사람들과 불쑥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곳이 도서전이다. 내가 이 회사에서 2년 차였을 때였던 거 같다. 한 달이었던지 몇 달 안 되게 인턴으로 일했던 한국인 JSH. 한국 출장 때 만나고 싶었지만 멀리 살고 몸이 무겁다(임신 중) 했었던 거 같다. 그게 마지막이었는데, 한창 미팅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누군가 알은체를 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몇 번을 지나친 모양이었는데, 내가 계속 미팅 중이라 말을 걸 수가 없었다며 목캔디와 비스킷을 주고 간다. 그 뱃속의 아들이 벌써 8살이 되었다고 한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또다시 다음 미팅 참가자분들이 와서 아쉽게도 금방 작별을 고해야 했다. 다행히 연락처를 받았는데, 멋진 '부장님' 명함이다. "SH, 정말 반갑고, 잊지 않고 들러줘서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나랑 이번 도서전을 함께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도서전 후유증
도서전을 마치고 나면 몸이 아플 수 있다. 나이가 들어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고, 우리 젊은 동료들도 그렇다. 나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이 40-50개 미팅을 했을 프랑스 동료 L은 화장실도 못 가고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미팅해서 인지 다리에 혈전이 와서 병원에 다녀왔고, 포르투갈 동료 B도 근육통인지 뼈에 금이 간 건처럼 아프다며 진통제 투여 중이다. 나도 도서전은 잘 마쳤지만 피로로 일주일 후부터 목이 안 돌아가 근육통 완화해 주는 젤을 바르고 있다.
나는 다행히도 목요일 밤 무사히 런던으로 돌아왔고 오래 안 기다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귀가했다. 금요일 밤 돌아오기로 했던 V와 B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런던 시티 공항까지 거의 다 와서 거센 바람 때문에 착륙을 못하고 비행기를 돌려야 했다. 루프트한자에서 잡아준 공항 근처 호텔에서 예상도 못했던 1박을 더 하고 그다음 날 런던으로 돌아왔다.
도서전에 다녀온 지 한 달이 다 되었는데도, 모두들 아직도 팔로업 이메일에 매달려 있다. 이게 가장 큰 도서전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18만이 다녀갔다니 그만큼 많은 도서전 이야기가 넘쳐날 터이다. 이제 더 이상 카운팅 하지 않는 나의 열몇 번째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이렇게 기록하고자 한다.